기본

세시 풍속도

정순이 2006. 12. 23. 07:42
 

올해 음력으로 11월 3일은 동짓날임과 동시에 내게는 가슴아픈 날로 기억된다. 24년 전 큰오빠가 돌아가신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몇 년동안의 긴 투병생활로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한가닥 삶의 끈을 잡으려고 몸부림치다 그 끈을 놓아버린 날이다. 한 가정에 가장이고, 아들로서는 맏이인  큰 오빠는 나와 아버지가 비비고 기대야 하는 언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존재의 뿌리가 흔들리는 기로에서 큰오빠는 아버지를 앞세우고 막내동생인 나를 두고 홀연히 저세상으로 가신 날이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써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길어 음이 극에 달하지만, 이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의 기운이 싹트는 날이기에 옛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俗節)로 여겨왔다.그러나 일상생활 자체가 속절을 지키지 않는 가정이 많긴하지만, 큰 명절인 음력 설날이나 추석, 한식날만은 반드시 성묘를 해야한다는 인식은 남아있다.


올해는 애기동지라 하여 팥죽을 쑤어먹기보다는 팥시루떡을 해먹어야한다는 속설을 지키려는지 팥이나 찹쌀을 구입하러 시장에 들리는 사람이 예년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앞가게 아주머니다. 이웃하고 있는 가게주인의 말을 감안하면 직접 동지팥죽을 쑤어먹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거 같은데도 팥죽을 파는 가게앞에서는 장사진을 이루었다. 부엌에서 팥죽을 쑤어 시골에서나 볼수 있는 크다란 대솥에  옮겨담기 바쁘게 솥은 바닥을 드러내곤했고, 미리 빚어 놓은 새알심이 부족해 인력을 더 충원해 새알심을 빚느라 여념이 없었다. 음식공장을 보는 듯했다.

 

대개 동지는 음력 11월 안에 들어있는데, 초순에 동지가 들면 '애동지'라 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동짓날 팥죽 먹는 풍습은 여전하지 않나는 생각이다.


애기동지라 팥죽을 먹지 않아야 한다는 속설이 있긴하지만, 한 블록 떨어진 가게에서는 동지 하루 전날부터 팥죽에 들어가는 새알심을 빚느라 밤잠을 설쳤다. 추석에는 송편을 빚기위해 설명절때는 가래떡을 뽑기위해 밤잠을 설치는 이런 진풍경이 연출되곤 하는 데, 젊은 주인장은 인심도 후해 절기음식을 할때마다 이웃하고 있는 가게에 음식을 돌리곤한다.  올해는 좀 늦은 시각에 팥죽을 돌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 그릇씩 돌렸다. 주는 것만해도 여간 정성이 아닐텐데 일찍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 말에 주인장의 심성이 어떤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팥은 붉은 색으로 양( 陽 )을 상징함으로써 음( 陰 )의  속성을 가지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친다고 한다. 유년시절 어머니는 팥죽을 쑤고 난 후 솔잎으로 문설주 양쪽이나 대문, 방의 각 네 모서리에 뿌리고 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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