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네가 일본으로 떠난지도 한 달이 되었구나. 장대비가 쏟아지는 지난 달 7일 집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연수를 떠나는 너를 배웅할 생각도 못한 나는 가게 출근을 서두르고 있었지. 그런 나에게 배웅하지않아도 된다는 네 말에 속으로 뜨끔하기까지했단다. 20kg정도의 무게만 채워야한다며 중량을 상계해가며 가벼운 옷가지들과 생필품을 넣은 트렁크와 노트북, 우산까지 들어야하는데도 배웅할 생각도 못한 설익기 짝이 없는 엄마마음을 알았다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얼굴이 화끈해지더구나. 다행스럽게 네 친구가 공항까지 배웅을 해준다는 네 말에 내 마음을 들키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지.^^
몇 년 전 네가 군대 입대할 때와 이번에 떠나는 어학연수와 두 번 집을 떠나는셈이구나. 그때 마음과 지금 마음의 중량감은 그 기울기가 다르겠지만,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군대 생활보다 자립할 생각으로 떠나는 지금의 입장과는 느끼는 중압감은 다르리라걸 알고 있다. 몇 년 전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며 네 속을 비쳤을 때, 어학연수로해서 드는 제반 비용보다 돌아오는 효율성을 의구하며 망설이다가 결국은 보내지 못했던 지난날들의 후회스러움이 네가 일본으로 떠난다는 결정을 하기 전까지 마음에 부채로 남아 있었단다. 어학연수로 인해 들어야하는 제반비용으로 아버지와의 이해대립이 몇 번이나 있었다는걸 너도 알테지만, 네 나이일 때 스스로 삶을 일구어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해지하기 위해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르며 대리점을 찾아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가면서 네 휴대전화 통신사가 KT라 집에서 가까운 전화국엘 가지않고 왜 대리점으로 향했는지 후회스러움이 안개비처럼 일어났단다. 공교롭게도 대리점 앞에 도착하니 셔터문이 내려져 있지뭐니. 순간 허탈했지만, 빠른 일처리로 환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리더기에 교통카드를 댄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모른단다..사람마음이란게 아이러니컬한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돈 천원은 대수롭지않게 쓰는데도, 환승혜택을 받지 못했을 땐 왜 그렇게 억울한 생각이 드는지....
쏟아지는 비에 우산밖으로 돌출해있는 옷은 다 젖어졌지만, 동일노선이 아니라 환승혜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국으로 갈 수 있었다. 해지보다는 일시정지를 해두는게 낫지않겠나는 전화국 여직원의 권유에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왠지 해지를 해버리고나면 너의 체취를 맡을 수 있는 것들을 없애버린다는 미안함과 한달 기본요금만 부담하면 되는데, 그 몇 푼 아끼려고 해지를 했나는 너의 추궁이 있을까는 생각도 들더구나.
휴대폰을 해지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휴대폰을 구입할땐 별다른 절차없이 까탈스럽지 않는데, 해지를 할 때는 아주 까다롭더구나.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매장에서도 요금 업무나 해지절차를 대신 해줘도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짜증스러웠던건 본인이 직접 내방하지 않으면 가족이 다 등재되어있는 주민등록등본과 네 주민등록증, 해지하러 가는 당사자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고 내방을 해야한다니....미리 전화해서 정보를 알아내지않고 갔었더라면 다시 걸음해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겠더구나.
일을 끝내고 전화국출입문을 나서는데, 문자메신저가 도착했다는 시그널이 울리지 뭐냐.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구지?' 스팸문자겠거니하고 무시하다가 가게로 돌아오기위해 버스에 오르고 난 후 폴드를 열어보니 네 친구한테서 문자가 와있지뭐냐. "민규가 떠나고 나니 서운하시죠? 제가 자주 연락 드리겠습니다." 길지않는 단문이지만, 그 내용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의 물결은 오래도록 긴여운으로 남아있단다.
네가 떠나고나면 돌아올 때까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득하게 느껴졌지만, 오후 5시쯤 일본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느끼는 물리적 거리감은 멀리 떠나 있다는 생각이 들지않을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단다. 기상악화로 비행기 이륙시간이 지연돼 일본에 내린 시각이 늦었다는 전갈이였지. 자신이 거처해야할 기숙사로 가기위해 리무진을 탄 후 잠시 짬을 내 전화한다고했었지....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리무진을 렌트해 차량비용을 학생에게 부담시키는지.....일본에 도착하고 난 후 인터넷이 연결 될때까지 단절이 주는 불안감이 아주 크게 다가올꺼라 생각했는데, 퇴근 후 인터넷을 켜고 네이트에 접속하니 네가 접속되어있지뭐니...얼마나 반가웠든지...버스를 타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몇 번의 반복으로 건너간 다른 나라임데도 인터넷을 통한 만남은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부모그늘을 벗어나 세상의 한복판에 네가 서있다. 네가 어떻게 데생을 하고 여백을 채울 것인지, 네가 하기에 따라 다양한 삶들이 펼쳐질 것이다. 때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론 젊음이 주는 용기가 전능의 신열에 들떠있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제 웅지를 펼치고 마음껏 날아보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