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아름다운 삶

정순이 2008. 9. 27. 11:24

 

만산홍엽으로 가을의 濃淡이 농염하다. 대기의 산란으로 태양이 산등성이위로 모습을 드러낼 듯 붉은 적운으로 동쪽하늘이 물들어 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코발트 빛 하늘이 눈이 부시고, 하늘을 가르고 길게 줄을 잇고 있는 비행운은 별똥별이 긴꼬리를 하고 지나간 듯하다. 하늘 아래 작은 바람에도 몸이 흔들리며 이웃과 스킨십으로 감정 교류를 나누고 있는 듯 보이는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이 마냥 좋은 저물어가는 9월의 서정이 녹아있는 아침이다. 살아온 궤적이...살아온 삶의 모습이 다 다르지만, 이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기에 웃음 짓는 날들이 되지않을까싶다.
 
"추석 쐬고 이제서야 시장을 나왔네...."희수를 바라보는 연치임에도 손자 뒷바라지를 하시는 할머니는 연치에 어울리지않게 건강하시다. 몸도 건강하시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더 건강하신 분이다. 손자 둘을 놔두고 가출을 해버린 며느리를 대신해 손자들을 돌보고 계시는 할머니는 부모 이상으로 손자에게 곡진하다. 그런 모습이 보일때마다 많은 감명을 받고 있다.

 

그  진실된 마음의 바탕에는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교육받았던 소양과 교회에 다니시면서 늘 기도하는 신앙심으로  손자들에게 정성을 아끼지않으신다. 손자들이  장성할 때까지 죽지않아야할텐데라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할머니, 남은 여생을 손자들을 위해 삶의 여백을 메꿔갈 것이라는 다짐이 웅숭깊다. 조모(祖母)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두 손자.....그 중 큰 손자는 군대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 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엄마없이 자라서인지 속도 아주 깊고, 할머니를 챙기는 마음씀씀이가 어른 못지않다고 손자자랑에 열심인 할머니시다. 할머니의 깔끔한 음식솜씨에 길들여져있던 큰손자는 병영밖훈련에서 동료들과 먹을 수 있는 양의 고추장볶음을 주문하기도하고 필요한 물건들도 거리낌없이 전화를 하는 손자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손자에게 보낼 음식을 준비한다고 하니, 손자를 향한 큰 사랑이 눈에 읽힌다. 그 할머니가 사시는 아파트에  6개월 전 경비원으로 오신 할아버지가 계셨단다. 3.3㎡의 작은 공간에서 희끗희끗한 머리를하고 앉아 경비를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워보여 시장을 갔다올 때나 집에서 색다른 음식을 했을 때,  할아버지께 갖다드리곤했다.

 

그런 날이 계속 반복되자 할머니의 진정성을 알 수 있었던 할아버지...아파트 입주민으로부터 할머니의 집안사정을 알게된 할아버지... 하루는 시장바구니를 들고 경비실 앞을 지나가시는 할머니를 부르게 되었고, 자신의 집으로 놀러오시라며 약도와 전화번호를 아르켜드린 모양이다. 며칠이 지나도 할머니가 반응을 보이지않자, 할아버지의 배우자분이 아파트로 오시게 됐고, 할머니를 모시고 할아버지 집으로 가시게 됐다. 집에 도착해 현관안으로 들어간 할머니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시더란다. 거실 벽을 도배하다시피 한 박사자격증과 그옆으로 나란히 걸려있는 박사모를 쓴 아들들 모습.....큰 아들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둘째 아들은 대학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단다. 자신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는걸 아들들이 알면 난리날것이라고 한다. 나이가 들었으니 소일거리 없이 나태한 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진다는건 자신의 타고난 부지런함이 그럴 수 없었고, 힘들이지 않고 단순하게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이라 소일거리 삼아 경비일을 자청했고, 그 수입은 이웃들과 나눠가진다한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는 시골에 있는 땅을 먼친적에게 소작을 줬고, 해마다 소출한 농작물을 보내온다며  여러 가지 먹거리들을 비닐에 담고 계셨다. 참깨, 호박...그러다 마대자루를 가져오드니 쌀을 담았고, 그 양이 한 말 가량 된다고하니 할머니에 대해 가졌던 고마운 마음이 어느정도인지 미루어짐작이 갔다.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아든 할머니는 고마움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우물쭈물하자 마침 앞을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 뒷트렁크에 먹거리를 실은다음, 다음에 또 놀러오시라며 배웅한 할아버지 내외분...아파트 집 앞에서 하차한 할머니 짐이 많아 어떻게 들고갈까 고민하는데, 택시기사가 어깨에 메고 집까지 다 갖다주더란다. 머피의 법칙 반대는 셀리의 법칙(Sally's Law)이라고 한다. 늘 선한 마음으로 선하게 살아오신 할머니께 셀리의 법칙이 따른셈이다.

 

삶의 행간마다 채운(雲)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채색을 하시는 세 분의 삶을 보면서 가슴이 절절해옴을 느꼈다. "남들에게 그렇게 잘하니 자식들도 잘 되나봐요."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응보(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했다. 선행을 하는만큼 복을 받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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