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다단계

정순이 2006. 12. 21. 12:30

 

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도심의 12월달은 크리스마스 캐롤송과 산타복장을 한 마네킹으로 거리가 달궈져있겠지만, 내가 있는 이곳에는 그 흔한 캐롤송 하나 들리지 않고, 부박한 삶을 이어가는 상인들의 톤 높은 악다구니와 물건을 사고파는 손님들과 주고받는 대화로 점철되어있다.  세밑이 되면 흔하게 오고가든 연하장이나 송년 카드는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로 자리를 내어준지 오래고, 그 편리함에 길들여진 탓에 발을 빼기가 쉽진 않다. 그래도 그때의 설레임이 좋았는데 말이다. 둥그랗게 떠있는 해를 감싸고 있는 붉은 해무리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다가오는 내년에는 좋은일만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도 잠시 가져보기도 하고, 접어있는 상태에서 카드를 펼치면 동화속에 나오는 집 한채가 펼쳐지며 입체적으로 도안된 카드, 부직포로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싣되어진 카드, 낙엽에 래커를 뿌려 카드에 붙여놓은 운치있어보이는 카드....구동장치로 인해 표지를 들어올릴 때마다 들려오는 부드러운 멜로디....

 

오랜만에 가게에 들린 그녀는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찌개거리 좀 주세요.” 고기를 썰고 있는 옆에서 “ 이제 정보통신에 다녀요.” 자신의 직업을 밝히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해보면 자랑하고 싶을 때나 그렇지 않으면 상대에게 자신의 직업을 어필해 도움이 필요하다는걸 은근슬쩍 우회적으로 밝히는 경우, 두 부류가 있다.그녀는 후자에 속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그녀는 닥치는 데로 일을 했다. 빌딩청소부에서부터 저소득 실업자들에게 국가 및 정부가 한시적으로 공공분야에서의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공공근로 참여신청을 해 일을 하기도 했었다. 직장을 얻을 때까지 한시적으로 하는 공공근로지만, 딱히 기술이 없는 그녀는 그 일만이라도 계속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으로 동참했었다. 그런 그녀가 이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드니 이제는 다단계회사에 적을 둔 모양이다.  “어떤...?” 그녀의 나이를 감안하면 정보통신에서 일할거 같지는 않았다. 해서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길을 따랐다.

 

 “ 나라에서 세워준 정보통신업체인데 부산에는 세 군데 밖에 없어요. 요즘은 누구나 휴대폰은 다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다니는 곳에는 12개월 월부로 판매를 하기도 하고, 요금 내는곳을 이동하고 싶으면 주민등록번호만 아르켜주면 금세 이동도 할 수 있구요.” 장황한 설명을 이어가는걸 보니 아무래도 다단계 냄새가 역하게 났다. 아직 교육을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설익은 지식으로 더듬기까지했다.

 

다단계의 무서움은 아는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공략하라는 활동방침에 대한 지령을 내린다. 성과가 있을 때마다 그 성과에 수반되는 특전과 성과급 때문에 회원들이 스스로 피나는 노력을 하게끔 교육을 시킨다는것과, 사람을 데려와 자신과 같이   판매자로 만들면 자신은 대리나 점주로 승격하는 특전을 누리기도 한다는 걸 들었던 기억이 난다. 길을 가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늘려있는게 휴대폰판매점들이다. 휴대전화판매장에 가면 아주 저렴한 가격과 멋진 외양을 한 휴대단말기가  많다. 그런걸 알면서도 이런 매개인을 통해서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절하기 힘들어 구입은 하겠지만 떨뜨름한 기분은 쉬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몇 년 전 가게에 들리는 어떤 지인에게도 그런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있다는말로 배수진을 쳤지만, 아는 사람이나 단골고객으로부터  듣게되는 강압(?)적인 은근한 권유는 그 당혹스러움이나 난감함은 부탁받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부담감일 것이다. 비단 휴대전화뿐이겠는가. 단골고객이라는 기득권을 등에업고 강권하는 보험은 더 난감하다. 일전에 지인의 아들이 보험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가게에 들릴때마다 아들 이야기를 해올 때는 참으로 난처했다. 자신을 알기 전에 들어두었던 보험이 많다는 말로 위기를 모면 했지만,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소개를 해달라는 말로 벼랑끝 전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설 수도 있지 않겠나는 생각의 여지는 남지만, 지금의 위치에 충실하고 싶다고 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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