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뉘앙스이리라. 외모를보고 사람을 평가하기에는 적지않은 오류와 부작용을 겪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적지않은 사람들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잘 생긴 외모에서, 잘 차려입은 옷에서, 화려한 명함에서..... 해서 사람들은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지모른다.
그녀를 알게 된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그러나 몇 번의 만남에서 느꼈던건 ’참 착하다‘이다. 처음 그녀가 가게밖에서 진열장 안을 기웃거릴 때, 낯선가게에 물건을 구입할려니 불안한 표정이 역력해보였고, 나 역시 그녀의 반들거리는 얼굴피부에서 느꼈던건 ’참 차갑게 생겼다‘ 와 ’ 까탈스럽겠네‘였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겠지만, 오랫동안 단골가게로 정해놓고 다녔어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냉정하게 다른데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빗대 한 때 ’십년 단골 없다‘ 는 신조어가 생기기까지했었다.
그런 어제, 종종거리며 가게에 들어선 그녀는 제수음식에 필요한 재료 몇 가지를 주문해놓고 돈이 필요해 가까운 시중은행에 갔다오겠다며 생선이 들어있는 비닐 하나를 맡겨놓고 등을 보이며 달음박질했다. 그녀가 가고 난 뒤이어 다른 단골고객 한 사람도 기제사가 있다며 제수상에 올릴 수육할 돼지고기와 탕국에 넣을 쇠고기를 주문했다. “큰 비닐 하나 드릴까요?” 고객이 몇 개의 작은 비닐을 들고 있으면 서비스차원에서 큰비닐을 준다. 한꺼번에 같이 넣게되면 분실할 염려가 적어 곧잘 그렇게 하곤 하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 스테인리스 가판대위에 처음 온 손님이 놓아둔 비닐 봉투 옆에 그녀도 몇 개의 잔잔한 비닐을 올려두고, 더 구입할 게 있으니 잠시 다녀오겠다며 걸음을 재촉하며 뛰어나갔다.
두 번째 온 고객은 볼일을 금세 다 봤는지 이내 돌아왔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비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손님이 가고 난 10 여 분후 처음 온 손님이 은행에 고객들이 많아 아주 복잡해 이제야 볼일이 끝났다며 숨을 고르고는 자신의 물건들을 챙겼다. “다 해놨어요?” 말과함께 자신이 맡겨둔 비닐을 찾았다. 스테인리스 가판대 위를 보니 자신이 놔둔 비닐이 보이지 않아 황당해하며 “내가 여기 둔 비닐은?” ‘띠옹...’ 두 번째 온 고객이 자신의 물건인 줄 알고 가져가버린게 아닌가. ‘이일을 어쩐다?’ 발을 동동 굴려바야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벌써 집으로 간다고 가게를 나선지 10여분이 지났으니 어디까지 갔는지 모른다. 찾는다고 해봐야 못찾을건 뻔하고, 이미 떠난 화살이고, 루비콘의 강을 건너버린 셈이다.
그녀는 부산에 거주하고 있지만, 큰아들을 분가시키면서 제사까지 줬었고, 제수음식장만은 큰아들집에서 한다. 큰 아들은 부산 근교에 산다고는 하지만, 알아낼수 있는 방법도 없고, 고객의 휴대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러니 그녀가 얼른 집에 도착해 자신이 구입한 음식이 아닌 비닐이 담겨있다면 애타는 사람을 생각해서 빨리 가져다주기만 바랄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하튼 내 잘못이라는 생각과 집이 가까운곳에 있지않아 다시 내려오기 힘드니 생선값을 지불하고 싶었다. “생선값이 얼마에요?" 한참동안 뜸을 들이드니 "5만원" 돈궤(金庫)를 열고 5만원을 꺼내 그녀의 손에 집어줬다.
"이러지 말고 좀 기다려봐요. 혹시 또 알아요? 가져올지..." 그말로 나를 안심시킨뒤 그녀는 "집에가서 일 좀 해놓고 다시 내려와야겠다..." 라는 말과함께 집으로 돌아가려고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할말을 찾다가 그녀의 전화번호를 묻고 적어두었다. 만일을 대비해 두 번째의 고객 전화번호도 이렇게 적어두기만 했다면 이럴 때 요긴하게 써먹었을텐데 하는 후회스러움도 있었다. 하루종일 초조하게 기다렸다. 두 번째 고객이 입고 있었던 빨간색 상의와 창 넓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만 봐도 혹시나 싶어 눈여겨 보았고, 금세라도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못하고 살피곤했다.
벌써 4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뒤늦게 집에서 확인을 하고 가게에 갖고 온다는 계산을 해도 벌써 가져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첫 번째 고객의 전화번호를 물었을때는 , 꼭 가져올꺼라는 믿음이 있었기때문에 적어두었다가 비닐만 가져오면 바로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버렸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초조하게 기다렸던 몇 시간동안과 믿었던 사람에게서 느끼는 그 서운함은 말할 수 없을정도였다. 음식장만을 하고 난 후 가게에 내려온다는 그녀는 오지 않고 , 제수음식 장만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데 생각이 미친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들려왔다. "아직 그 사람이 오진 않았어요.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전화해봤어요. 제삿날은 오늘이에요?" “그럼, 오늘이지 않으면 내가 뭐하러 그렇게 발을 굴렀겠어요?”
대체로 하루 전에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물어본것이다. " 오늘 이니까 내가 이러는거지..... 아까 생선값을 준다기에 말은 하지않았지만, 장사하는 사람한테 아침부터 그럼 안되겠다는 생각에 벌써 생선을 사다가 다 장만해두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니, 그 사람의 심뽀가 나쁘네. 자기 물건이 아니면 당연히 갖고 와야지 아무리 부산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살고 있다고해도 남의 물건을 가져다 그대로 두는 경우가 어디있데? 그 사람 계획적으로 가져간거 아냐? 자기 가게에서 자기가 산 물건들을 가져갈때 확인도 하지 않나? 심뽀가 꼬롬한 사람이네.... "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이 소리없이 후각을 자극했다. 나로 인해 생선을 다시 구입할려면 부러 시장까지 와야하는 불편함때문에 얼마나 짜증이 나겠나‘ 는 생각이었는데,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생선을 사갖고 갔다니 그 세심한 배려에 코끝이 찡해왔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냉소적이였던 느낌과 남을 배려하려는 지금의 느낌...상반된 두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배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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