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년동안 고락을 함께 우리부부에겐 '부부의 날' 이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오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은 나만이 느끼고 있은 아닐 것이다. 태생적으로 애정표현에는 둔감한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기념일을 모티브로 해서 이혼을 앞둔 부부나 그런 마음으로 있는 부부에게 다시한번 부부의 소중함을 깨닫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한 기쁨이 어디있겠는가.
가정의 달인 5월이 저물어 간다는 생각에 왠지 허전함이 자꾸만 주변을 맴도는 듯했다. 거리곳곳에 물결치는 카네이션의 주인공을 찾지 못한 쓸쓸함이 더 작용을 하는진 모르겠다. 가정의 달을 만끽하기 위해 거리마다 카네이션과 꽃바구니들이 넘실거렸고, 마음에 두고 있는 분에게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하기위해 각 선물코너 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곤 했다. 내겐 어린이날을 챙겨야 할 어린이도 어버이 날을 신경쓰야할 어버이도 스승의 날에 스승님도 가까이 계시지 않아 그들과 동참할수 없다는 사실에 왠지 소외되는 느낌마저 드는 달 이었다.
달력한장 뒤로 넘기는거 왜에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내게 부부의 날을 기화로 다시한번더 부부의 소중함을 깨닫고 싶다. 1955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었고, 국가 기념일로 제정했기에 올해가 원년이 되는 셈이다. 울산에 살며 사목일을 하시던 목사님이 추진한 뜻깊은 날이다. 우리 부부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헤어지고 싶었던 마음을 먹었던 날도 수없이 많았고,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닌날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잘 견뎌냈다는 뿌듯함이 심연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한 여정뒤에 오는 느긋함이란 고생한 자만이 받는 특혜가 아닐까. 내 생각에는 내 자신만이 손해보고 살고 있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남편이 받아들일때는 미진한 부분이 많이 눈에 뜨일 것이다. 모자라는 부분이나 지나친 부분도 인정해가는 지혜로움도 있어야 할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이기주의적이고 계산적이라 조금이라도 손해보고는 못살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혼을 아주 쉽게 결정내리고 마는 새댁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는 안타까울 때가 많다. 성격이 맞지 않아 내지는 아내나 남편의 외도로...여러가지 이유를 들이대며 조금이라도 양보하고는 못살겠다는 듯 극과 극을 달린다. '결혼초기에 기세를 꺾지 않으면 평생 고생한다'는 낡은 사고방식과 '결혼했는데 어떻게 하겠나' 는 식으로 배수의 진을 치고 아내들이나 또는 남편들을 닥달하는 커플들도 꽤 많이 보아왔다. 아마 내가 가게를 하고 있다보니 그런 부부들이 자주 눈에 뜨이는지 모른다. 생각이 없는 한 두 살 먹은 영아들도 아닌다음에야 상대의 생각을 꺾어놓고말겠다는 발상자체부터 문제를 야기하게 됨을 명심해야할 것 이다.
지난해만해도 하루 평균 458쌍이 이혼을 했다는 소식이다. 전년에 비해 15%정도 늘어났다는 사실에 암울함마저 엄습해온다. 아들을 둔 엄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부부 가릴것 없이 결혼할때의 그 당시의 마음으로 일관한다면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소중하지 않은 가정이 없을 것이고 동반자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부를 보면 참지못하고 약자의 중심에 서서 한마디 하고 만다. 5월달 가정의 달로 각인된지 꽤 오래되었다. 가정의 달인 5월과 21일의 2자에는 부부가 결혼하기 전에는 둘이였다가 21일 뒤에 오는 1의 의미는 결혼하는 그날부터 하나가 된다는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단다.
5월5일인 어린이 날을 위시해서 5월 8일은 어버이 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정이 이루어진 밑바탕을 따진다면 부부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부의 날’을 제정한 건 늦은감이 있다싶을 정도로 환영한다. 모쪼록 '부부의 날' 이후로는 이혼하는 쌍이 줄어들긴 빌어마지 않는다.
오래 전 가끔 남편이 자신의 생명이 역할을 다해 죽을때는 나도 따라죽길 바래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 나름데로 굳이 남편의 생각을 거스리면서까지 따라죽지 않을것이라는 오기를 부릴만큼 용기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내 대답은 "그럴께요." 였다. 물론 남편도 농담으로 한 말이였을테고 현실이 그렇게 쉽게 생각한데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남편도 안했을리 만무다. 그러나 지금은 내 용기가 많이 진화를 거듭해서 "당신이 죽어도 바로 따라죽진 않을래요. 그럼 내 살아온게 너무 억울해서 안돼요.그러니 당신이 죽고 난 2년 후에 죽을래요. 2년은 봐줄수 있죠?"
"그럼 약속이다. 2년은 봐준다. 더 이상은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