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와의 만남은 내가 부산에 첫발을 들여놓고서도 몇년이나 뜸을 드렸다. 유년시절 어느친구보다도 마음이 맞았었고 내게 무척이나 잘해줬던 그 친구를 부산에 왔으면서도 바로 찾지 못한데는 나름데로 이유가 있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엄마를 따라 부산으로 이사를 와 정주를 했다. 유년때 제일 가깝게 지냈다는 으쓱함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가끔 시골어른들의 말씀을 빌리자면 부산에서 꽤 성공을 했다는 말이 나를 주눅들게 했기때문이다.
친구가 부산에 정주하고 얼마있지 않아'유선 방송사업'을 한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친구오빠의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 했다. 그 당시 TV시청은 '유선'을 통해서라야지만 깨끗한 화면을 볼수 있었던 탓에 집집마다 ‘유선’설치를 안한 가구가 없을정도로 필수적 코스로 ‘유선’을 설치하곤 했다. 지금이야 제법 많은 '유선방송사업'이 우후죽순 격으로 너도나도 하고 있지만 그당시만 해도 독점하고 있다싶이 한 듯했고, 그친구네의 '유선사업' 은 날마다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말을 동네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었었다. 유년시절 그친구와의 도타웠던 정을 생각한다면 부산에 발을 들여놓기가 바쁘게 친구를 찾아야 할것같았는데도 차일피일 미룬데는그런 이유가 바탕이 되어있었어 이다. 부산에서 살면서도 어머니간병으로인해 바깥나들이를 잘 하지 않는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전자의 경우가 더 큰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 어느날 바깥나바람을 쐬고오라는 엄마의 말씀을 듣고 <금강공원>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그 친구와의 해후가 있었다. 부산에 발을 디딘 이후 처음 찾아간 <금강공원>은 언니와 나에겐 모든게 신기하게만 느껴져 볼거리들이 아주 많았고, 폐문시간이 임박해서야 쫓기다싶이 <금강공원>을 내려왔다. <금강공원>이 있는곳에서 멀지않은 위치에 그 친구의 가게가 있다는 걸 알고있으면서도 쉽게 방향을 잡지 못했다. 기회는 자꾸 생기지 않을꺼라는 절박함이 숨가쁘게 뇌리를 자극하고있었다. "언니, 우리 성화네 가게 한번 들려볼까?" "우리가 이런 촌스런 모습으로 가도 성화가 창피해하지 않을까?""잠시만 이야기 나누다가 나오면 되지않겠어?..."
"그럴까?"의견투합을 하고 언니와 나는 그 친구의 가게에 들리기로 했다. 몇걸음 옮겼을까? 길을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투명한 쇼윈도우에 반사되어오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어보였다. 어릴때부터 자라온 시골에서의 궁핍했던 생활에서 진화를 하긴 했지만 오래지 않은 도회지생활에 길들여지지 않은 탓에 남루해보이는건 당연했지만 자꾸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고,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리던 우리들의 자화상의 실체를 낮낮히 볼 수 있었으니....그대로 친구가게를 찾아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에 빠진 언니와 나는 그 친구와 남다르게 친했던 사이였다는데서 생각을 교유하며 친구가게로 향했다.
