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하순쯤, 남편 소유로 된 아파트를 내이름으로 변경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했다. 그런 과정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터라 막막하기만 했다. 법원을 통해 갖춰오라는 서류를 메모지에 다 적어놓긴했지만, 그 서류들을 다 갖추려니 동사무소와 구청을 오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생각이 앞서 몇 번의 망설임끝에 용기를 냈다. 카페를 통해 알게 된 분이시다. 혹시나 도움을 청할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적어뒀었다.마른침을 삼키며 저장해둔 번호의 버튼을 눌렀다. 몇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낯선 남성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들려왔다. '저기요...' "저기 있죠...? 저는.." "저는 '00산악회' 카페에 가끔 들리는 가인이라는 사람인데요." "아!가인씨세요?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시구요.? 그런데 어쩐일로 전화를 하셨어요?" 라는 반색에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했던 순간들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자초지종을 듣고난 그 분은 몇가지 서류만 준비해오면 같은 건물에 있는 아는 후배에게 말을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과정의 연장선에서 구청을 가게 됐다. 바쁜 와중에도 구청직원이 많은 도움을 줬다. 서류 준비과정이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구청직원이 요구하는데로 다 하고나니,서류정리가 끝이났다는게 아닌가.
어렵게 전화를 해 부탁을 해놓구선 내쪽에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기게 된셈이다. 하루종일 기다리게 했다는 미안한 생각이 늘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갔다.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온 사진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난 후 그분의 반가운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런 이후에는 가끔 아주 가끔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묻곤 했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약속을 어긴 미안함에 내가 접대를 해야함에도,그분께 오히려 술대접을 받았으니...
카페 가입은 일년은 된 듯하다. 동창회 카페에서 본 사진들이 웃음짓게 했었는데, 출처가 '부산 법우 산악회'였다. 가볍게 서핑하는 마음으로 그 사이트를 방문하게
되었다. 모든 카페가 그렇듯이 원문을 볼려면 카페가입을 해야만한다. 어떤 내용들이 카페를 꾸며놓고 있을까는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변호사 사무실에 적을 둔 사람들이 구성원을 이루고 있는 산악회였고, 카페회원 가입 자격도 (부산 지방 변호사 사무직원에 가입된 자)로 한정 되어있었다. 원문을 보기 위해 가입은 했었지만, 활동할 마음은 전혀없었다. 마음이 전혀없었다기보다 직업적 노선이 달라 산악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는 이유가 더 적절한 표현법일테다. 그런 어느날 등업이 떠억하니 되어있는게 아닌가. 가입인사를 해야하는 장벽을 넘어야 등업을 해줄법한데도 등업을 먼저 해줬다는 기쁨에 고마움을 표시해야겠다는 생각에 회장님께 쪽지를 보내면서 인연의 끈을 연결한 셈이다.
그런 지난 구랍 26일, 카페 산행공지에 2012년 1월 28일날 ,태백산 산행이 예정되어있었다. 태백산의 눈 덮힌 설경과 상고대로 휘어진 나뭇가지들의 사진들이 날 매료시켰다. 언제이든가,눈발이 휘날리는 남덕유산 산행에서 남편이 찍어온 사진들을 보고, 언젠가 눈이 휘날리는 산행과 나무에 겹겹이 쌓인 상고대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갖고있었던 내게 산행공지로 포스팅되어있는 태백산 설경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두려웠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추위에 못견뎌 시간을 지체할 경우 같이 가는 일행들에게 민폐나 끼치지 않을까는 걱정, 기상예보에서는 이번주 토요일까지는 따듯할 것이라고는 하나 영동쪽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기상으로 갑작스런 폭설로 조난이라도 당하는건 아닐까하는 기우...그래도 용기를 내는쪽으로 무게 중심의 기울기축이 후자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만큼 남덕유산 상고대의 강한 이미지가 뇌리에 각인되어있었던 것이다. 생각에 거기까지 미쳤고, 아는 분을 통해 산행하는데 동참할 것이라는 통기를 했다.
