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지근 거리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은 봐왔던J...그렇지만 보이는 부분이 J의 삶 전체는 아니라는걸 그 아이가 먼 하늘나라에서 이름 없는 별로 환생된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몇 달동안에는 말도 못 붙일정도로 마음과 몸이 젖어있었고, 늘 눈길은 혼자남은이의 미안함과 외로움의 눈물로 젖어있었다.
늘 푸르름으로 건강해보이든 나무가 겨울에 접어들어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난 잔가지처럼 앙상해 보이기만 하던 J의 모습은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해도 꼬꾸라질 듯 보였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몇 달이 지나고 나니 <세월이 약>이라는 명제에 충실한 듯 얼굴에 혈색이 돌아온 것 같고, 몸무게도 아이를 잃기 전으로 돌아온 듯했다. 이야기라도 나눌라치면 자신보다 먼저간 아이생각으로 그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입을 앙다물며 속울음을 삼키는 J를 볼때마다 그 안쓰러움에 마음이 혼곤해지곤했다.
몇 달 전, 새벽 5시 30분쯤 지난 밤 병원에 들렀다 이른 아침 수주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종종 걸음을 지쳤다. 큰 도로를 건너고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멀지않은 곳에서 J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시간에 어딜 갔다와요?" 소중한 물건이라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으려는 듯 가슴에 꼭 안고 있는 책은 타블로이드판 크기의 양장본인 법문서적인듯했다. 멋을 부려도 될 만한 위치와 재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멋에는 관심이 없는 듯, 염주팔찌를 몇 년 전부터 끼고 있는 모습에서 J의 성품을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절에 갔다와요." "이렇게 이른 시각에요?" "절에가서 기도라도 하고와야지만 하루종일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아서요." 그리고 각자의 길을 향해 등을 보이며 잰걸음을 지쳤다.
그리고 몇 달 후 "요즘도 절에 다녀요?" 의 나의 질문에 당연하죠 라는 듯한 얼굴로 "마음의 공황을 너무 심하게 겪으며 마음을 잡지 못한 내게 스님이 그러시더라구요. '한 달동안만 새벽기도를 다녀보면서 마음을 좀 안정시켜보라.'더군요. '한 달쯤하고나면 그만두겠지, 두 달쯤 하고나면 그만두겠지' 생각 하셨데요. 그렇게 한달이 가고 두 달 석달 반 년... 그래도 새벽기도를 그만두지않자 이제는 내가 하는데로 내버려 주는 편이예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드러나는 부분만 봐오던 나는 J의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했다. 아이를 보내고 난 후 그렇게 마음고생이 심했는지를...
"말도 마세요. 처음에는 신경안정제를 먹지않으면 잠을 못 이룰 정도였어요." 이해한다는 내 표정을 자르며 "종래에는 정신병원까지 몇 달동안 다니기까지 했어요. 내게 아주 잘했던 아이였거든요. 아무리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어도 내가 부르면 달려왔을정도로 엄마가 하는 말에는 토를 달지 못하는 아이였어요...그런 아이였으니 그 아이를 떠나보내고 남은 내가 견뎌내야만 하는 그 혹독함은 어떠했겠어요?" 흩어져있던 기억들이 피보나치 수열처럼 자연증식을 하자 감정의 격정을 주체할 수 없는 듯 연신 눈자위를 훔치는 J...잊고 있던 딸에 대한 조각난 기억들이 소중하게 다가오는건 딸의 부재에대한 더한 그리움의 부산물이리라.
1년하고도 몇 달이 지난 아직까지 새벽마다의 사찰행보는 그만두지않은 자신의 깊은 신심을 스님은 바라만 보고 있단다,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진행형이고 싶다는 J...
적지않은 사람들은 J를 냉소적인 사람으로 평가한다. 승자독식의 오만함도 있었을까? 승자독식의 현실에 재테크에 성공한 후 아만에 빠졌다는 따가운 지적이 들리기도했다. 말을 붙여도 눈을 내리깔은 듯한 표정과 진정성 느껴지지 않은 대응으로 대하기 일쑤인 J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냉혹하다고들했다. 그렇지만, J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순수한 내밀함과 심성고움도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맏딸을 잃고 난 후 J는 성찰의 삶을 사는 듯, 아만의 늪에서 스스로 걸어나온듯했다. 냉소적인 표정으로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하고 속에 있던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 이튿날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요. 새벽에 기도를 할려고 두 손을 합장했는데, 자기한테 한 말이 생각나 기도를 할 수가 없었어요."며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는 J...
아이를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던 불가항력이였는데, 남은자의 미안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혹사시키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