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미켈란젤로 미술의 비밀을 읽고

정순이 2008. 6. 1. 10:16

 

 오랜만에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구입했다. 지난 번 인터넷서점에서 두어 권의 책을 구입한 뒤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밀쳐뒀던 이후로는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바빠서 그랬다는 얄팍한 핑계보다는 책읽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내 의지를 꺾기 일쑤였고, 오롯한 나만의 시간인 밤을 하얗게 지새며 책을 읽고 싶은데, 졸음의 질량은 박약했다. 

 

 가쁜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산을 오르기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책속의 화자들의 이야기를 즐기며 그들의 생각과 교감을 나누는게 훨씬 좋다. 책을 읽고난 후 나의 생각들을 잘 짜여진 플롯으로 윤색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바램은 없다. 그런 생각으로 내 자신을 풀무질하고 오체투지로 일관하고 싶지만, 졸음의 틈을 비집고 흥미거리에 손가락 끝이라도 들여놓을라치면 금세 가벼운 흥밋거리에 휩쓸리고만다.  가게에 오는 고객이나 이웃들은 일요일마다  등산을 가는 남편과 같이 다니지 않고 혼자서 가게를 보는 날 안쓰러워하고 돈에 눈이 먼 사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릴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이런 희열이 숨겨있음을 그들에게 다 드러내고 싶기까진않다.

 

 레오나르도와 쌍벽을 이루는 예술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미켈란젤로를 생각하게 된다.  레오나르도가 인체 해부에 관한 수많은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면 미켈란젤로는 모든 작품을 스스로 파기할 정도로 거의 남아있지않아 아마 예술가 중 인체 해부로 떠올릴만한 사람은 미켈란젤로보다 레오나르도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서 미켈란젤로가 곳곳에 숨겨놓은 해부학의 증거를 발견하고 남아있는 후세의 찬미자들이 해독하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미술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를 꼽으라면 아마도 미켈란젤로와 동시대를 살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포착한 <라 지오콘다. 모나리자의 별칭, 이탈리아어로 행복한 여인> 의 미소를 들 수 있겠다. 

 

 수수께끼는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결코 완전하게 풀리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각 시대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논쟁의 거리는 더 많아진다. 모나리자의 미소건,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성서 속의 인물들이건 수수께끼가 결코 완전히 풀릴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술가의 의식 속에는 상상력이 이성보다 위에 있다. 바로 그 세계 속에 모든 것들이 우리를 매료시킨다. 우리는 파사드 즉 대상의 겉 모양이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들뿐만 아니라 그 내면의 것, 그 속에 숨겨진 것들 또한 분석하고 싶어한다. 근육, 핏줄, 내장 기관, 감춰진 내면의 에너지, 생의 원천에 필연적인 폭발 같은 것들을...."

 

 미켈란젤로는 20세를 조금 넘은 나이에 조각가로서 큰 명성을 떨치게 된다. 끝내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영혼을 불사른 마지막 소원이자 유언'이라고 평가되는 <론다니니 피에타> 조각상.... '초과분을 제거하는 예술'. 미완성작으로 남이 있는 <성 매튜>는  '형상은 대리석 내부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는 미켈란젤로의 관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인체의 좌우 대칭을 응용했다는 캄피돌리오 광장과 세나토리오 궁전과 콘세르바토의 궁전의 파사드 ...

 

 '그의 손에서 해부되지않은 동물이 있을까! 미켈란젤로는 실로 언청난 수의 인체를 해부했다. 평생을 해부학에 바친 어떤 사람이라도, 또 이를 직업으로 삼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의 지식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대표작인 <아담의 탄생>을 제작하기 위한 습작은 앉아 있는 남성을 표현한 누드......오른손에는 해부용 메스를, 왼손에는 인간의 가죽을 들고 있는 <최후의 심판> 일부분이라는 이 유명한 형상 속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넣었다한다.  조물주는 아담이 깊은 잠에 빠지게 한 다음 그의 몸에서 갈비뼈 하나를 떼어내 살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 신은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를 만들었다. 조물주는 이브에게 일어서서 아듬의 가슴으로부터 걸어 나오라고 명했다. 잠이 든 아담이 기대고 있는 잘린 나무 밑동 위로 세 갈래의 갈라진 가지들이 보인다.


