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의 나른한 공기를 가르고 안폰의 멜로디가 울려댔다. 통화버튼을 누르니 부산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둘째 올케 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들려온다. 정년퇴직 후 조금의 여유를 부릴 즈음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인 암세포....반갑지 않은 불청객과 결사항전을 벌이며 여섯 번의 항암치료로 길항했고, 일 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좋아진편이다. 그러나 늘 긴장된 마음은 저변에 깔려있다. 암이라는 악성바이러스는 언제 어느시에 어떤 전략으로 십자포화를 쏘아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해서 늘 섭생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으신다는 둘째 오빠.....“이번 일요일날 놀러온나...” “언니, 무슨 날이야..?” “무슨 날은...일요일이라 놀러오라는거지...” 말끝을 흐리는 둘째 올케와의 통화에서 공연히 나쁜 생각들이 구근초처럼 딸려올라온다. ‘오빠가 또 아프신가?...’에서부터 별별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도 그럴것이 몇 십년동안 살아오면서 부러 전화까지해서 놀러오라는 언질을 농담처럼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이 일긴했지만, 일요일은 오후시간까지 일정이 잡혀있어 “월요일날 놀러갈게“ 라는 단음으로 통화를 끝냈지만, 자꾸만 뇌리를 스치는 여러 불길한 예감과 좋은 예감들이 교차를 하며 뇌리를 어지럽혔다. 월요일인 어제, 막내올케와 나는 소풍가는 아해마냥 들뜬 기분으로 둘째오빠네로 출발했다. 부산을 벗어난 차량은 신록이 우거진 4차선 도로로 진입하자 코끝을 간질이는 신록의 냄새들로 후각이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막내 올케도 신록예찬으로 탄성을 지른다. ”단풍드는 가을보다 지금의 녹색의 나무들이 더 좋더라구..가끔 아주 가끔이라도 자동차 매연냄새와 개발 공해로 환경오염에 찌들어있는 곳을 피해 야외로 나와 이렇게 나무 냄새 맡고 싶다. 우리 둘이서만 가끔 그럼 안될까..?“ 때묻지않는 순도 100%의 막내올케의 신록예찬을 듣고 있음 여성들의 다양한 사회활동과 신유목민의 현실과 19세기의 괴리됨이 느껴진다.
곳곳의 도시개발사업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13.2232m²의 작은 공간에서 갇혀지내다시피 하는 나로서는 세상의 빠른 변화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잡다한 생각으로 한 시간여 달리고난후 작은 도로와 농로를 따라 둘째 오빠가 가르켜주는 길로 접어들자 신록의 냄새는 더 가까이서 후각을 간지럽혔고, 울대는 탄성을 지르기에 여념이 없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걷고 있는 우리들 앞에서 승합차 한 대가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 역광의 태양빛을 손으로 차광막을 만들며 차량 유리창안을 유심히 살피니 둘째 오빠가 차량에 탑승하라며 시그널을 보내고있다. 비포장된 도로를 털털거리며 5분여를 달리니 두 마리의 진돗개와 백구 한 마리가 우리를 맞았다. 허둥거리는 발끝에 부딪치는 낡은 화면들과 평화로운 목가적 배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우리를 안내하는 둘째 올케를 따라 채마밭을 한 바퀴 돌아보니...많은 과실수로 밭이 영글어가고 있다. 낮은 키에도 불구하고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과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매실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려 있는 청매실, 사과나무에서도 검지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될 듯한 작은 열매를 달고 있었다. 복숭아, 자두...과실수 아래로는 여러 푸성귀들이 경쟁하듯 풍성함과 싱싱함으로 보답하고 있었다. 상추, 열무, 부추, 땅콩, 쑥갓, 겨울초, 둘레막 가장자리에는 산나물도 심겨져있다. 일손이 딸려 많은 야채들을 솎아낼 수 없다며 안타까워하는 둘째 올케를 따라 과도로 상추 뿌리 윗부분을 자르려니 패닉달팽이 몇 마리가 두 개의 더듬이를 뻗으며 나들이를 나왔다. 연체동물의 달팽이는 암수가 한 몸에 있어 자웅동체이다.
때죽나무 아래 평상위 상추와 여러야채를 곁들인 점심상 앞에서 식탐의 관성은 집요하게 유혹의 촉수를 날름거렸다. 직접 재배한 땅콩으로 장조림을 했다는 둘째 올케의 말에 장조림 그릇을 비웠던 혀 미각세포의 집요함.....점심상을 물리고 소화를 시키기위애 몸을 일으키려니 몸이 무겁다. ^^다시 채마밭 한바퀴 도는걸로 하루의 일정은 피날레를 장식했다. 다행스럽게 걱정했었던 일은 없었고, 막내 동생이 보고싶어서 전화를 했다는 둘째 언니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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