그런 어제, 밤새 잠을 설쳤다. 몇년만에 5시간 코스의 등산을 하는 것도 걱정해야할 정도인데, 아이젠까지 착용하고 가파른 눈길을 걷는다는 생각을 하려니 아찔하기까지했다. 그랬지만, 일말의 위안은 몇 년전 12시간 내지 13시간 코스의 산행도 거뜬히 해냈던 내공에 기대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약속을 정하고 난 후 공교롭게도 설명절 날부터 말성을 일으키던 장염증세하며 감기몸살까지 곂쳤으니 그 걱정이 오죽했으랴.
날씨가 많이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완전무장을 했다. 내피용 패딩점퍼에 기능성인 고아텍스 자켓,두꺼운 겨울용 머플러하며 귀막이,마스크...시간 안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늦지 않아야한다는 생각탓인지 제일 먼저 도착이 됐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이라 어색했지만, 식순에 따라 일행 모두가 인사를 하고 나서부터는 한결 대하기가 편해졌고,친근감도 들었다. 순발력에 재치와 위트를 겸비한 산행대장님으로인해 즐거움이 배가되는 듯했다. 일행 중 어느분은 눈꽃을 보기 위해 가족들이 다 참석했다. 화기애애한 가족애를 보는 듯해 참 보기 좋았다.
4시간 40여분을 달려 태백산 부근에 닿으니 눈꽃축제를 보기 위해 몇 백대의 관광용 차량들이 일렬횡대로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다. 신작로 가장자리에는 군데군데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제설작업을 한 뒤 한쪽에 쌓여있는 눈들이였다. 고개를 들어 사방 산을 올려보니 나뭇가지에 덮힌 잔잔한 눈꽃들과 나무들이 농담을 달리하며 수묵화같은 기품을 풍기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바람이 불지않았고, 날씨는 포근했다. 방한용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며 스패츠, 아이젠까지 착용하고 난 후 들메끈을 단단히 조였다. 사람들이 다닌 등로는 사람들이 밟아 얼마의 눈이 내렸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등로 옆으로 스틱으로 눌러보니 45cm내지는 50cm정도는 내렸음직할 정도로 깊이 내려갔다.
1시간 40분쯤 걸었을 때, 천제단까진 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2.2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들머리에서 천제단까지는 4.0km다. 두 시간여를 걸었는데, 반도 못왔다니...산행대장님은 천제단 가기를 포기하고, 중간 기착점에서 점심을 겸한 산신제를 지내기로 자리를 만들었다. 크다란 마른명태며 많은 양의 밤, 배..제법 그럴듯한 제단이 마련되었고, 회장님의 축문이 낭독되었다. 제례를 지내면서 따라주는 막걸리는 미처 준비하지 않은 탓에 순발력 있는 재치로 한 분의 입속이 퇴주잔을 대신했다. ㅎ
눈이 쌓인 바닥을 짚고 절을 한 탓에 손들이 빨갛다. 따끈한 라면국물을 담은 용기를 손에대고 손을 녹였고, 얼었던 몸을 녹이기 위해 라면국물을 들이켰다. 동족방뇨정도였다. 시린 발을 녹이기에는 움직여야한다는 생각이 암묵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하산을 서둘렀다. 얼음을 조각해놓은 26점의 조형물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뽐내는 듯했고, 카메라 섬광이 터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음울(?)한 탄광촌이 세계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카지노로, 눈꽃축제로 지역특성화를 살린 그들이 대단해보였다. 몇 미터 앞에서는 에스키모족들이 얼음과 눈으로 만든 반구형의 이글루를 형상해 얼음으로 조각한 카페가 눈길을 끌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리필형이지만, 커피를 마시려는 줄이 꽤 길게 늘어서있었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려나'는 생각에 서슴없이 지갑을 열었다. 덤으로 누린 호사였다.
친목을 도모하는 산악회이긴 하지만, 손익계산에 많은 차질을 초래할 것 같은 식당에서의 저녁약속이 준비되어있었다. 늦은 밤 포만해진 배를 소화시킬 여유없이 귀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눈덮힌 등로를 걸었던 탓과 감기몸살에 한기와 오한으로 혼곤해진 몸을 꿈의 여행으로 이끌었다.
처음인데도 환대해주신 부산 00 산악회 회원들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단기 4345년 1월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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