그 친구의 가게 주변에는 개발이익의 붐을 타고 부동산 업자들의 타산공유로 유흥업소들과 문화시설들이 많이 밀집해 있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집고 들어가자 그 친구의 가게가 시계 視界 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실로 15년만에 만나는 그 친구와 해후는 그렇게 서막이 열렸다. 어릴 때 모습들은 나이가 들면서 많이 세련되어진 것 같았고, 개발이익으로 주변이 어느 도심못지않게 발전과함께 그녀의 가게도 등가선을 이룬 듯했다. "미리 연락을 좀 하고 오지않구..."그 친구도 우리들의 방문에 놀래하면차를 대접할 수밖에 없음을 미안해했다. 그 친구의 세련된 촉수에 자꾸만 내자신을 들여다 봐졌고, 자꾸만 주눅이 드는 듯 했다. 그렇게 첫만남은 연습되지 않은 해후로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피날레를 장식하고 말았다. 그 친구와의 두 번째의 만남은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고 난 후였는지 모른다. 간간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입소문은 친구의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이었다. 내심 한번가서 위로도 해주고 싶었으나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라며 내 자신을 위로하곤 했었다. 대저 부부가 이혼을 하는 바탕에는 남편들의 잘못이 더 많을껄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나자신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집으로 찾아왔다. 아마 <금강공원>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들었던 모양이다.몇년만에 만나보는 친구는 화사한 웃음뒤로 쓸쓸함이 은밀하게 숨기는 듯해 마음이 알싸해왔다. 짧은 만남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고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는 비트강한 메시지만 여운으로 남기고 총총히 사라져갔다. 그 친구의 집에 가기로 마음을 정한 나는 아들과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친구가 가르켜 준 가게를 어렵게 찾아갔다. <금정산> 으로 등반을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초입에서 자그마한 식당을 하고 있었다. 정돈되어있지 않은 실내를 보면서 고객이 많지 않을 것 같은 내 염려에 그친구는 손사래를 친다. “말도마. 등산로 입구라서 그런지 일요일이 되면 눈코뜰새가 없어. 그리고 저기 보이는 파출소 있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순경이 많진 않지만 밥을 대먹기 때문에 살만해...”
그 친구는 나의 방문이 반가운지 먹고 싶은게 뭐냐는 말을 시작으로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심부름을 시키기에 바쁘다. "인사해, 엄마 친구분이시다." 큰아들의 이름은 <행복이> 깜찍함을 트렌드로 각인시켜주는 여동생 이름은 <미소>였다. “내가 잘 한다고 자랑할수 있는 음식은 '탕수육'인데 오늘 특별히 너를 위해서 내 솜씨를 발휘해야겠어, 맛있게 만들어줄게. 잠시만 기다려 알았지? " "그래.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돼, 나는 니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길었으면 하니까. 이야기 해, 나 듣고 있을테니..."어느새 푸짐한 탕수육이 크다란 쟁반에 가득담아 내어놓는다. 모처럼 만난친구에게 머 먹고 싶은게 없느냐면서 만드는게 김밥이다. 순진해보이는 내게 아무것도 할줄 모를것이라는 선입감이 작용하고 있었는지 친구는 요리사마냥 가르켜주고 있었다. "김밥은 촛물을 부어 섞은다음 선풍기 바람에 식혀 바로 말아야지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고 맛이있어.”그친구는 부지런히 입을 놀려가며 하는 걸 보니 보통솜씨가 아닌 것 같아보였다. 그 친구는 만삭(?)이 된 나의 손을 잡고 가까이 있는 <금강공원>으로 데려간다. 가는 길섶으로 울창하게 조림되어있는 나무아래를 걸어가면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남편하고는 왜 헤어진거야? " 응, 성격차이로....”말끝을 흐리는걸 보니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럼 아이들은 어떡하구? ""아이들을 떼놓고 나를 생각할순 없어. 모든걸 포기하는 조건으로 아이들의 양육은 내가 맡기로 했지"“그랬구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결혼은 일찍했는가 보던데...”“응.아주 일찍했었어. 엄마의 반대가 아주 심했었는데....내가 남편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은 죽어버리겠다는 말을 하는거 있지. 내가 머 잘난 사람도 아니고해서 남편생각을 따르기로 마음먹고 결혼을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남편에게서 느껴지던 상징성이나 결혼전에 보았던 믿음성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거야. 그래서 헤어지게 된거지..." 그친구의 말은 이어진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끔 편한 마음으로 전화통화는 하기도 해.... 또 날짜를 정해놓고 아이들도 만나게도 해주고 말이야.”“그러다 아이들이 아빠정을 못 떼면 어떡할라구 그래? 또, 아빠와 엄마가 왜 따로 사는지 정신에 혼란이 온다면 뒷감당이 힘들어질텐데..”머 그렇게까지 될려구...“ 땅거미가 이슥해서야 걱정이 된 나는 서둘러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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