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에는 며칠 쉴래?” 늘 며칠씩 쉬는 걸 마뜩찮게 생각하는 내게 남편은 그렇게 물어왔다. 설날이야 당연히 쉬는 날로 알고 있지만, 이튿날 까지는 괜찮지만, 셋째 날 부터는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나는 나의 제안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러노, 명절 아니면 우리가 쉬긴하나? 이런 기회에 한 며칠 쉬자, 마” 남편의 말이 이어진다. “판매할 물건도 없잖아.” 남편의 은근한 꼬드김에 “팔 물건이 없기는 왜 없어요? 좀 비싼 부위만 남긴했지만, 소비자들한테 이야기를 하면 이해를 하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일년에 명절에 쉬지 않으면 그나마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가게를 꾸려왔다. 딱히 쉬자면 못 쉴것도 없지만, 주변에 있는 가게들이 설날조차도 쉬지 않으니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리고 며칠 전 우리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규모가 아주 큰 체인점이 들어서면서 주변에 있는 다른 매장들은 비상이 걸렸다. <13호점>이라는 걸 보니 각 동네마다 점포하나씩 차린 모양이다. 오랫동안 이 가게를 지켜왔으니 단골 고객이야 확보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고객이 분산된다는 걸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쉬는 날 머할려구요?” “우리 큰집에서 차례지내고 떡국이나 먹고 등산이나 갔다오자” “어디루요?” “이번에는 다른 산에 가볼까? 금정산은 너무 자주 갔다와서 말이야.”
“그래요. 그럼 산에나 갔다와요” 설날 남자형제분들이 화투를 치면 계평을 뜯어 동서들끼리 노래방이나 가곤 했지만, 큰시숙과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난후 그런일은 아직 없었다. 딱히 시댁에서 시간을 보내봐야 잠이나 잔다든가 여자들끼리 담소나누는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동서들간의 교류도 무시할 수 없지만, 매개체 역할을 하던 시어머님이 계시지 않는 동서들간의 만남도 뜸해지고, 커뮤니케이션은 이전같지 않다. 해서 차례가 끝나면 각자 친정으로 가게되곤 한다.
몇 년 전 시어머니와 동서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례를 지내고 보무도 당당하게 제주도에 놀러갔다 온 기억도 있지만, 워낙 나이롱 며느리라 제수음식 장만할 때 참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차례를 지내고 남자들이 먼저 교자상에서 아침으로 떡국을 해결하고난 후, “남편하고 같이 등산할려면 얼른 떡국먹고 나가봐야하지않나?” 큰동서와 둘째 동서의 언질에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재차의 재촉에 미안함을 거두고, 부엌으로 가서 수저를 챙겨들고 남자들이 먼저 먹고 난 상에서 떡국을 먹었다.떡국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나는 씻어야할 그릇들을 동서들한테 맡겨놓고 몸만 빠져나왔다. 미안한 마음을 숨긴 체.....
노포동행 버스로 탔다.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해 양산행 버스를 다시 갈아타야한다. 우리가 내려야할 동네지명이 안내방송하는 게 들리자 의자 위에 있는 하차버튼을 누르고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낯선 곳에서의 내딛는 첫발은 곳곳에 설풍경들을 연출되고 있었다. 설빔으로 곱게 차려입은 어린아이들이 어른들로부터 받은 세뱃돈으로 구멍가게들로 몰려들자 가가게앞의 전자기기들은 몸살을 앓는 듯 보였다. 아이들의 설풍경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대운산>의 740m 고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처음 가졌던 ‘ 또 어떻게 올라가나하나’는 두려움보다 나선형으로 산허리를 도는편이라 완만했고, 임도가 꽤 높은 곳까지 이어져있으니, 성묘를 하러 차를 갖고 온 가족들도 보였다. 곳곳에 잔설이 남아있는걸 보니 며칠 전 부산에 비가 왔을 때 거긴 눈이 온듯했다. 짙은 상록수로 햇빛이 여과되지 않아 아직 눈이 녹지 않은 곳이 있는가하면 겨울같지 않는 포근함으로 눈이 녹아 질퍽한 길이 연신 등산화에 달라붙어 속도를 방해하곤했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자, 한 일행은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앵글에 잡힌다. 그들의 모습이 아스라이 멀어져갈 때 제법 많은 길을 내려왔다. 몇 미터 가지 않으면 <장안사>라는 사찰이 있다는 나무표지석이 우리를 반긴다.
도로포장이 되어있는 걸 보니 <장안사> 내에 진입했음을 알수 있었다. 길섶 옆으로 아름드리 소나무와 메타쉐콰이어들이 자신들의 몸매를 과시하는 듯했다. 정월 초하루라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아왔다. 어린딸의 양손을 잡고 대웅전을 기웃거리는 젊은 커플, 오로지 자식들의 앞날이 잘되기만을 기도하러 불공을 드리러 온 중년주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진 알수 없으나 아가씨의 모습도 보인다. 대웅전을 뒤로하고 나오는 걸음에 프라스틱 대롱안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을 프라스틱 바가지로 받아 입에 가져다대니 그 시원함이 폐부를 찌른다. 48살의 정초는 등산으로 첫발을 내딛은 셈이다.
단기 1337년 1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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