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준비되지 않은 휴가(1)

정순이 2007. 11. 21. 12:37

 

빼꼼히 열려진 문 틈사이로 방안의 동정을 살폈다. 술 병을 앞에놓고 고개를 푹 꼬꾸라뜨린 남편은 방바닥만 응시하고 있다. 그 모습이 시야를 꽉 메우니 오금이 저려온다. 어제 대형마트에 잠시 갔다오겠다는 나의 말에 "가까운데 놔두고 뭐할라고 먼데까지 갈라하노?"는 남편의 반응에 공연히 화가났다. 이 나이 되도록  두 세시간정도 외출할려면 늘 남편의 반응을 살펴야한다는게 더할수 없는 초라함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곳에 있는 쇼핑몰에는 고를 수 있는 물건이 다양하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지만, 대형마트에 가보면 선택의 폭이 아주 넓다.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남편의 되물음에 공연히 주눅부터 들었다. 물건하나를 구입했다하면 사용할 수 없을때까지 이용하는 남편과 사는걸 좋아하는 나와 늘 대비되지만, 그렇다고 충동구매를 하는 건 아닌데도 남편은 늘 딴죽을건다.  딱히 구입할 건 없어도 가끔 스트레스가 쌓일 때 아이쇼핑이라도 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해  남편에게 눈을 치켜떴던 어제의 일이 자꾸만 뒷덜미를 간지럽혔다.  '대꾸하지 않고 참을걸. 일전을 앞 둔 투계처럼 눈을 치켜뜨지말걸.....'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5시를 넘기고 있었다. 밤을 꼬박 세운 모양이다. 자존심이 강한 남편은 남편의 말에 대꾸라도 하면 밤을 세워가며 자신의 몸을 혹사시킨다. “민규야, 여기와바라!” 남편은 늘 아들이름을 앞세워 나를 부른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문닫고 앉아봐라.”어깨를 떨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아주 외소하게 보였다. 자신의 잘못에도 항상 당당하던 지난 날들의 모습은 '세월에 장사없다' 는 속담처럼 많이  누그러진편이다. 

 

 “오늘 니 생일이제?”  “오늘이 머 내 생일이고? 내일이지!” "오늘 아이가? 12일 맞잖아...“ ”12일은 내일이네요.“ 벽에 걸린 달력에 음력 날짜를 짚어보며 그래도 자신의 기억력이 녹쓸지않았음을 강조한다. ”오늘이 12일 아니가?“ ”내일이네요. 양력으로 21일요.“  '이거 왜 이러세요?' 내 생일도 기억하지 못하냐는듯 가볍게 눈까지 흘겼다. 그제서야 뒤로 물러서며 ”그러나? 어제 짜증을 자꾸 내기에 니 생일을 챙겨주지않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남편의 기분이 풀렸다는 생각에 안도를 하며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갔다. 다시 "민규야!" 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민규가 방으로 들어갔다. 부자간의 무슨 밀담이 오갔는지는 알수없지만, 엄마 생일을 챙기라는 조언이 있지않았을까는 짐작이다. 

 

 매해 생일때마다 선물은 하지않을때도 있었지만, 날짜만은 기억하고 있는 남편이다. 남편의 동선을 따르니 “니 생일날 하루 휴가 주께. 놀러 갔다온나.” 귀를 의심하며 재차 물었다. 내가 외출하면 당신은 가게를 볼꺼에요?“ 당연한 걸 묻는 내가 어리석어 보였든지 ”휴가를 준다면 당연히 내가 하는거제...“ 바로 오늘이 내 생일이다. 아직까지 하루의 휴가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계획을 세워놓지 못했다. 전업주부들은 남아도는 시간들을 주체치 못해 난리들인데... 휴가라고하기에도 낯간지러운 하루다. 아들하고 멋진 레스토랑에라도 갔다오라며  목에 힘주는 남편이다.  미리 얘기해주지않고 갑작스럽게 말하는 남편...남편은 그걸 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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