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가 나서 죽겠어요." "무슨일이라두..?우선 앉아요. 앉아서 커피나 한 잔해요." 불혹의 나이를 겨우 넘긴 J는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 행복바이러스가 피보나치 수열처럼 자연증식을 한다. 그런 J가 화가 났다는 느닷없는 말에 마음을 안정시키라는 생각에 커피부터 권했다.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의 김을 코로 음미하듯하며 한 숨을 내쉰다. "동서가 가버렸어요." '동서라면...?' 측두엽 폴드에 저장되어있던 조각난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으며 빠르게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자신은 43살인데 반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큰동서는 자신보다 18살이나 나이차이가 난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게 아니라, 어리다. 자신이 결혼할 무렵 한 쪽 다리를 약간 저는 큰 시숙님이 계셨다. 결혼적령기를 놓친 늦은 나이와 변변한 직장 하나갖고 있지않는 큰 시숙님은 일찌감치 결혼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육아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캥거루족에 다름 없였다.
그런 어느해 베트남 여성들이 선호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라는 소문과함께 중간 브로커들이 개입하면서 큰시숙님도 결혼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누구보다 아들의 축처진 어깨를 날마다 지켜봐야했던 엄마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결혼브로커의 주선으로 맞선 보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큰시숙앞에 고등학교 3학년 정도의 나이어린 아가씨가 나타났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결혼을 했다면 그만한 나이의 딸을 낳았을수도 있다 싶긴했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였고 자신이 잘해주기만하면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끼리라 생각했다. 18살이나 나이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제수씨가 자신의 아내에게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게 쑥스러운 마음이 들지않는 것도 아니였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도 여태 혼자 살아온 자신을 생각하면 제수씨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것이고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만 좋다한다면야 내세울 것 하나없는 큰시숙님은 마다할 게 없었다. 이것 저것 가릴 처지도 아니였다. 아내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처갓집에 천만원이라는 거금도 송금했다. 결혼패물도 원하는만큼 해줬다. 그만큼 큰시숙님은 결혼이 절박했고 그렇게까지라도해서 처갓집 식구들에게 환심을 사고 싶었다. 가끔 활자신문에서 외국인신부를 맞아들여 언어장벽으로 인한 의미전달 부재, 문화적차이, 이해대립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는 한국의 남편들이 있다는 뉴스를 볼때마다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렵게 결혼했으면 잘해줘야 할텐데 폭력은 왜 하는지...자신은 아내에게 아주 잘 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가슴언저리에서 요원의불길처럼 일기도했다. 폭력을 사용하는 남편들이 있으니 자신은 아내에게 잘해주기만하면 결혼생활은 순탄하고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 큰시숙님의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동생과 동생네는 걱정이 앞섰다. 박봉의 나이많은 남편,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해야하는 신산한 처지를 나이어린 동서가 소화해내고 감당해낼지라는 걱정에 모든걸 동서에게 맡기지는 말라는 진심어린 어드바이스를 했다. 그럴때 큰시숙님은 동생내외의 조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아내에겐 한치의 의구심도 갖지않았다. 가끔 시어머님을 동반한 동서와의 시장동행은 아주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맏느리로 들어오긴했지만, 한국문화에 서툴 것이라는 생각에 맏며느리가 해야할 가사일은 많이 시킬 생각도 않았지만, 정작 자신이 몸을 사린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아이가 태어났다. 부부간의 끈을 이어주고 매개해주는건 무엇보다 아이다. 우리나라 모든 아내들의 정서는 그렇다. 그런 아이가 태어났으니 가족들의 기쁨은 표현할 수 없을정도였다. 그런데 나이어린 베트남 아내는 혈육이라는 생각을 조금도 들지 있지않는 듯 자신이 낳은 아이인데도 한번 안아줄 생각도 하지않았다. 열달동안 배아파 낳은 아이가 아닌 듯 외면했다. 엄마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는 아장아장 기어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기라도하면 엄마는 아이를 외면하고 혼자 놀기를 강요했다. 엄마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시댁에 들린 작은엄마를 보면 엄마인것처럼 품에 안기곤했다. 철들지 않은 베트남 아내는 주부로서 해야할 일보다 이웃 아파트에 살고 있는 같은 베트남 여자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 고국을 떠나 살고 있으니 외롭기도 할꺼라는 생각에 아무도 말릴 생각을 않았다. 할 이야기가 있다는 핑계서부터 밥을 먹으로 간다, 옷을 사입으로 간다는 등등의 핑계로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으로 나다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그런 1월 4일 아이의 2번째 생일을 하루 앞 둔 늦은 밤 친구와 밥을 먹으로 간다는 베트남아내는 돌아올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일말의 의구심에 방문을 열어봤드니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열려진 장롱 안으로는 서랍문도 열려져있다. 식구들 눈치채지않게 집을 빠져나가야한다는 다급함이 방안을 이사를 하기 위해 헤집어 놓은 방과 다름없이 해놓고 사라졌다. 안되겠다싶은 생각에 가출 신고를 했다. 이튿날, 영업시간에 맞춰 금융기관에 찾아가 통장잔고를 확인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 이름으로 된 통장에서 인출을 해가고 난 후였다. 엎친데 덮친격에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아이 이름으로 돼 있는 통장인데 왜 본인이 아닌데도 돈을 인출해줬냐?"고 따지니"아이 돌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사정사정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인출해드렸죠."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공연한 사람에게 화풀이해봐야 무슨 소용있겠나는 생각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왓다.
"아이 첫생일이나 챙겨주고 가지..." 자신을 위무하듯 언성을 높이며 "오히려 잘 됐지 머! 더 많은 돈을 갖고 나갔음 어떻게 돼겠어요. 어짜피 한평생을 같이 살 생각이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덜 정이 들었을 때 헤어지는게 낮죠 머." "외국인과의 결혼절차는 얼마나 까다로운지 몰라요. 그 어려운 과정을 치르고 결혼했는데....제일 마음 다치고 속상한 사람은 시숙님일 것 같아, 시부모님께 말씀 드렸어요. 시숙님께는 아무말씀 말라구요."
물과 기름처럼 겉돌던 철없는 아이와의 결혼생활은 3년만에 막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생채기만 남긴체...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줌마들의 가라사대! (0) | 2010.03.07 |
---|---|
며느리사랑은 시어머니! (0) | 2010.02.25 |
여유로운 마음 (0) | 2010.01.10 |
가슴에 품은 모정 (0) | 2010.01.07 |
무늬만... (0) | 2009.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