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내기!

정순이 2009. 8. 16. 13:57

 

 오랜만의 만남이다. 지난 번 모임에는 개인사정으로 참석을 못했으니, 4달 만이다. 몇 개의 친목회 모임이 있지만, 마음 터놓고 지내기는 다른 모임과 비할바가 아니다. 몇순배 잔이 돌려지고,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때 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들 산을 잘 타는 사람들이라 산 이야기가 나오면 남편이나 나나 귀가 솔깃해진다. 회원 중 한 커플이 여행사를 하고 있으니,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늘 이야기 중심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회원들은 일년에 몇 번은 외국여행을 다녀도 경제생활이나, 시간적인 면에서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낄 정도이니 괜찮지만, 나와 같은 경우에는 모든 여건이 맞지않다. “00엄마도 여권 하나 내지?”라는 여행사 회원의 말에 마땅한 대답을 못 찾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른 회원은 “설마 여권이 없을라구?”라며 의문부호를 날린다.


누구나 이데아가 다르고, 자기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들이 다르듯이 외국 여행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여행이 주는 매력을 모르는건 아니지만 지금의 내 생활에서 책과 여행을 두고 양자택일하라면 일초의 망설임 없이 책을 택할 것이다. 여행하는데 드는 제반적인 경비로 책 한 권이라도 더 사서 보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박제되어있다. 그러나 생활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나도 구심점이 흐트려지지 않을때는 주저없이 여행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그럴 기회가 올진 모르지만, 온다면 책을 통해서 접했던 그리스의 문화유적들을 제일 먼저 만나보고 싶다. 술의 신이라는 디오니소스, 바다를 지배했다는 포세이돈이며 올림포스의 주신인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이기도 하는 헤라여신, 전쟁과 知性의 여신인 아테네....고대인들이 만들어낸 전설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


몇 순배 술잔이 오간 후 옆 탁자에 앉아있던 남편들의 목소리라 커졌고, 남편이 “00야, 설악산 대청봉이 몇 미터이고?” 설악산 대청봉의 해발고도가 얼마인지 묻고있었다. 갑작스런 물음에 ‘음...’ “한라산이 1950m고 그 다음이 지리산이 1915m라곤 알고 있는데...” “맞다니까. 그러네!” 남편과 내기를 한 회원이 목소리 톤을 높였다. 자신의 남편의 말에 쇄기라도 박으려는 듯 말을 거들고 나서는 그의 아내 “(자신의 남편을 지칭)숫자 하나만은 기억잘해요. 난 전혀 그렇지않은데...” 상황판단을 해보니 아무래도 남편이 질 것 같았다. 남편은 1700m가 안 된다고 했었고, 내기를 한 다른 회원은 1700m가 넘는다고 했었다. 두 사람 내기를 판가름을 종지부 찍기에는  정확한 해답이 필요했다. 남편은 등산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속의 산이름과 표고를 잘 기억하고 있는편이다.

 

몇 번 남편과의 내기에서 지기도 한 기억이 있고, 남편의 총기(聰氣)도 무시하지 못할정도라는건 다른 회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제는 왜 그런 판단을 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남편도 자신있다는 투로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두 사람은 약지손가락으로 링을 만들며 10만원을 걸었다. 회원들은 마음이 다급해졌고 바빠졌다. 남편이 수긍하게끔 정확한 소식통이 있어야할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 듯...한 회원이 집으로 전화를 하는 듯했다. 아들과의 통화에서 인터넷검색을 요구했고, 언제나 자신의 판단에 굴복하지 않는 남편이 못 미더워할지 모르니, 다른 회원은 국립국어원으로 전화를 돌리는 듯 자리를 떴고, 남편의 휴대전화로 문자서비스를 요구한 상태였다. 두 곳에서 알아낸 답은 1707m였다. 남편이 진 것이다. 해서 2차로 자리를 옮겻다. 늦은 시각이지만, 광안리 백사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백사장 곳곳에는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앵글에 잡히고, 아베크족들의 다정함도 앵글에 잡혔다. 물고기의 은빛 비늘같은 작은 물살이 바다를 가르며 그들의 분위기를 호응 하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않은 멋진 토요일의 늦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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