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주 가끔 가게에 오시는 할머니는 들리실때마다 하루의 잉여시간을 메꾸기(?)위해 자리부터 찾으시며 그동안 집에서 무료하게만 보내셨던 시간들을 만회하시고자 오랫동안 말씀을 하다 돌아가시곤 한다. 언제나 이야기 말미에는 자신과 말동무 되어준게 마냥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신다. 이야기 중간중간 다른
손님이 오면 내가 일을 해야하는데 자신 때문에 불편을 느낄까봐 노심초사하신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려도 손사래를 치시며 돌아가시곤 한다. 사소한 그런 부분에서도 그분의 성정을 알수 있으리라. 맞벌이 하는 큰아들내외와 일년동안은 시댁풍습도 익힐겸 해서 한솥밥을 먹고 지냈고,
그런 일년이 될 즈음해서 분가를 시켰지만 아직까지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는 말씀을 회고하시며 감겨진 실타래를 풀어놓으신다.
아직까지 아들은 아내(즉 와이프)의 손맛에 길들여지지 않아서인지, 친가에 들리면 꼭 어머님이 손수 지으신 밥을 먹고 간다는 아들은 집으로 돌아갈때는 어머님이 만드신 반찬이라도 사달라고 말하는 아들....그런 아들에게 냉정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는 할머니...
"그럼요. 당연하죠. 같이 사는거 같으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분가를 해서 산다면 아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에 길들여져야죠. 마냥 엄마가 대신 해줄수 없는거잖아요.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도 될 수 있는 문제잖아요.그러니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처음부터 거절을 해버려야할 것 같아요.일전에 TV를 보니 요즘 신세대주부들이 김치를 담글줄 모른다는 포인트가 상당히 높게 나왔더라구요. 우리들이 새댁일때도 어디 그런생각이나 했나요? 김치를 담글줄은 몰랐지만 시댁의 식구들에게 배워서라도 스스로 담아야겠다는 의지는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새댁들은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던가 아니면 시장에서 사먹는걸로 대신한다고 들었어요."
"누가 아니래요. 세태가 이러니...우리 며느리가 처음 시집왔을 때 우리도 고부갈등이 심했어요. 날마다 모임이 있다는 말로 일찍 집에 오지 않으니 뒷 치다꺼리는 전부 내 차지가 되고 말더라구요.따지고 보면
며느리를 들였다면 시어머니로써 대접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도리어 내가 해야하는 입장이니 주객이 전도 된 느낌이였고, 속이 무지 상해지더라구요."
"그렇죠? 아는 지인이 그런말씀하시더라구요. 어짜피 분가를 시켜야한다면 굳이 시댁에 들이지 말고 결혼하자말자 바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아주는게 더 나을꺼라구요. 그분도 일년동안 같이 살다가 분가를 시켰는데 같이 살면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심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게 현명한 건지 머르겠어요. 나 역시 아들내외를 분가시키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기더라구요. 연습없이 실전에 들어가는거니까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았던 거죠."
"우리가게에 오시는 한분도 그런분이 계셨어요. 연세가 많이 되어보여서 자신의 남은 여생을 즐길 나이처럼 보였었지만 넷째 아들내외와 같이 산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며느리가 직장다닌다는 그 이유로 해서 아들내외, 손자, 손녀, 뒷치다꺼리를 도맡아 하셨고, 심지어 학교 도시락까지 신경을 쓰야했으니, 정작 자신의 남은 여생은 고스란히 가정에 저당잡힌 것처럼 보였어요. 시장올실때 마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시장을 나오시는데 보는 제가 다 민망해보이더라구요. 아들은 어느 중견 기업체 간부였고, 며느리는 교편을 잡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으니...하다못해 시장나오실때도 일할 때 입었던 옷으로 그냥 나오시는거예요. 갈아입기 귀찮다는 말씀을 하시긴 했지만 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들 세대는 어디 그랬나요. 어쩌다 아이가 울기라도 하면 시어머님 귀에 들리까 싶어서 전전긍긍했었는데..."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식들의 뒷치다꺼리에 자신의 인생은 저녁놀처럼 저물어가고 있는 그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알싸해왔다. 나 자신도 저분과 같은 모습이 될까 싶은 노파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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