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무촌이 빚은 참극

정순이 2006. 7. 3. 11:30
 

나같이 특출한 직장도 없는 총각이 결혼 상대로 여성을 고른다는 건 실현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거와 마찬가지다. 해서 눈높이에 맞는 적당한 여성이 나타나면 언제라도 결혼할꺼라는 꿈에 부풀어있던 기억은 5년 전의 일이다. 만남의 횟수가 늘어갈때마다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데 자신이 없었다. 외모는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을정도로 준수했으나 몇 번 겪어본 그녀의 성격은 모난 구석들이 언뜻언뜻 비치곤했다. 혹시라도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을까는 생각에 망썰여지는 것이었다.

 

나의 생각 바탕에는 하루에도 수십쌍씩 이혼대열에 합류한다는 어느 여론조사의 수치를 보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잘나가는 직장에 다니는것도 아니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어떤 여성이 나한테 시집오겠나는 생각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내가 잘하면 되겠지, 내가 아내한테 잘하면 아내도 남편인 나에게 못하기야 하겠나......’ 이런 저런 생각을 가슴 언저리에 묻어두고 난 그녀를 선택했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갔다. 엄마의 판박이라고 할만큼 엄마를 쏙 배딺은 귀여운 딸아이도 하나 얻었다. 이제 막 두돌이 지난 아이는 발육속도가 빨라 받침이 있는 글들도 어렵지 않게 읽곤해 주위의 시샘어린 시선을 받곤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어려움이 있을 거 같지 않은 평범한 가정처럼 보일것이다. 그러나 항상 긴장속에서 팽팽한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연속의 삶이었다. 속으로는 곪을데로 곪아 언제라도 건더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부비트랩을 안고 살아가고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친구도  눈치채지 못했을것이다. S는 자꾸만 아내한테서 멀어지는 마음을 밖에서 해결하려했다. 그런 S는 오늘따라 술생각이 간절했다. 평소때도 술을 즐겨했던 S이긴 하지만, 오늘같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욱 간절했다.

 

S의 생각은 비단 술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번 갔었던 술집마담의 얼굴이 떠오를때마다 짜릿한 전율이 말초신경을 자극해왔다. 5여년간 한솥밥을 먹으면서 자신의 사소한 실수도 용남하지못하고  부부싸움이 벌어질때마다 아내의 패악부리던 모습을 떠올리면 술집행을 자제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마담의 다정한 눈길은 아내의 패악을 덮을정도로 아내에게서 못 느꼈던 푸근함이 몹시도 그리웠다.

 

일이 꼬일려고 하니 낮에는 그 술집마담까지 내 휴대전화로 “요즘은 왜 우리집에 오시는 일이 뜸해지셨어요?“ 라는 전화가 온게 아닌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해서 무슨 핑계를 대든지 퇴근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비록 부부사이는 무미건조하긴하지만, 그래도 남편인 자신을, 아버지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생각하며 몇 번이나 휴대전화 폴드를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일말의 양심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뒤늦게야 직장동료들과 같이 회식을 하기로 했다’는 모범답안을 마련하고 휴대전화 폴드를 열었다. 낯익은 전화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몇 번의 공명음이 울렸는데도 반응이 없자,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마냥 오금이 저려왔다. 학창시절 가난한 소작농의 맏이로 자란 자신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없음을 절감하며 살았다. 문구점을 지나칠때마다 진열장안에 고급스럽게 보이는 장방형 케이스안에 디스플레이 되어있던  몽블랑 만년필이며, 짝지가 늘 자랑하는 그 모든 것들을 꿈꾸는 것조차 자신에겐 한갓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딸아이의 앙징스럽고 느릿한 목소리가 ”여,보,세,요?“ ”응, 아빠다...“ ”응, 아빠야? 근데 왜 빨리 집에 오지않어?“ 순간 할말을 잊고 멈칫해지는 S.....”오늘 직장에서 회식 있는 데 아무래도 집에 늦게 들어갈 거 같아. 그러니 엄마한테 그렇게 전해. 알았지? 우리착한 공주..“ ”알았어~~“

 

딸아이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퇴근을 재촉했다. 퇴근길을 서두르면서도 혹시나 올지도 모를 아내의 전화를 생각하며 끄기 버튼을 눌러놓았다.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녀의 가게가 숨어있는 듯 낮게 들어서있다. 도회지의 화려한 네온사인옆으로 은은하고 붉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숨어들듯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얇은 실루엣을 걸친 마담이 호들갑을 떨며 반색을 했다. ”어서오세요. 이게 얼마만이에요? 제가 전화하지 않았음 오시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죠?“ 애타게 기다린 듯 눈까지 가볍게 흘겼다.

