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소매물도

정순이 2010. 6. 1. 10:29

 


 소풍을 하루 앞둔 아해(兒孩)마냥 설레였다. 인터넷을 통해 미리 봐 둔 소매물도의 크고 작은 섬들의 모습들, 수심깊은 에메랄드빛 바다의 빛깔들이 통영의 달아공원 이미지가 클로즈업 되어왔기 때문이다.


늘 모임시각을 맞추기보다 일찍 출발하는 남편을 못마땅해했던 내가 어젠 내가 먼저 서둘렀다. 늘 갇혀있는 생활에서의 일탈이라는 생각에 바깥 세상의 냄새들을 조금이라도 더 흡입하고 싶었다.

 

요철과같은 삶에 시달리다 몇 시간동안 산을 타야하는 힘듦을 뭐하러하냐는 내 비아냥섞인 생각과  등산을 즐기는 남편과는 생각이 늘 대립각을 세우곤했다. 힘들게 산을 오르기보단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드라이브로 경치 좋은 곳에서  심신의 피로를  푸는 걸 더 소망했었다. 해서  일요일마다 남편  혼자 보내곤했던 게  마음에 걸려  같이 등산이나 할까는 생각에 "어디 좋은 산 있어요.?"  둘째 동서가 추천했던 매화산, 지난해 남편이 갔다와보고선 괜찮았다고했던 구만산...여러 산들이 물망에 올랐고, 인터넷을 서핑하며 갈만한 곳을 물색했다. 그 중에서 한 곳으로 낙점된 곳이 <소매물도>다.

 

우선 바다를 낀 섬이라는게 가장 마음에 와닿았고, 힘들게 많이 걷지 않아도 된다는게  마음을 움직였다. 소매물도에 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입수하기위해 한국의 산천에 들렀다. 그림같은 사진들이 몇 컷 올려져있다. 바람이 많이불고 5월의 일기가 고르지않아 소매물도에 갔다가 돌아오는길에 배가 취항을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이 일어 산악회로 전화를 걸어 확인까지 했다. '그럴일은 없을 것이라'며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몇년 전 내장산에 한 번 같이 간 산악회라, 회장님과 총무님은 낯은 익었다. 그러나 꼿꼿한 선비기질같은 성정이라, 가벼운 목례로 반가움을 나타낼뿐이다. 성품이 곧으니  이 산악회에 적을 두고 자주 오는 사람들은 없는 듯 보였다. 부산으로 돌아오는길에 회장님이 설문을 할테니 협조해달라고 했다. "국제신문을 통해서인지, 아님 부산일보를 통해서인지, 것도 아님 인터넷을 통해 여기 오게 됐는지" 묻고 있었다. 대답여하에 따라 광고순위를 달리  할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과문한 탓인진 모르지만, 몇 몇 산악회를 다녀봤을때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다.  여성들이나 남성들이 친구삼아 같이 몰려 다니는걸  즐겨했다. 일행들과 하산주를 마주하고  도타운정을 교류하면 많은 사람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는 쉬운 방법도 있을 법하지만, 이 산악회 회장님 나름데로 정해놓은 수칙인  듯  음주가무는 할 수 없다며 결연했다.  

 

5월의 바깥세상은 신록으로 출렁이고 있었고, 도로 격자무늬 가드레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빠알간 줄장미들의 왈츠는 눈길을 사로잡았다. 싱그런 아침햇살이 어시스트로 섬광을 터뜨린다.

 

모심기를 하기 위한 전단계인 듯 물이 고여있는 논에는  사람의 손을 대신한  농기구가 기계음을 올리고 잇었고, 허리를 굽힌 아낙네의 옆모습이 실루엣으로 걸린다.  창밖으로 다양한 삶들의 복선들이 질주하 듯  뒤로 밀려나고 공룡 모형이 시야로 들어오는 걸 보니 고성인 듯했다. 언제였든가. 사량도에 가기위해 이 도로를 달렸던 추억들이 기억을 관장하고 있는 전두엽이 제기능을 발휘한 셈이다. 세시간의 질주끝에 저구항 선착장에 도착했다. 11시에 출항하는 배가 있고, 12시에 출항하는 배가 있다고 했다. 소매물도! 쿠그다스라는 스낵광고에 등장하고 난 후부터  인기를 끌면서 많은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고한다. 

 

거제 저구항 선착장,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태운 선박은 출발신호와함께 바닷길을 헤쳐나갔다. 크고 작은 섬들이 네트웍을 이루며  조각을 해놓은 듯 바다의 좌대위에 올려져 있다. 섬들 옆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들의 춤사위! 일망무제... 잿빛 구름사이로  산형상을 한 구름을 하늘이 안은 듯 뒷배경을 하니  바다인지  산인지 가름이  않될 정도다.

  

소매물도에 가서 등대섬을 구경할려면 물때(아침저녁으로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때)를 잘 알아야지만, 물이 다빠지고 난 뒤 등대섬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한 달에 두 번 8일과 23일!  8일 3-4일 전 후와 23일 3-4일 전후로 계산하면 된다. 그리고 모세의 기적을 만날려면 오후 1시 30분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해 4시 30분까지 조수간만과  일요일을 맞추기가 쉽지않다는 회장님의 귀띔이 있었다.

 

비취빛 바다위를 서핑하듯 즐기며 35분 여를 내달려오니 소매물도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시야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야트막한 구릉위로 강한 바람과 거친 토양에도 활착력이 좋은 관목들이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광합성 작용을 하고 있을터이다.  전망 좋은 곳에 이제 막 짓기 시작하는 펜션도 보였고,  소매물를 찾는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민박집, 로지(lodge)도 듬성듬성 보였다. 시골 언덕을 오르듯 가파른 길을 오르니 곳곳에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들의 향연으로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마음껏 흡입할 수 있었다.

 

발치아래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소매물도를 찾은 사람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다가오고 그 앞으로 펼쳐진 등대섬의 모습들이 동화속 그림처럼 다가온다. 아직 물이 빠지지 않은 시각이라 신발을 벗어들고 건너고 있다.  시간은 넉넉했다. 물이 빠지고 난 후 천천히 움직여도 될 듯했지만,  낯선곳에서의 여유로움은 자칫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서둘러  일어섯다. 4시 10분까지 선착장 집결지에 도착하라는 회장님의 말씀을 상기하면 조금 더 여유를 부려도 될 듯하긴 했지만.....

 

동글동글하고 매끈한 몽돌들이 발을 간지럽힌다.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도 물이 제법 빠져 신발을 벗지않고도 건널 수 있을 정도다. 자연의 힘이 미치는 오묘함과 기적에 그저 미물에 불과한 인간은 넋을 놓을 수밖에....바다위로 통발선 두 척이  이물에 가느다란 선을 매말고 쌍끌이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천안함 사건때 증좌를 찾기 위해 활약했던  그 쌍끌이 어선이 아닌가.

 

마지막 행선지인 등대섬 주변으로  자연이 조각해놓은 작은 섬들...여유롭게 엎드려있는 공룡모습을 하고 두 개의 작은 섬이 이어져있는 산...모든게 신비롭기만하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매물도의 모습들을 가슴 가득안고 돌아오는 마음은 홀가분했다.

 

 

 단기 4343년 4월 17일                      몸살로 모든게 귀찮기만 한  이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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