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늦깎이 총각

정순이 2003. 11. 19. 11:44

남루한 입성에 얼굴 군데군데 피어있는 검버섯과 덤성덤성 남아있는 그분의 치아를 보면 흑백사진속의 할머니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온다.
초가지붕과 돌담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스냅사진속 선상위에 할머니를 올려놓곤 친정엄마와 할머니..그리고 모든 할머니들의 삶들이 그속에 삼투되곤 만다. 시골에서의 오랜 생활이 온 몸에 베여있는 할머님이 이곳 부산에 정주하고 둥지를 튼지도 어언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단다. 큰 아들 내외와 같이 살던 할머니는 손자가 객지로 나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큰아들내외의 뜻에 공감을 하며 손자와 같이 부산에 뿌리를 내린 셈이 된다.

도회지에서 13년이란 세월을 보냈으면 보는 시각도 있을테고 듣는 풍월도 있을텐데 도무지 아날로그 삶에서 디지털 방식을 흡입할줄 모르고, 도회적인 면모로 바뀔만도 하건만 그분의 타고난 알뜰함은 허투로 소비해서는 안된다는 그분의 성실함이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알뜰함 그 자체이다. 그 성실함이 밑바탕이 되어 가게에 들리실때마다 들고오는 하얀 비닐...할머니가 주문한 용도를 봉투에 넣을려는 예의 그 비닐을 들이밀며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 그분이 내미는 빈 비닐봉투.
"자꾸만 비닐에 담아가면 머해. 집에 남아도는 비닐이 많이 있거든. 그러니 낭비할 필요가 있겠어?" 그런일이 한번, 두 번, 세 번 잊지않고 꼭 챙겨오시는 그분의 성격은 알뜰함과 동의어로 생각될만큼 빈틈이 없다.

"어디 참한 색시 없어요?"
"왜요? 출가하지 않은 자식이라도 있어요?"
"결혼적령기를 넘긴 손자가 있죠.나이는 좀 되었지만 가정밖에 모르는 착한 총각이라요. 남들처럼 내세울만한 직장은 아닌지 모르지만. 강조하고싶은거는 누구보다 성실하다는거 마음이 착하다는거, 그것만 있으면 되지 않겠어요? 누가 우리 손자며느리가 될지 아직
모르지만, 참으로 복받은 여인이 될꺼요."
"저는 중매하는데는 자신이 없어요. 오래전에 어느분의 말씀을 듣고 여자쪽이 괜찮다 싶어 평소때 알고지내던 총각이 있는 집에다 제가 매개체로 한번 나선적이 있었어요. 서로 상견례도 있었고, 몇번 오가기도 했었는데 나중에 성사되지 않았을 때는 정말 황당해지더라구요.그런일을 한번 겪고부터는 다시는 그런데는 발을 들여놓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인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알았다는 가벼운 말만으로 응대를 해지더라구요. 딱부러지게 거절하기는 내 성격상 맞지 않으니..."

"우리 손자는 부산에서 꽤 규모가 큰 재래시장에서 도매업을 하고 있는데 벌이도 괜찮다우. 가게를 하고 있으니 시간이 없기도 하겠지만 한달에 두 번 쉬는 날에도 외출을 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쓸줄을 몰라요. 그걸 보면 얼마나 착한지 짐작이 가죠? 어디 나무랄데가 없을만큼 착실한 총각이라우. 아가씨들은 눈들이 삐였는지 왜 우리 손자같은 착실한 사람에게 결혼할 생각을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우. 그저 멋이나 부리는 남자들이 좋은지..."하시며 말의 여운을 남기시는 할머니...

결혼정보업소가 뚜쟁이가 되어서 농촌 총각과 중국동포 여인들의 결혼을 주선해 주는 업체들이 성황을 이룬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업체의 공신력도 있고,프로세스를 거친 그런 업체들도 중간에 프락치가 있는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장밋빛 청사진에 쉬게 유혹되는건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어선 총각들의 절박함이 그들을 돌이킬수 없는 늪으로 끌어들이는지 모른다.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분이 가게에 다시 들렀을 때는 "우리 손자 결혼 했수" 하는
말씀을 하루빨리 듣길 기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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