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문턱에 걸터앉아 잠시 상념에 젖고마는 노스텔지어....
어느부부이든 살아오면서 굴곡이 왜 없었겠냐만은 유난한 남편의 성격과 막내로 자라 고집이 센 내가 남편의 성격을 받아들이는데는 아들이라는 유기체의 작동이 무엇보다 내게는 크다란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 여기까지 오는데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자신할수 있게 말할수 있는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고, 한눈팔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건 시댁이나 친정쪽에서도 다들 인정해줄터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항상 양에 차지 않은 듯 나의 조그만 실수에는 침소봉대를 해 나무라는데 우선순위에 두는 듯 한 남편의 태도에 이해를 못했고, 자신의 실수에는 '남자&남편은 그럴수도 있다'는 듯 그냥 넘어가길 강요했다. 남편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받아 들이기에는 편협한 내성격에는 언밸런스만 증식되었고, 불협화음으로 자꾸만 대립의 각을 세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런 내가 설자리는 아들뿐이였는지 모른다. 5살때까지 아들을 업어 키울만큼
남편한테 받지 못했던 정을 아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었다.잠자리에 들기전 동화책을 읽어주는걸로 사랑을 표현할만큼 유난히 아들에게 정성을 들였을 정도로 소중한 나의 분신이였다. 그런 내가 시댁에 가면 큰동서는 "니는 민규 군에 보내고 나면 엄층 울꺼야" 그 말 바탕에는 하나뿐인 아들의 유년시절에 맹목적인 사랑이랄만큼 내 마음을 다 투자했는지 모르겠고, 아이를 나약(?)하게 키웠는지 모른다.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타고난 나의 유약한 성격이 한 몫 하였으니...
그러나 막상 아들을 군대에 보낼때는 울지않았다. 남자는 한번쯤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마음이 비중을 많이 차지했고 무게중심이 그쪽으로 기울었으니까. 민규가 점점 커가면서 엄마의 손길이 덜 필요로할 때 허탈한 마음이 들만큼 집에 들어가면 늦게 썰렁한 분위기가 나를 못견디게 했었고, 아들은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아져갔다. 하교하고 난뒤에 학원에 가기 바빴을 무렵 나는 컴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엄마의 정성이 제일 필요로 할 고등학교 3학년 무렵때부터는 집에 퇴근하기 바쁘게 인터넷에 접속하고 대화방에들어가면 시간개념을 잊어버릴만큼 몰두했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자연히 아들에게 쏟아야 할 시간을 컴에 다 뺏기고 말았고, 컴에 할애한 나머지 짜투리 시간에 성의 없이 차려준 음식에는 손길을 대지 않는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쩌다 정성을 쏟아 음식을 만들면 그나마 맛있게 먹곤했다. 그런 날들의 연속일 때, 머리 속에는 알력으로 투쟁을 벌리고 있었다.
'니가 아들에게 정성을 쏟는다고 실력이 달라지지 않아. 자신이 알아서 해야할 공부인걸..'
'아냐!엄마가 정성을 쏟은만큼 자식은 보답한단다. 그러니 엄마가 뒤에서 후원해주고 있다는 걸 아들이 느끼면 얼마나 든든해 하는지 몰라. 니 시간을 가지는데 조금만 투자하고 아들에게 정성을 다 쏟아봐.' 수능시험을 볼 무렵 남들은 백일기도를 드린다 또는 부적을 쓰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을때도 그런거 미신이라고 치부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켰고, 시간이 생길 때마다 대화방을 기웃거리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통제력을 잃고 있었다.
아침에 깨워줘야 할 시간에도 지난밤 늦게까지 컴앞에 앉아있었던 내가 일어날 시간을 넘겨버린적이 있었고, 아들이 학교 갖다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간식을 만들어야 할 시간을 지나친적이 부지기수였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대학에 갔고, 지난 1월달에는 군대에 입대했다. 거진 매달이다싶이 휴가오는 아들이지만 보낼때는 언제나 마음이 마음이 아려온다.그런 어제 아들의 낯빛이 어두워보였다.
