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대 일기 예보에서는 일요일날 비 올 확률이 20%정도라고 예보를 했다. 이번에도 또 우중산행을 해야하나는 걱정이 앞섰다. 올해 들어서 등산 가는날마다 비가 온 걸로 기억될만큼이다. 예년에 비해 건기(乾期)가 길었던걸로 기억하면 머피의 법칙이 나를 따라다닌 셈이라 하지않을 수없다. 특히 백화산 산행코스는 암릉이 많다는 남편의 말을 상기하면 비를 맞은 바위를 타야한다는게 여간 걱정스럽지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지반이 약해 내려앉은 볼우물에 떨어지는 빗줄기의 굵기가 제법이다. "비가 와요." 남편은 태연하다. "오후부터는 비가 그치고 하늘이 게인다고 했으니 걱정하지않아도 돼..." 그러나 아파트 입구 현관문을 나서는데 빗줄기의 세기는 더 굵어지는 듯 했고, 곧 소나기로 변신 할 듯한 기세로 세차게 후려쳤다. 그칠 것 같지않던 비가 기상대의 예보에 호응이라도 하려는 듯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것 같드니 목적지에 도착하자 비가 그치는게 아닌가. 짧은 한숨이 긴 터널의 후두를 지나 입술을 진동시키며 밖의 세상으로 나와 소멸됐다.
동네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산악회. 서너 번 같이 간 산행으로 낯이 익은 사람이 꽤 있다. 그런 생각이 인프라 되어있으니 마음부터 푸근해진다. 영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산악회가 아니다보니 다른 산악회보다 회비도 아주 저렴하다. 유류세 인상으로 회비를 인상해야 할 것 같은데도 인상 전의 가격이다. 그리고 모든게 푸짐하다. 출발할때 나눠주는 떡부터 시작해 불고기, 여러 가지 과일을 곁들인 하산주까지...동네 사람들이 회원이다보니 찬조를 하는 사람이 많아 같이 가는 일행들은 덕을 보는 셈이다.
도심을 벗어난 차량은 램프에 올라섰고, 자욱한 안개가 깔려있는 고속도로를 질주해 나갔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가을의 서정은 풍성하다. 고개를 숙인 벼하며, 가지 끝에 메달린 한아름되는 호박덩이가 가을을 풍요롭게 수놓고 있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세시간을 달리던 끝에 목적지에 토사물을 토하 듯 내려놓고, 원점회귀할 우리들을 기다리며 장시간 주차해있을 터이다.
산행들머리부터바스라질 듯한 흙과 너들길이 이어지드니 오전에 잠시 내린 비로 등로도 미끄러워 산행코스가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는 듯했다. 출발은 좋았다. 몇 십분이 지나서일까? 남편의 호흡이 아주 가파르게 들렸고, 얼굴빛까지 노랗게 변해있었다. 앞서가든 난 남편의 페이스에 맞추며 서너팀을 앞질러 보내고 숨고르기를 거듭하며 하루의 힘든 여정에 올랐다. 비 온 뒤라 발치 아래는 온통 운무로 가려져있어 조망은 없었지만, 나무속에서 머물러 있던 안개들이 계절풍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연전 설악산에서 느꼈던 그 광경이 다시 재연됐다. 이런 맛에 알피니스트들은 산을 오를까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게 오른 뒤 맞는 점심시간은 입에서 사르르르 녹는 솜사탕 같다.
가파른 산행코스와는 달리 평평한 주행봉인 산등성이에는 몇 십명이 둘러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평평하면서도 조금 융기 되어있는 부분을 보니 뫼터인 듯도 했다. 몸컨디션이 좋지않아 후다닥 점심을 헤치운 남편과 나는 일행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했다. 앞서가든 남편은 "인터넷에서는 백화산에도 공룡능선이 있다고 하드니......" "칼바위능선, 공룡능선."이라고...다른 사람이 남편 말을 이어 "용아장성"이라고도 했다. 절묘한 표현이다. 언젠간 꼭 가 볼 것이고 아직 타 보진 않아 잘 모르지만, 지난 번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내려오며 뾰족하게 솟아 있던 공룡능선과 날카로운 용의 이빨같이 솟아있는 용아장성이 중첩되어왔다. 좁은 등로 옆으로는 낭떠러지라 조금만 방심해도 큰사고를 부를 듯했다. 누가 그랬다. "주는 술을 다 마셨으면 큰일 나겠다." 라고...손과 발을 다 사용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등로 옆으로는 울창한 상수리나무 키 낮은 신갈나무.조록싸리나무, 국수나무,떡갈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신갈나무 우듬지에 민달팽이 한마리가 오수를 즐기려 나들이 한 듯 매달려 있다. 그 옆으로 개망초 꽃이 자신도 있음을 봐달라는 듯 하얀 치아를 들어내고 웃고 있다. 뾰족뾰족 솟아있는 바위끝을 잡고 등로를 따라 걷고 또 걸었고 주정봉을 지나 마지막 등산 코스인 백화산을 향해 갈길을 재촉했다. 식사하는걸 보고 왔었는데, 바짝 뒤를 따르며 좇아오는 사람은 카페지기인 분이였다.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점심식사하는걸 보고 앞질러 왔는데, 벌써 우리 앞을 지나 휑하니 사라진다. "우리가 후미입니다. 뒤에 더 올 사람은 없어요." 그래도 남편은 느긋하다. "아무려면 산행대장이 앞질러 가진 않았는데, 우리가 마지막일라구..?" 아무리 그래도 난 내 페이스에 맞출끼다. 무리하다간 지난번처럼 다리경련이 일면 우짤라구...." 지난번 다리경련으로 고생했던게 상기되는지 미간이 일그려졌다.
한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매미 소리가 힘이 없는 듯 울다가 그친다. 한 시간여를 남겨두고 걷고 있는데, 뒤에서 산행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이 앞서 아는척을 했다. 총무님이 말을 잇는다. 같은 여성일행들은 B코스로 내려가버렸지만, 자신은 백화산정상을 오르고 싶어 안타까워했드니 산행대장님이 자신이 같이 할테니 조급한 마음먹지말고 같이 가자고했다고 한다. 정말 착한 심성을 가진 산행대장이다. 마음씨만 좋은게 아니라, 산에 대해서는 모르는게 없을 정도로 등로 지도를 꿰고 있다. 총무님과 마지막으로 백화산 정상에 오르니 산행대장님이 박수를 유도했다. 꼴찌로 도착하고도 박수를 받긴 처음이다.^^산악회 일행들이 같이 행동하기 위해 후미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체 사진을 끝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저 발치 아래로 문수전이 절벽위에 매달려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단아하고 깨끗하게 단장된 <문수전> 들러보고 싶었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먼저 도착한 회원님들을 생각하며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구비구비 이어진 산능선들이 길어 지구를 한바퀴 돈 듯하다. 산행지도에는 굴곡진 등고선에 삼각주모양으로 길지 않은 코스처럼 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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