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졸음을 좇기위해 가게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시야속으로 같은 블록에서 가게를 하다가 최근에 그만둔 아주머니가 아직 뒤처리가 마무리 되지 않아 가게에 들렸다 집으로 가는 길이였든 모양이다. “인제 좀 편안하게 쉬셔도 되겠네요” “쉴 나이는 됐죠, 그래도 아직은 할 게 많이 남아있어요. 우선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도 받아야하구, 또 딸도 며칠 있지않으면 아이를 낳거든요. 그럼 아무래도 내가 딸네집에 가서 도와줘야 할것 같아요. 친정엄마인 내가 곁에 있어주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요?" "요즘 살이 많이 빠졌든데 어디 아프신건 아니구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가게를 접게 된거에요. 물론 가게임대료를 맞추고나면 내게 떨어지는 이윤은 많지 않지만 집에있으면 머하겠나 싶어 계속 이어갈까 했는 데 지난 번 검진을 받아보니 간에 좀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해서 이웃에게 가게를 봐달라고 부탁하고 매번 병원에 가기도 난감하더라구요. 내시경을 받는 데 보이지가 않더라는 의사선생님 말씀도 있었구 해서....”
“연세가 그정도 되셨으면 이제 집에서 편히 쉬실때도 되었죠. 큰 아들 있는 데 가시면 되겠어요?”그분은 큰아들 말이 나오니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난 절대 자식들한테는 의지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내 몸이 불편하면 어떡하겠어요? 아들에게 의지라도 해야죠.” “아무도 모를꺼에요. 내가 얼마나 힘들게 세상을 살아왔는지는요. 큰아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고 달포가 지났을까?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버렸지머에요. 그 전부터 자금 압박에 시달리긴 했었어도 아들 유학비용만큼은 해결해줄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냈었거든요. 그런데 덜컥 부도가 났으니 어떠했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유학을 가면 보통 3년이라는 기간이 걸리는 데 우리아들은 1년반만에 공학박사 학위를 따고 귀국을 했었어요.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나는 바람에 송금하는 액수가 줄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겠죠.
다른 박사학위도 아니고, 공학박사는 그 기간안에 취득한다는 건 실지 힘들거든요. 한때는 TV에 나오기도 했었는걸요...” 처음듣는 이야기다. 그분이 같은 블록에 이사온지는 몇 년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분과의 이런이야기는 나누어보지 않았으니...... 그분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결코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는건 아니다. 수도요금으로 가게주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울때도 있었고(자신은 자신이 사용한 이상한 양만큼의 수도요금만 지불하면 될거 같은 데 가게주인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생각으로 주인이 요구하는 액수만큼 주지 않아, 결국은 주인이 포기를 했다) 가끔 물건사러 오는 고객들과의 마찰도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는 “ 지독하다”는 이미지로 굳어있다. 처음 그분을 만난 건 시장 한 가운데서 자그맣게 좌판을 펴놓고 계란만두를 구워서 팔때였다. 그 당시만해도 계란만두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계란 만두를 사먹을려면 제법 긴 시간동안 기다려야했을정도였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날만 새면 몇집건너 같은 업종이 생기곤해 내리막길의 음영이 긴그림자를 드리웠었다. 다시 시작한게 떡집이였고, 한번 기울기 시작하니 그것마저 여의치않아 다시 시작한 게 식품가게였다. 콩나물,도라지,토란줄기, 고사리, 두부...우리가 음식을 하기 위해필요한 식재료들을 다 팔았었다. 그러니 얼마나 바빴겠는가. 내가 있는 재래시장에서 제일 일찍 셔터문을 여는 가게가 그 집이였을정도로 컴컴한 재래시장안을 백열등으로 훤히 밝히곤 했었다.그런 그분도 세월의 무게에는 견디지 못했든지 70이라는 고지에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둥그런 안경알 너머로 나이를 가늠하지 못할정도로 하얀 피부와 젊었을때는 한 미모 했을 듯 싶은 성정이다. 그분의 인생 도정에 격랑의 파고를 넘나들었든 적도 많았겠지만, 만선으로 돌아온 선장의 모습과 다름아니다.
