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만학도

정순이 2006. 7. 16. 11:39

 

자그마한 체구에 토끼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가게에 들어선 그녀는 항상 밝은 모습이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보네요. ” “공부하고 오는 길이에요.” 연치가 제법 드신 분이라, 공부하고 온다는 그분의 말에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따라갔다. 자신을 보고 있는 시선의 따가움을 느꼈는지 “영어 공부하고 있어요.” “ 아니 그 연세에 영어 공부를 한단말이에요?”


믿기지 않는 듯한 나의 되물음에 “ 벌써 2년이 넘었는걸요.얼마나 재미있는 지 몰라요. 선생님을 따라 영어를 따라 읽고 팝송도 따라부르기도 해요.” 대저 그 연세라면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가려켜 주는 곳에서 스포츠 댄스나 노래부르기, 가볍고, 쉽게 배울수 있고 노후를 즐길 수 있는 걸로 시간활용을 한다는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분은 도심지로 나가 학원에서 매달 얼마간의 비용을 들여가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로 어떤 커리큘럼(curriculum)을 위주로해서 배우는 거에요.?” “ 중학교 과정정도에요. 그래도 reading, speaking 다 하는거죠머, 또 팝송도 배우구요. ” “그래요? 그럼 노래방에 가시면 자막을 보고 팝송도 따라하겠네요?” “따라하진 못해도 입으로 흥얼거리기까진 할수 있죠. 주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수산 잭의 ‘에브그린’, ‘네일 세다카의 유미인 에브리싱 투미’ 대체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곡들을 배우죠.”

 

“대단하신데요?” 자신의 행동을 대단하게 본다는 나의 말에 우쭐한 기분이 들었겠지만, 겸양한 태도로 일관했다. “멀요....” “ 그 연세에도 불구하고 공부할려는 자세가 대단한거죠.” “학교 다닐 때 배우긴했지만, 다시 시작할려니 모든게 낯설고 힘들어요.” “당연하죠. 저는 그 같은 기회가 와도 도전하지 못했을 거 같은데요, 두려워서요. ”


"그래도 기회가 오면 욕심이 생겨 다 할꺼에요.“ ”그럴까요?“ 당연하지 않겠나는 듯 엷은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스스로 마스트플랜을 설정해놓고 그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게, 충만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쉼없이 윤색해가는 그녀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외형적으로 그분의 연세는 대략 60대 초반쯤 되어보였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꾸준한 자기 영역의 파이를  확보해가는 사람들을 보면 외경심이 분화를 일으킨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데 나이를 생각지 않는 투지, 열정...옛날 같으면 할머니로 분류되고 자식이나 며느리들의 보살핌만 받기를 원하는 삶, 인생의 뒤안길에서 조연을 맡았을 나이....


요즘은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투자하는 노인분들이 많다. 그런 취약한 조건에도 불고하고, 학구열을 불태우는 그분들의 용기가 부럽다. 일전에 어느 손님이 그러셨다. 대구에 사는 어느 노부부는 똑같은 커플옷이 수십벌이나 되고, 외출할 때도 부부가 손을 꼭잡고 다니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듯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도 꾸준히 자신을 가꾸는 사람들을 보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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