"민규야 무슨일이라도 있어?"
"아뇨."
"그런데 왜 얼굴색이 그래?"
"내일 귀대할려니 아득해서요. 시댁에 끌려가는 며느리같은 심정...우리 군인들은 그렇게 표현을 하곤 해요. 남들은 다하는데 왜 나는 못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하긴 하지만 정말 귀대하긴 싫거든요."다시 보내야 하는 엄마의 입장....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 뭐가 귀한줄 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자꾸만 마음이 변주곡을 울리고 파장을 일으키고 만다. 그런 아들에게 언제인가 남편과의 싸움 끝에 격앙되어있을 때 아들이 집에 오는 것이였고, 이야기 끝에 남편의 흉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 제게 아버지 험담은 하지 마세요. 듣기 거북해요."하며 나에게 저항해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멈칫하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누구보다 아들은 나를 이해해주었고, 희생하며 살고 있는 내 삶이 안되어보였든지, "어머니 인제 어머님도 자신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께요."하며 나를 다독거리던 아들이였기에 그 실망(?)은 더욱 크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의 행동이 옳지 못했음을 안다.그런 아들이 더 믿음직스럽게 다가왔으니까.....
남들이 남편흉을 보거나 아내흉을 보면 제지하고 말거나 흘려듣고 만다. 특히 남편들이 아내 흉을 볼때는 속이 더부룩해질만큼 듣기 거북하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이 하는 행동이 다 마음에 들어서는 절대 아니다. 남들이 내게와서 남편흉을 보는것보다 남편밥을 풀 때 뚜껑을 덮어준다는 아내의 행동이 더 내가 배울점이 많나는거에 후한점수를 주게 되고,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더 시간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일탈의 파란을 꿈꿀 때 멈칫거려지는건 아들이 옛날에 내한테 꾸짖던 모습이 또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아들의 목소리가 내 생각 구심점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부부이든 살아오면서 굴곡이 왜 없었겠냐만은 유난한 남편의 성격과 막내로 자라 고집이 센 내가 남편의 성격을 받아들이는데는 아들이라는 유기체의 작동이 무엇보다 내게는 크다란 구심점 역할을 하였고, 여기까지 오는데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자신할수 있게 말할수 있는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고, 한눈팔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건 시댁이나 친정쪽에서도 다들 인정해줄터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항상 양에 차지 않은 듯 나의 조그만 실수에는 침소봉대를 해 나무라는데 우선순위에 두는 듯 한 남편의 태도에 이해를 못했고, 자신의 실수에는 '남자&남편은 그럴수도 있다'는 듯 그냥 넘어가길 강요했다. 남편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받아 들이기에는 편협한 내성격에는 언밸런스만 증식되었고, 불협화음으로 자꾸만 대립의 각을 세운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런 내가 설자리는 아들뿐이였는지 모른다. 5살때까지 아들을 업어 키울만큼
남편한테 받지 못했던 정을 아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었다.잠자리에 들기전 동화책을 읽어주는걸로 사랑을 표현할만큼 유난히 아들에게 정성을 들였을 정도로 소중한 나의 분신이였다. 그런 내가 시댁에 가면 큰동서는 "니는 민규 군에 보내고 나면 엄층 울꺼야" 그 말 바탕에는 하나뿐인 아들의 유년시절에 맹목적인 사랑이랄만큼 내 마음을 다 투자했는지 모르겠고, 아이를 나약(?)하게 키웠는지 모른다.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였지만,타고난 나의 유약한 성격이 한 몫 하였으니...