"신은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은총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름다운 인체, 내가 사랑하는 이 인간의 몸에서만 신의 은총을 볼 수 있다. 신은 바로 이 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기 때문이다." 기를린다오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할 때 프레스코화 기법을 배운 미켈란젤로에게 1503년 교황 율리우스2세는 고대 로마의 휘황찬란함을 회복할 야심으로 자신을 위한 초호화판 무덤을 주문했다, 미켈란젤로는 이 계획에 아주 열성을 보였다. 하지만, 교황은 한마디 상의나 예고도 없이 마음을 바꿔 성 베드로 광장의 개축에 교회의 돈을 쏟아 부을 결심을 했고, 그 임무는 교황의 전속 건축가 도나르 브라만테에게 떨어졌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변덕 속에 숨어있는 브라만테의 계략을 보았다. 갑작스런 계획의 변동에 화가 치민 미켈란젤로는 그길로 로마를 떠나버렸고, 그 소식을 들은 율리우스2세는 주교를 보내 돌아오도록 종용했다. 볼로냐의 땡볕에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1508년이 되기까지 16개월간이나 조각상에 달라붙어 작업한 끝에 완성된 조각상은 성 페트로니오 성당의 중앙 벽감에 안치되었다. 술취한 노아.<노아의 제사>에 그려진 이뉴디는 망막의 시신경이 뻗어가는 경로를 형상화한 작품

 

 15세기 회화 작품들에서 페르시아 무녀는 주로 젊은 여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림 속의 무녀는 꼽추에다 책 읽기가 어려워 보이는 듯 책을 얼굴 가까이에 바짝 들이댄 모습이다.무녀가 앉아 있는 자세를 해부한 뇌의 해부...뇌수 줄기와 소뇌다리 시신경 등의 소뇌...신장의 해부도를 나타낸 그림속의 남성...
<바쿠스> 2미턴 높이로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작은 시티로스가 그를 떠받치고 있다. '술의 신' <바쿠스>는 현재 피렌체의 국립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6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대변하는 최초의 누드 작품이다. 바사리에 따르면 미켈란젤로가 남성의 신체 사이즈 및 자세와 여성의 외형을 결합시켜 표현했다고 한다.

 

이브를 유혹하는 뱀여인이 매달려 있는 화면 중앙의 나무는 대동맥궁(대동맥은 심장으로부터 피를 온몸으로 실어 나르는 중요 혈관으로 심장 근처에 활 모양을 하고 있다)을 형상화한 것이었고, 미켈란젤로의 의도가 아담에게 지성을 부여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두개골의 시상 단면속에 들어 있다. 뇌와 마루엽과 관자엽을 나누는 띠고랑, 하단의 녹색 스카프는 척추동맥을 형상화한 것이다. 천사의 엉덩이와 다리는 척수를 표현한 것이고, 뇌하수체는 화면 하단으로 이어지는 천사의 다리에 의해 표현된다. 

 

 라그롤라 추기경의 소원대로 <피에타>상은 산타 페트로닐라- 바티칸시티의 프랑스 정부관할 구역의 성당- 안에 안치되었다. 그 후 성 베드로 성당의 성구로 옮겨졌다가, 1749년 이후 현재의 장소, 즉 성 베드로 바실리카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오른편에 안치되어 있다. 이곳은 <피에타> 성을 에워싸고 있는 방탄용 유리로 인해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은 최적의 장소는 되지 못한다. 이 유리막 장치는 1972년 한 정신질환자가 성모의 코와 왼쪽 눈을 파손시킨 이후 설치 되었다. 복원가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이 부드러운, 달빛의 창백함을 닮은 성모의  얼굴" 을 되살리는데 성공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바실리카 대성당을 찾는 현대의 관광객들은 여전히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만 이 위대한 걸작을 볼 수가 있다.

 

 죽어가는 예수의 몸을 안고 있는 성모...절개된 늑골을 감싸고 있는 흉곽 심장 부분 가로막의 등 부분의 구조를 형상화했다. 그밖에 <다비드>의 대리석. 높이 4.1미터 피렌체미술관 소장..<피에타> 미켈란젤로가 망치로 훼손시킨 뒤 1555년 그의 조수였던 킬가니가 완성한 작품으로 피렌체의 성당에 소장 되어있다. 높이 2.26미터로, 니고데모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작품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전체적인 동력에 질서를 부여하는 인물이다. 슬픈 표정의 니고데모는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으로 알려져있다. "론다니니 피에타> 미완성 작 미켈란젤로의 숭고한 마지막 신념이 반영된 작품이다. 높이 1,95미터. 죽어가는 노예는 가슴과 왼쪽 팔 부위에 사슬이 감겨져 있다.  반항하는 노예는 손이 등 뒤로 묶여 있다. 1513년 두 작품은 율리우스 2세의 무덤 기둥에 안치될 의도로 제작되었으나,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진 조각품으로 인정 되어, 미켈란젤로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비평가 톨네이는 이 작품에 대해 '야만성의 상징과 인간 영혼의 희망 없는 투쟁이 신체의 구속과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나의 예술, 지난날에 그토록 높은 존경을 받았고, 커다란 명성과 인기를 가져다주었건만, 결국에는 나를 쇠약케 하고 말았다. 나이 들고 초라해진 지금의 모습, 다른 이의 노예가 되어가는구나"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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