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정순이 2003. 11. 10. 11:26
흙빛으로 어두워진 얼굴을 하고 가게에 들어서는 그녀는 엊그제 이웃하고 있는 친구분들까지 데리고 와서는 우육주문을 한분이다. 작년 이맘때 쯤이던가 야유회를 갈 때 먹기 위해 필요한 수육을 주문해가면서 단골이 된 분이다. 그때 한번 먹었을 때 다른사람들의 반응이나 자신도 맛이 괜찮았다며 다른 손님들까지 모시고 오셔서 같이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친구분도 같은 날 결혼날짜가 택일 된 모양이다.
그렇게 수육을 주문하시고 간지가 며칠전이였다.

"며칠 전 수육주문한거 취소해야겠어요."
"왜요? 무슨일이라도 있나보죠? 얼굴에 근심이 잔뜩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무슨일이예요?"
거듭되는 나의 질문에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움직이는 듯 했고, 힘들게 털어놓는다.
"며느리 될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금방이라도 누선이 자극이라도 받을 듯 눈자위가 스멀거리는 듯 했고, 눈동자 속에 고여져 있던 눈물이 떨어질 듯 했다. 나이의 더께는 저만큼 사라지고 어린아이마냥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쩌나....많이 다쳤어요? 어디서요."
"맛자지 받으러 미장원에 가는길이였데요. 친구들하고 같이 타고 가다가 혼자 다쳤나볻라구요. 몇주 진단이 나왔는것 까지는 아직 자세한 내막은 아직 들어보지 않았어요.결혼하는데 필요한 제반적인거 다 취소해야한다는 급한 마음에 여기부터 달려왔어요.혹시라도
수육을 삶아버리면 취소하지 못하잖아요.그래서....."

여운을 남기며 그녀는 말끝을 잇지못하고 또 한번 팔뚝으로 눈물을 훔친다.
"속 많이 상하시죠?무슨말을 해야 할지 먹먹하기만 합니다."
"아들이 다치지 않는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더 있겠어요.다들 결혼적령기를 넘어서 하는 거라 여간 걱정스럽지 않아요."
"네...... 며느리 될 사람 나이가 많은가 보죠?"
"서른살요. 벌써 예식장도 예약을 끝내 놓은 상태고, 다른것도 예약을 해두었는데 취소를 다 해야하니..."
"그러게요. 결혼시즌이라서 한달전에 예약을 해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러니 예약을 해놓지 않으면 안되었을테죠."
"그런걸 다 취소해야하니..."

귀중한 한 생명앞에서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어쩔수 닥친 현실앞에서는 자신을 돌아볼수 밖에 없는 존재의 가벼움...딸을 시집보내려 하다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삶속으로 들어오고 만 불운에 신부댁은 초상집같은 분위기를 상상해보면 그만 정신이 아뜩해지고 만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런 불운은 겪지 않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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