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등산을 다녀와서..

정순이 2003. 11. 24. 11:46
외출을 한다는건 많은 아내들에게는 이중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중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김밥이지 않나싶다. 김밥을 만들기위해서는 나만의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는 속상함도 자리하고 있지만 가게를 한다는 핑계로 번번히 매식을 하게 되고보니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점점 잊어버려지고 게으름만 피우는 요령만 안배하기에 머리를 굴리고 만다. 남편의 언질이 없었다면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길에 식당에 들러 간단한 동동주나 산에서 채취한 야채로 만든 산채음식들을 맛보는것도 괜찮을 법하다.

날씨가 추울거라는 기상대 뉴스에 옷을 두둑히 입은 남편과 나는 간단하게 배낭속에 김밥과, 실파에 계란을 풀어 넣은 따끈한 국물을 보온병에 가득 채워넣었다. 추운 날씨와 김밥의 목멕힘에 어울리는 국물이리라. 마침 집앞을 횅하니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식물원입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갔다가 초입에 들어서는 등산을 하기로 사전에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산성 남문’까지 운행하는 순환버스가 다니는 길을 완만해 그 옆으로 나 있는 협소한 등산로길을 택했다. 초행인 우리는 앞서가는 남자분께 물어보았다.“ 이길로 올라가면 ‘남문’이 나오남요?” 남문 맷부리에 오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코스가 완만한 편이다.그 뒤부터는 능선을 타고 계속 걷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얼마쯤 갔을까. 앞서 가던 사람의 등을 유심히 살피며 뒤따르고 있던 우리는 그만 그분을 놓치고 말았다. 자주 다녀본 길인것처럼 여유있게 걸어가는 낯모르는 그분과는 보폭이 맞지 않은 듯했다. 얼마쯤 올라갔을까. 길을 잘못들었다는걸 알아차린 우리부부는 보이지 않는 나무를 헤치며 앞으로만 갔다. 계속 가다보면 ‘남문’을 만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길이 나 있지 않은곳을 헤쳐 가기란 산세가 험악한 탓인지 저만치 보이는 산능선이 가도 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았다. 가는 길섶으로 편백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그 옆으로 겨울이라 다 떨어진 나목들이 추운 듯 떨고 있었다. ‘매미’의 내습으로 인해 생채기를 입고 쓰러진 소나무가 그 뿌리를 다 드러내놓고 누워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어디선가 목탁 두르리는 소리가 적막을 가르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가까운 곳에 절이 있나 보다” 목탁소리와 법경이 번갈아 가며 울려퍼지는 곳을 향해 눈길을 돌리니 저만치 아래 일주문위로 풍경이 고즈늑한 산사의 오전을 채색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탁소리에 잠시 마음을 뺏겨본다. ‘음...적막하기만 이런 곳에서 듣는 목탁소리는 또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다. 시공을 넘나드는 청설모 한 마리가 분위기를 깨며 반가운 듯 꼬리를 이 나무에서 저나무로 유영하며 몸통보다 더 긴 꼬리를 감추며 사라진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절 앞에 만들어진 옹벽 틈 사이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내밀고 있는 배롱나무 한그루...그 정취에 취해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춤사위에 넋을 잃었다. “좀 쉬었다 가자. 군대에서도 50분 행군하고 나면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며 쉬어갈 것을 재촉한다. 널찍한 바위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다리를 걸치고 앉은 남편은 담배 한개피를 빼어물고 동그라미 연기를 만들어 내며 휴식의 편안함을 최대한 만끽하려는 듯 포즈를 취하고 있다. 5분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 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너무나 가파르고 협소한 길을 헤치쳐 나가자니 남편은 힘이 드는지 연신 투정을 부렸다. “그렇게 힘들면 베낭 나 줘요.내가 잠시 매고 갈께요.” 남편의 배낭을 빼앗듯이 낚아고 내 등에 걸쳤다. 생각보다 아주 무거웠다. 만들어진 배낭이 남자들을 위해 만들어져서인지 아주 무거웠고, 그 크기 또한 상당해 허리까지 내려오는 배낭이 메고 있자니 자꾸만 넘어질 듯 했다. 그러나 한번 받은 배낭을 다시남편에게 돌려주기에는 빼앗듯이 나꿔챘었다는 기억이 나의 자존심을 가로막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안도의 심호흡을 들이키며 만세를 합창한다. 멧부리에 올라선 우리부부는 힘을내어 걷기 시작했고, 빠른 보폭으로 앞서걷는 다른 사람들을 뒤로하고 빠른걸음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몇 망루를 보내고 기다랗게 돌로 쌓여있는 성인듯한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유도 부려본다. 망루에서 내려다 본 산아래 펼쳐지는 드넓은 시가지는 동공속에 다 넣기에는 비좁은 듯 액자를 만들어 보았다. 허공을 가르고 내게 다가온 낯익은 사람하나..다름 아닌 조카 사위였다. 눈을 감고 다시 확인해보았다. 상대도 내가 안면이 있는지 눈을 뜨고 자세히 나를 내려다보았다.

