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재도전..^^

정순이 2003. 12. 17. 07:47
"등산가는 사람이 택시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아마 우리부부 뿐일꺼예요."
"그럴수도 있지머..." 일전에 '고당봉'까지 올라가기에는 힘이 부쳐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던 것을 다시 도전을 하기 위해 택시속에서 남편에게 던진 화두였다.
택시를 타고 '동문'까지 올라간 다음 거기서 북문을 거쳐 '고당봉'까지는 무사히 올라가지 않겠나 하는생각에 택시를 타게 되었다.

동문너머로는 '산성'이라는 분지같은 아담한 동네가 자리잡고 있다. 언제인가 시어머님과 우리 가족이 한번 '산성'이라는 마을에 들러 '염소불고기'를 먹은 적이 있다. 동문에서 옆길로 뻗어 올라가면 몇 망루를 거쳐 북문에 다다르게 되고 거기서부터는 바위를 타고 우리가 갈려다 포기한 '고당봉'이 보인다. 싸늘한 날씨탓인지 새찬바람이 귓볼이 떨어져 나갈 듯하게 시려왔고, 손은 시려서 감각이 마비되어올 듯 했다. 겨울에는 등산을 할게 못 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른 시각이라서인지 아니면 계절이 겨울이라서인지 인적이 뜸해서 더욱더 스산하게 느껴졌고, 그 추움이 더한듯 했다. 한 여자분은 두꺼운 겨울용 머플러를 목에다 두르고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무장을 하고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협소한 노면으로는 햇볕이 들지 않아서인지 길이 얼은채로 바삭거리는 소리가 보폭에 장단을 맞추는 듯 들려왔고,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낙엽들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사각 사각'....

이른 시간이라 길이 녹지 않아 오히려 걷는게 너 나은 듯 했다. 얼마전에 등산을 할 때는 얼었던 노면이 녹아서 질퍽한 길을 걷자니 신발에 달라붙는 진흙덩어리를 떼어내기가 아주 성가셨던 기억이 난다. 각이 져있는 돌멩이위로 신발에 달라붙어 있는 진흙을 떼기가 쉽지 않았고, 길위로 떨어진 낙엽가지위로 신발을 닦아내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신발바닥 위까지 올라온 흙은 닦아내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그 길을 걷고 있는데 아련하게 밀려오는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실타래처럼 풀려지고 말았다. 가풀막 뛰어오른 언덕위에는 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눈꽃처럼 하얀 아카시아 나무들이 가로수 양쪽길을 덮고 있는 사이로 난 길은 일순 운치있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들이 배설해놓은 배설물이 서로 엉켜 질퍽한 길을 만들어놓곤 했던 기억들이 지금이길과 너무나 흡사해 나도 모르게 추억의 타임머신위로 무임승차를 하고 만다. 어디선가 햋빝이 비친다. 이윽고 나목사이로 들어온 햋볕의 따스함이 밤새 얼었던 길을 녹였고, 시커먼 흙이 신발을 더럽히고 있었다.


망루에 잠시 올라 숨을 고르고 집에서 가져온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커피로 몸을 녹이기 위해서였다. 따끄한 커피향기가 언 몸을 따뜻하게 녹이는 듯 했다.
멀지 않은 곳에 '고당봉'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가파르게 경사진 바위를 타고 올라간 능선끝에는 '고당봉' 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절벽위에 자그마한 암자같은 곳이 보인다. 그런 위험한 곳에도 암자가 있다니..사람이 살지 않을만큼 작은 암자뒤로 외로워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말벗이냥 암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외에 나올때는 필히 '카메라'를 잊지 않고 챙기는 남편이 '고당봉'이라는 바위를 옆으로 공중에 선 듯 한 자세로셔터를 눌러달라며 내게 카메라를 맡기고 폼을 잡고 서있다. 무사히 남편의 모습은 찍었는데.... '아뿔싸...'

높아진 푸른 하늘을 뒤로하고 공중을 가로지르는듯 한 남편의 멋진모습은 카메라에 담았건만 내가 폼을 잡고 찍을려니 건전지 약이 떨어졌는지 연신 나왔다가 들어가고 마는 카메라 줌인이다. 소모되는 속도가 아주 빨라 건전지를 넣은지 얼마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벌써 수명을 다한모양이다. '이런..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당봉'을 내려왔다. 먼길을 걸어 전철을 타고 '부페'에 들렀다. 일전에 친정 손자 돌잔치때 받았던 쿠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넓은 창문 너머로 부산시가지가 환히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은 우리부부는 셀프로 가져온 음식으로 불러진 배를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 human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뜨개질...  (0) 2003.12.19
독감  (0) 2003.12.17
인간 관계  (0) 2003.12.13
뇌물의 파급효과  (0) 2003.12.12
천륜  (0) 200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