그러나 막상 아들을 군대에 보낼때는 울지않았다. 남자는 한번쯤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 한다는 마음이 비중을 많이 차지했고 무게중심이 그쪽으로 기울었으니까. 민규가 점점 커가면서 엄마의 손길이 덜 필요로할 때 허탈한 마음이 들만큼 집에 들어가면 늦게 썰렁한 분위기가 나를 못견디게 했었고, 아들은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아져갔다. 하교하고 난뒤에 학원에 가기 바빴을 무렵 나는 컴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엄마의 정성이 제일 필요로 할 고등학교 3학년 무렵때부터는 집에 퇴근하기 바쁘게 인터넷에 접속하고 대화방에들어가면 시간개념을 잊어버릴만큼 몰두했었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자연히 아들에게 쏟아야 할 시간을 컴에 다 뺏기고 말았고, 컴에 할애한 나머지 짜투리 시간에 성의 없이 차려준 음식에는 손길을 대지 않는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쩌다 정성을 쏟아 음식을 만들면 그나마 맛있게 먹곤했다. 그런 날들의 연속일 때, 머리 속에는 알력으로 투쟁을 벌리고 있었다.
'니가 아들에게 정성을 쏟는다고 실력이 달라지지 않아. 자신이 알아서 해야할 공부인걸..'
'아냐!엄마가 정성을 쏟은만큼 자식은 보답한단다. 그러니 엄마가 뒤에서 후원해주고 있다는 걸 아들이 느끼면 얼마나 든든해 하는지 몰라. 니 시간을 가지는데 조금만 투자하고 아들에게 정성을 다 쏟아봐.' 수능시험을 볼 무렵 남들은 백일기도를 드린다 또는 부적을 쓰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을때도 그런거 미신이라고 치부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켰고, 시간이 생길 때마다 대화방을 기웃거리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통제력을 잃고 있었다.
아침에 깨워줘야 할 시간에도 지난밤 늦게까지 컴앞에 앉아있었던 내가 일어날 시간을 넘겨버린적이 있었고, 아들이 학교 갖다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 간식을 만들어야 할 시간을 지나친적이 부지기수였다. 세월이 흘러 아들은 대학에 갔고, 지난 1월달에는 군대에 입대했다. 거진 매달이다싶이 휴가오는 아들이지만 보낼때는 언제나 마음이 마음이 아려온다.그런 어제 아들의 낯빛이 어두워보였다.
"민규야 무슨일이라도 있어?"
"아뇨."
"그런데 왜 얼굴색이 그래?"
"내일 귀대할려니 아득해서요. 시댁에 끌려가는 며느리같은 심정...우리 군인들은 그렇게 표현을 하곤 해요. 남들은 다하는데 왜 나는 못하겠나 하는 생각으로 하긴 하지만 정말 귀대하긴 싫거든요."다시 보내야 하는 엄마의 입장....군대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 뭐가 귀한줄 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자꾸만 마음이 변주곡을 울리고 파장을 일으키고 만다. 그런 아들에게 언제인가 남편과의 싸움 끝에 격앙되어있을 때 아들이 집에 오는 것이였고, 이야기 끝에 남편의 흉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 제게 아버지 험담은 하지 마세요. 듣기 거북해요."하며 나에게 저항해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멈칫하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누구보다 아들은 나를 이해해주었고, 희생하며 살고 있는 내 삶이 안되어보였든지, "어머니 인제 어머님도 자신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께요."하며 나를 다독거리던 아들이였기에 그 실망(?)은 더욱 크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의 행동이 옳지 못했음을 안다.그런 아들이 더 믿음직스럽게 다가왔으니까.....
남들이 남편흉을 보거나 아내흉을 보면 제지하고 말거나 흘려듣고 만다. 특히 남편들이 아내 흉을 볼때는 속이 더부룩해질만큼 듣기 거북하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이 하는 행동이 다 마음에 들어서는 절대 아니다. 남들이 내게와서 남편흉을 보는것보다 남편밥을 풀 때 뚜껑을 덮어준다는 아내의 행동이 더 내가 배울점이 많나는거에 후한점수를 주게 되고,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더 시간이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일탈의 파란을 꿈꿀 때 멈칫거려지는건 아들이 옛날에 내한테 꾸짖던 모습이 또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아들의 목소리가 내 생각 구심점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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