꼬냑  한병과 시신경을 자극하는 과일 안주들이 곁들여지고 마담이 따라주는데로 받아마신 S는 회포한번 풀지못하고 넉다운되고 말았다. 귀소본능이라고 했든가? 술에 웬수라도 진 듯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목구멍으로 털어부었건만,동물적 감각이 아직 살아있었던 모양인지 집을 찾는데는 어려움을 겪지않았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어준 아내는 인사불성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등에 대고 악다구니를 쏟아낸다. ”술에 무슨 웬수라도 진 사람마냥 매일 어디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 다니는거에요?“

 

남편의 대답을 기다린다는 건 무리였겠지만 요즘 들어서 자주 만취가 돼서 퇴근하는 남편이 그렇게 밉게 보일수가 없었고, 씻지도 않고 벌써 보료위에 큰 대자로 뻗어버린 남편의 태도가 너무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눈에 뜨이는게 양장본으로 되어있는 날카로운 책을 집어던졌다. 순간의 화를 누르지 못한 돌발적인 행동이였지만, 화가난 마음은 요원의 불길처럼 걷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비화되어갔다. ”좀 일어나보세요!“ S가 일부러 자는척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아내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남편의 목을 조르며 악다구니를 쏟아낸다.

 

”정말 자는척 할꺼야? 내가 모를 줄 알고? 얼른 일어나봐요. 매일같이 술마시고 다니는 이유나 좀 들어보자구요.“ 그래도 반응을 않는 남편의 엉덩이를 있는 힘을 다해 꼬집었다.  그렇게 하는 데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남편을 뒤로하고 아내는 아들의 방으로 건너가버렸다. 창문을 통해 희붐한 여명이 밝아오자, 부교감신경계가 활동을 하기위해 기지개를 켰다.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려든 S는 오른쪽 머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손을 갖다대본다. 머리카락이 끈적근적한 액체로 뒤엉켜있다.

 

‘이게 머지‘ 라는 생각에 세면장으로 달려간 S는 거울을 보고 경악한다. 통증이 있던 부분에서  흘러나온 피가 나아갈 길을 찾지못하고 길을 막고 있는 머리카락에 엉킨 모양이다. 그토록 심하게 기물에 부딪혔는데도 느낌도 없이 잠에 골아떨어졌던 자신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었고, 무의식 상태에서 아무런 방어자세도 취하지 않는 자신에게 아내가 그토록 모진 행동을 취했다는 생각을하면 치가 떨렸다. 그러고 보니 얼굴을 받치고 잠이 들었었는지 손에도 마른피가 묻어있었다. 베개에도 침대 시트에도...그날은 대충 머리를 감고 출근을 했다. 퇴근해 침대위를 보니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선혈이 낭자했을 광란의 밤이 남긴 상처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침대 시트, 베개에만 시선이 머물렀던 아침과는 달리 이불에도 제법 많은 양의 피가 묻었던듯 남아있다.

 

만에 하나라도 피를 쏟아내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이르자 소름이 오싹하고 돋았다.  요즘 들어 젊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인다는 말을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들어왔었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일을 겪고보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권에 자신의 평생을 저당잡혀야 하나 라는 비애감마저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어느누가 내가 겪을 일을 이야기한다면 믿을것인가! 인터넷의 힘을 빌어 동영상으로 올린다면 네티즌들의 반응들은 어떻게 나올까. 하다못해 집에 키우는 애완견에게도 손을 대면 학대한다고 인터넷에 올려지고, 누리꾼들의 뜨거운 댓글들이 폭주하는 세상인데....아내는 자신의 화가 났음을 술취한 남편의 실수를 트집잡음으로써 해결하려했는지 모르지만, S의 가슴 저 밑바닥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는걸 감지나 했을까? ’그까짓것‘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밤새 토악질을 해대도 가슴속에 남겨져 있는  이 응어리는 다 토해내지 못할 이 엄청난 사실을 언제까지 감추며 이해하며 덮고 살아야한단 말인가! 


여성의 지위 향상의 부산물로 낙인찍혀버린 현실, 아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야 한다는 말인가! 참담한 현실에 자꾸만 눈자위가 스멀거린다. 자식, 그동안 일궈놓은 흔적들....모든걸 뒤로하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제일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가족에게 의외로 함부로 하는 경향이 많다. 생각을 한다음 말을 하지 않고 '아내니까, 또는 남편이니까, 내 속으로 난 자식이니까  어떠한 실수도 용납이 되겠지'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모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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