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춤추는 관광버스

정순이 2008. 10. 9. 11:48

 

"할말 있어요." 내 손을 나꿔채듯 나꿔채고는 냅다 잰걸음을 지치는 대척점에서 가게를 하고 있는 여성이다. 타고난 리더십과 처세술, 자영업을 하면서 터득한 상술로 외연이 아주 넓은 여성이다. 이태전 시장 상인들 40-50명을 데리고 고향에 있는 농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자신의 나이보다 어린 사람을 잘 아우르고, 자신보다 연치가 높은 분께는 깍듯하게 대하니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팬으로 확보해놓고 있다. 시골의 먹거리와 도회지 소비층을 잇는 직거래장터의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님 농협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는진 모르지만, 하여간 많은 선물을 안고 돌아온적이 있다. 그 양도 어마어마했다. 개개인에게 단감 한 박스부터 시작해 많은 선물을 한 아름 갖고와 합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었다.  농협에 방문했을 때 농협 직원들이 문밖까지 나와 방문한것을 반갑게 생각한다며 깍듯하게 접대하는 것에서부터 헤어질때 배웅하는 세심한 서비스까지.....

 

"무슨 말....?" 상기된 얼굴로 그녀의 팔에 이끌려 그녀의 가게까지 가서야 그녀는 팔을 풀었다. "있죠? 다음달 8일 쯤해서 소백산 놀러갈려고 하는데, 같이 갔음해서요." 그런 말이라면 굳이 자신의 가게까지 데려오지않고도 말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상대의 마음을 얻기위한 계략차원이지 않나는 생각이들었다.^^ "글쎄...남편이 뭐라고 할려나" "자기가 못가면 남편이라도 괜찮아...."확답을 보류하고 가게로 돌아왔다. 늘 누군가의 이런류의 요구를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남편이 선뜻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를 해올때마다 내 생각은 반영(나는 가고 싶지만 남편의 생각은 그렇지않다) 시키지 않은 듯, 남편을 앞세워 교묘하게 거절을 하곤했었다. 몇 년 전에도 이런 부탁을 거절한적이 기억돼 또 다시 거절하기엔 양심이 반란이라도 일으킬 듯 혼란스러워졌다.

 

"무슨 말 하더노?" "10월 8일 쯤해서 소백산에 간다는데 날더러 가자고그러네.." "갔다와" 어쩐일이지? 내 귀를  의심하며 재차 물었다. "갔다올까요?" "그래 갔다와" 두번의 다짐을 받고서야 의구심을 풀었다. "어쩐일이세요? 동서들과의 모임도 못가게 하드니..." "동서들과 만나고나면 내가 스트레스 받으니 그렇지" 부부도 나름데로 번민과 고민을 하고 배우자를 길들이기위한 계략을 꾸미곤한다. 그 생각의 바탕에 셋째 동서의 삶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일년에 두 서너번은 외국 여행을 다닌다는것과, 생활비로 2백5십만원을 받는다는걸 남편한테 이야기 한적이 있다. 그 이야기 속에 함축되어있는 계모(計謀)는 동서의 삶과 내 삶을 비교시켜 나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길 원했고, 그런 생각이 토대가 된다면 더 잘해주지 않겠나는 일말의 기대도 내재해있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부작용, 역풍의 세기는 아주 강했다. 누구 표현처럼 이단 옆차기를 날리는데, 대적할  무기하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런 남편이 어쩐일인지 갔다오라고 선선하게 말하는 것이다. 마인드콘트롤 시스템이 오류를 빚었는지 실없는 사람으로 보일정도로 자꾸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 이렇게 한 번 두 번 혼자 밖으로 나다니다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외출하게 되는 날이 올꺼야..' 나름데로의 계산으로 먼 미래의 삶을 청사진을 그렸다. 

 

10월의 아침공기는 아주 상쾌했다. 여름이 길었다고는 하나 어제는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을 정도로 가을 바람이 피부를 스킨십했다. 출발시각에 맞춰 모임장소에 가니 낯이 익은 사람들이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니 기사님이 반가운 인사부터 나눈다. "오늘 00동 곱분이 이뿐이들이 여기 다 와버렸으니 시장안이 썰렁할꺼예요." 모두들 박장대소로 화답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도심지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박무와 농무가 번갈아가며 우리들을 맞는듯했고, 패달을 밟으며 속도를 높이니 가시거리 폭이 넓어졌다. 이어 누렇게 익은 벼들이 향연을 벌리고 있는 들판이 시야속으로 들어온다. 잔잔한 호수 가장자리로 안개가 피어오르고, 물에 투영된 나무 한 그루에 어느새 마음은 소풍 나온 아해로 타임머신을 승선했다. 방음벽을 타고 영역을 넓히고 있는 담쟁이의 입성...

 

마이크를 잡은 분은 대칭면에서 가게를 하는 남자분이다. 타고난 유머러스함과 발군의 재치로 여성들을 즐겁게 보내는데 일조한 분이다. 일행 41명에서 여성이 39명 나머지 두 사람은 남자분이였다. 그 남성분의 지인이 옵서버로 출연하는 바람에 아쉽게 청일점을 놓치게되었다. 마음에 들지않으면 언제라도 이야기를 해달라는 기사님은 신나는 뽕짝으로 풍악부터 울렸다. 인솔자가 노랠 부를시간이라며 앞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노래비는 받지않을것이라는 약속에 노랠 부르지않아도 된다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노랠 부르라니..피 할 수 없음을 모르는게 아니니 어떤 노래를 불러야할지 아는 곡 제목 몇 개로 두뇌회전을 시켰지만, 도통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또 부른다면  끝까지 가사를 다 할 수 있을지 내 가 부를 차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초조함은 더 했다. 늘 노래방 자막에 익숙해있던 습관에 가사를 끝까지 부른 적이 별로 없었다는 기억도 주눅들게 만들었다. '왜 이런 문화가 생겼지?' 원망스런 마음도 일었다. 노래방 음향기기하며 나이크클럽의 조명이 분위기를 띄웠다. 음역의 높낮음이 별로 없는 '석류의 계절'을 불렀다. 갑자기 노랫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뿔싸 그럼 그렇지 하는데 겨우 가사가 떠올랐고, 끝까지 부를 수 있었다.^^

 

한 순배 돌고 나자 인솔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가 노래방에 가면 노랠 부르고 노래비를 내야하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노랠 부르면 노래비를 내야합니다." 며 비닐봉투를 허리춤에 찼다.노래비를 거기다 넣기 위해서다. 노래제목을 묶어놓은 책을 돌리며 노랠 부를 사람은 신청하라고 했다.  자신이 부르고 싶은 곡 번호를 입력하면 노래방처럼 화면에 자막이 나타나고 따라부르기만 하면 된다.  테잎을 끊은 사람은 같이 놀러가자고 한 여성이다. 풍부한 성향으로  음역의 높낮이를 스무스하게 소화를 했다. 다들 장사하느라 노래 부를 기회도 많지않았을텐데, 어쩜 그렇게 노래들을 잘 하는지...연치가 높음에도 아주 해맑은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부르는 사람도 두어명 됐다.  좁은 통로가 스테이지로 바뀌었고, 중심을 잡아가며 신나는 음악에 맞춰 젊었을때의 열정을 모두 쏟아냈다.소백산에 간다고 했으나,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아 등산은 계획에 없었든 듯, 영주 부석사, 소서서원을 거쳐 단양 충주호를 유람한다음 하루의 일정을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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