“고모님 아니세요. 등산 오신거예요?” 낯선곳에서 만나는 사람은 또다른 신기함을 선물하는 듯 하다. “그래. 어쩐일이야. 민규아빠! 어서와보세요.”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남편도 신기한 듯 물어본다.“ 누구라고?” “미정이 남편요.” 다시 눈을 들어 확인해본다. “두분이서만 등산 오신거예요?”
“그래.여기서 만나다니 너무 반갑네. 혼자 온거야?” “아뇨. 회사사람들하고 단합대회겸 같이 왔는걸요.” “그렇구나. 일행들 놓칠라 얼른 가봐” “네.”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다는 말을 실감하며 저만치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조카사위는 언제봐도 깨끗한 피부를 자랑하고 있다. 조카사위를 뒤로 하고 가던길을 재촉했다. 계절의 변화로 모든 풀들이 메마른 몸으로 흐느끼고 있는 듯 했고, 그 옆으로 여름에는 녹음으로 사람들의 방문으로 쉼터를 제공했을 듯한 나무들은 옷을 다 벗은 채로 앙상한 몸을 드러내고 떨고 있었다. 지금은 메말라 보이는 풀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계절이 오기전에는 아마 억새들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들곁으로 다가가 한컷의 사진으로 추억을 만들어보았다.남편은 자꾸만 다리가 아파온다며 말을 아끼려는 듯 말이 없어진다. 앞에 이정표를 보니
지금 있는 위치와 우리 부부가 가고자 하는 '고단봉'과는 거리로 따지자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나 아무래도 남편은 두렵고 자신이 없는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돌려준 베낭을 다시 내가 메고 가겠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하는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베낭 무게 때문이 아니고 다리가 아프단 말이야."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여기까지 온김에 '고단봉' 까지는 올라가자는 나의 말에 남편은 대답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다간 남편의 건강을 챙기지 않는 못된 아내로 비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만다.
"그럼 여기서 점심먹고 가벼운 베낭으로 내려가요." 두리번 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았다. 미니 매트를 깔고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은 언제 먹어도 구미를 당기게 하고 식탐을 부추긴다. 등산 입구에서 구입한 소주 한잔도 반주삼아 곁들인다.
보온병안에서 아직 식지 않고 따뜻한 김이 아지랑이 같이 피우고 있는 국물을 안주삼아 같이 마셨다. 멀지 않은 곳에 '고단봉'이 손짓하고 있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던길로 발길을 돌렸다. "다음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능선까지 올라와서 등산을 하면 아마 고단봉에 올라갈수 있을꺼야. 다음을 기약하지머. 아니면 나는 여기서 쉬고 있을테니 혼자 갔다오던지."
"혼자 어떻게요. 그냥 안갈래요.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생기겠죠." 혼자라도 다녀올까 생각하다가 혼자갔다오기에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벼워진 베낭을 매고 내려오는 길은 한결 수월했다. 곳곳에 은행잎들이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떡갈나무 잎들도 상수리 나무 잎들도 나의 발길을 푹신하게 해주는데 한몫하고 있었다. 가벼운 감탄사가 목구멍을 자극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동동주 한잔 하고 갈수 없다는게 유감이다." 그러게요. 아마 남편은 '통풍'이라는 지병에는 곡주로 만든 술은 마시지 말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따르고자 했음이 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주 마시지도 않는데 오늘 하루는 괜찮지 않을까요."
"매일 소주를 많이 마시니 그렇지.그럼 한잔 하고 내려갈까" 길섶으로 보이는 깨끗한 외벽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호객하는 어느 집으로 들어갔다. 밥알이 동동 떠 있는 동동주와 커다란 접시에 푸짐하게 올려진 파전을 들고 주인의 딸인듯한 아가씨가 우리들 앞에서 상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곁들인다. " 맛있게 드세요.~" 따뜻한 온기가 있는 온돌방에 그렇게 여유를 부려보며 하루의 일정을 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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