한낮의 졸음을 좇기위해 가게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시야속으로 같은 블록에서 가게를 하다가 최근에 그만둔 아주머니가 아직 뒤처리가 마무리 되지 않아 가게에 들렸다 집으로 가는 길이였든 모양이다. “인제 좀 편안하게 쉬tu도 되겠네요” “쉴 나이는 됐죠, 그래도 아직은 할 게 많이 남아있어요. 우선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도 받아야하구, 또 딸도 며칠 있지않으면 아이를 낳거든요. 그럼 아무래도 내가 딸네집에 가서 도와줘야 할것 같아요. 친정엄마인 내가 곁에 있어주면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요?" "요즘 살이 많이 빠졌든데 어디 아프신건 아니구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가게를 접게 된거에요. 물론 가게임대료를 맞추고나면 내게 떨어지는 이윤은 많지 않지만 집에있으면 머하겠나 싶어 계속 이어갈까 했는 데 지난 번 검진을 받아보니 간에 좀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해서 이웃에게 가게를 봐달라고 부탁하고 매번 병원에 가기도 난감하더라구요. 내시경을 받는 데 보이지가 않더라는 의사선생님 말씀도 있었구 해서....”
“연세가 그정도 되셨으면 이제 집에서 편히 쉬실때도 되었죠. 큰 아들 있는 데 가시면 되겠어요?”그분은 큰아들 말이 나오니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난 절대 자식들한테는 의지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내 몸이 불편하면 어떡하겠어요? 아들에게 의지라도 해야죠.” “아무도 모를꺼에요. 내가 얼마나 힘들게 세상을 살아왔는지는요. 큰아들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고 달포가 지났을까?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버렸지머에요. 그 전부터 자금 압박에 시달리긴 했었어도 아들 유학비용만큼은 해결해줄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냈었거든요. 그런데 덜컥 부도가 났으니 어떠했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유학을 가면 보통 3년이라는 기간이 걸리는 데 우리아들은 1년반만에 공학박사 학위를 따고 귀국을 했었어요.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나는 바람에 송금하는 액수가 줄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겠죠.
다른 박사학위도 아니고, 공학박사는 그 기간안에 취득한다는 건 실지 힘들거든요. 한때는 TV에 나오기도 했었는걸요...” 처음듣는 이야기다. 그분이 같은 블록에 이사온지는 몇 년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분과의 이런이야기는 나누어보지 않았으니...... 그분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결코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는건 아니다. 수도요금으로 가게주인과 언성을 높이며 싸울때도 있었고(자신은 자신이 사용한 이상한 양만큼의 수도요금만 지불하면 될거 같은 데 가게주인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생각으로 주인이 요구하는 액수만큼 주지 않아, 결국은 주인이 포기를 했다) 가끔 물건사러 오는 고객들과의 마찰도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는 “ 지독하다”는 이미지로 굳어있다. 처음 그분을 만난 건 시장 한 가운데서 자그맣게 좌판을 펴놓고 계란만두를 구워서 팔때였다. 그 당시만해도 계란만두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계란 만두를 사먹을려면 제법 긴 시간동안 기다려야했을정도였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날만 새면 몇집건너 같은 업종이 생기곤해 내리막길의 음영이 긴그림자를 드리웠었다. 다시 시작한게 떡집이였고, 한번 기울기 시작하니 그것마저 여의치않아 다시 시작한 게 식품가게였다. 콩나물,도라지,토란줄기, 고사리, 두부...우리가 음식을 하기 위해필요한 식재료들을 다 팔았었다. 그러니 얼마나 바빴겠는가. 내가 있는 재래시장에서 제일 일찍 셔터문을 여는 가게가 그 집이였을정도로 컴컴한 재래시장안을 백열등을 훤히 밝히곤 했었다.그런 그분도 세월의 무게에는 견디지 못했든지 70이라는 고지에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둥그런 안경알 너머로 나이를 가늠하지 못할정도로 하얀 피부와 젊었을때는 한 미모 했을 듯 싶은 성정이다. 그분의 인생 도정에, 삶의 디테일마다 격랑의 파고를 넘나들었든 적도 많았겠지만, 만선으로 돌아온 선장의 모습과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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