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바뀌는 품목을 먹거리로 제공해주는 전령사인 그녀는 요즘같은 봄에는 풍성한 푸성귀들이 판매대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가죽나물, 엉게, 원추리,부추, 산초잎.... 그녀의 좌판을 보고있으면 마음마저 풍성해짐을 느낀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 였지만 그 많은 푸성귀 이름을 알게 된건 순전히 이웃을 잘 둔탓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푸성귀들을 먹거리로 하는 우리들이야 손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지만 판매를 하는 그분들은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생물이라 쥐인장이 얼마나 부지런히 손을 놀리느냐에 따라 그 싱싱함을 오래도록 유지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2시쯤이면 5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물건을 하러간다. 밀양이나 청도, 5일장이 열리는 곳으로 물건을 하러 다녀야하니 며칠걸러 장을 보러가는 셈이다. 거리가 멀다보니 장을 보러갈때는 아예 잠자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로 푸념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속사정을 들어보면 알싸한 마음이 이내 내게 전달되어와 마음과 마음이 교유한다. 푸성귀라 생명이 짧아서 요즘같은 계절에는 쉬는 날도 없다. 그날 다 팔지못한 야채들은 아이스박스에 보관은하지만 수명이 길지 않아 이튿날까지도 팔지 못하면 버려야 하기때문이다. 대저 그날 팔 물건들의 양은 몇 년동안의 경험으로 어림짐작으로 해오곤 있지만 번번히 빗나갈때도 있다.
그날 다 팔지 못한 푸성귀들은 물을 묻혀 보관을 하게되는데 물먹은 푸성귀들은 양이 배가되어 꼼꼼한 주부들은 물을 축이지 않은 야채들을...즉 그날 갓 들어온 물건들을 찾곤한다면 갈수록 고객들의 비위를 맞출려니 힘이 든다며 마른 숨을 내쉰다. 따듯한 봄의 메마른 날씨탓에 물을 뿌려놓지 않으면 얼마지나지 않아 시들어버리게 되고 시들어보이는 야채는 싱싱해보이지 않다며 고객들이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물을 안 뿌릴수도 없어 타산의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 다들 물을 뿌리게된다.
그녀 나이 52세..자식들에게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어엿한 청년으로 고운 아가씨로 배양을 시켜놓았다면 이제는 자신에게만 투자를 해도 괜찮을 듯하지만 아직 마음의 빗장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70도 각도의 구부정한 허리로 야채가 가득담긴 용기를 들고 수돗가에 앉아 푸성귀를 씻고 있는 걸 보면 눈자위가 스멀거려 올때가 많다.‘추간판 탈출증’,‘신경통’...여러증세들이 그녀를 괴롭히고 떠나가지 않는 고질병을 안고 병원을 출근도장 찍듯하지만 그녀의 확고한 마음가짐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인제 집에서 쉬어도 되지 않아요? 애들도 좋은데 취직을 해 밥벌이도 하고 있으니 걱정 없지 않아요?” “아직까지는 괜찮아, 아직 힘이 있을 때 좀 더 하지머. 집에 있으면 머하겠어. 아들결혼도 시켜야하구 딸도 시집보내야 하구....” 그래도 그렇죠.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계속 일을 하니 그렇죠. 허리가 많이 굽어 보이는데...물건을 들려면 얼마나 허리가 아프겠어요. 병원에는 다니죠?“ “벌써 보름 째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도 소용이 없어.” 나보다 몇 살 위라 그녀는 내게 말을 놓는다. 말을 놓게 됨으로써 더 편안함과 부담없음이 내재 해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다른 병원에라도 가보지 그래요? 며칠동안 같은 병원에 다녀봐도 호전되지 않으면 다른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나요?.” “안그래도 그럴참이야. 며칠만 더 다녀보고 그래도 차도를 보이지 않으면 다른병원에 가봐야겠어.....” “어느부위가 제일 많이 아프세요?” “허리지 머...허리에 대해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이제 뼈가 굳어있어 다시 원상태로 돌리긴 힘들데...”
그녀의 집안이 궁핍한건 아니다, 장사를 하지 않아도 노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녀가 들으면 서운해 할지 모르지만 군대간 그녀의 큰 아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집에 돌아온건 5년 전이다. 여름장마로 인해 병영생활을 하던 막사가 뒷산이 유실되면서 흙더미속에 깔려 유명을 달리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은 죽어서까지 부모에게 효를 한다드니만 정말 그래서인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매달 상당한 금액의 연금을 받는다.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한다는건 너무 잔인해 보이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면 차선이라도 선택하는 게 낫지않을까. 큰 아들의 죽음의 영향으로 그 밑으로 난 동생들은 취직하는데는 우선권을 부여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몇 년동안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움의 날들을 보내는 것 같았는데 인제 안정을 찾아 우리들과 스스럼없이 웃곤 한다.
모쪼록 쾌차하여 가정에 복된 날들의 연속이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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