召命을 다한 나뭇잎들이 등산로를 물들이고 있다. 떡갈나뭇잎, 솔가지,벚나무잎,싸리나무잎....늦은 출발로 종종걸음을 지쳤다. 처음 산엘 다닐때는 짧은 코스와 넓은 길을 택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걷는시간도 늘렸고, 협소한길도 에너지소모량이 많다는 생각에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달을 다니든 어느날 좁은 등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바람이 횡하니 불어온다. 느낌이 이상했다. 순간 누가 뒤를 따라오는 것 같고 뒷덜미라도 낚아챌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소름이 오싹했고 섬뜩한 생각에 다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지만, 황량한 가을바람만이 나무사이를 헤집고 지나갔다. 그때부터 그 길은 이용하지 않는다.
한 땐 무서움에 산엘 다닐 생각도 않았는데, 어느날부터 생긴 용기로 좁은길도 겁없이 다녔지만,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다. 선캡 차양을 내리고 주변의 시선을 차단하고 길만 내려보고 다녔기 때문에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그렇지않았다. 그날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다. 걷는 시간을 줄여보자고, 그리고 운동하는 시간도 가져보자고...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여유가 있었다. 어깨 통증이 심하다는 나의 말에 도르래를 이용한 운동기구가 있으니 그걸 한 번 해보라는 남편의 조언이 있었다. 도움이 되겠나는 의구심이 일긴했지만, 시작한지 보름이 지난 요즘 어깨 통증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중앙에 큰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위에는 양쪽으로 벨트를 연결해 길게 줄을 늘어뜨려져 있다 그 줄을 오른손이 잡아 당기면 왼쪽이 올라가고 왼쪽을 잡아당기면 오른쪽이 올라가는 운동기구다. 처음에는 어깨가 뻐근하고 통증이 더 심하다 싶었는데 계속반복하다보니 통증은 줄어들었다. 하루에 10분내지 15분정도 하는데 손바닥이 저려오면 도드래를 놓는다.
"저는 못 할 거 같은데요."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파공음을 내며 체육공원을 울렸다. 바로 옆에서 어떤 여성이 시범을 보이고 있는 남성을 보면서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손사래부터 치며 내는 소리다. "어렵지않아요. 한 번 해보세요." 둥근기둥에 발을 걸게끔 만들어진 금속성 기구에 발을 걸고 머리는 아래로 늘어뜨려 물구나무를 서듯 하는 기구다. 물구나무를 서면 허리가 보인다는 생각에 허리춤을 다시 고쳐매고 발을 올렸다. 성공이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싶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놓고 남자분의 도움을 받으며 몸을 들어올려봤지만 따라주지 않는다. 다시 한쪽 발을 먼저 들어올리면 그 반작용으로 몸이 따라올라가지 않을까 싶어 다시 시도를 해봤지만 역부족이다. ^^
그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차양을 바짝 내리고 보도블록만 응시한체 잰걸음을 지쳤다. 15분 정도만 더 걷고나면 오늘의 운동량을 소화 해냈다는 충만감도 생긴다. "저..저..저기요." 거칠고 투박한 손 하나가 깊이 눌러쓴 모자 아래로 들어왔다. 깜짝 놀라 차양을 들어올리니 낯선 남성이 내 시선을 잡는다. "저기 보이는 저거 말이에요." "낯선 남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드니 소나무에 새집 비슷한게 보인다. 그 옆으로는 토피어리를 해놓은 것 같이 소나무에 환삼덩굴이 소나무 줄기를 감고 있다. "얼마 전에 신고를 해서 치웠는데 다시 지어 놓았는거 있죠?" "새 집 아니에요.?" "새집이 아니라, 벌 집이에요. 이만큼 크다란 벌이예요" 그 낯선 남자는 검지손가락 한 마디만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얼마나 큰 벌 인지 몰라요. 지난 번 저 벌집을 수거해갈 때 옆에서 봤는데 정말 크더라구요. "라며 그 당시의 끔찍함이 상기되는 듯 몸을 떨었다. 그 낯선 남자는 자신 대신 내가 신고를 해줬음 하는 눈치다. "그래요?" "신고를 하긴 해야겠네요...."낯선 남자는 자신의 임무를 다 한 듯 뒷덜미를 보이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신고를 해야하나는 여운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가볍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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