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부터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대의 예보에 따라 단단한 준비를 했다. 각자가 쓸 수 있는 우산도 따로 챙겼다. 두어 번의 등산에 호우를 만나 고생했던걸 생각하며 한 가지라도 빠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살피기까지하고 비닐파우치의 지퍼를 채웠다. 농익은 여름의 싱그런 아침공기가 후상피를 간지럽힌다. 언제나 그렇듯 3일간 황금연휴기간의 시내도로는 한산했다. 북적거리는 도심지를 피해 연휴를 즐기러 나간 차량들이 없어 엑셀레이터를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내니 평소에는 한 시간 거리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모임장소에 도착이 되었다. 여름이라곤하나 모닝커피로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가 좋다. 오감의 하나인 미각세포로 느껴지는 향긋하면서 달작지근한 커피는 언제 마셔도 깔끔함이 좋다. 커피 한잔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해결하니 버스안은 다 채워진 듯했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도심을 빠져나간 차량은 공기의 저항을 가르며 앞으로 질주를 했다. 많은 차량들이 우리차량 뒤로 밀려난다. 몇 번 기사님의 차를 이용했지만, 몇 십년의 운전경력이라서인지 노련한 사람답게 운전을 아주 잘하신다. 날씨도 아주 화창하다. 오후부터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대 예보가 틀렸나는 생각까지 들기도했고, 언제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소나기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 생각이 자웅을 겨루 듯 했다.
어느 저주지 둘레로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개집 같이 보였다.^^) 들이 병렬로 늘어서 있는 집안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재빠르게 지나간다. 작은 연못 수준인데, 거기서 고기가 얼마나 잡힐까는 생각이 들기도했고, 상업 수단으로 일환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저수지에 가두리양식처럼 물고기를 연못에 풀어놓고 낚시를 할 수 있게 해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신기한 모습에 고개를 돌려가면서 이미지들을 뒤쫓았다.^^
3시간여를 달리고 나니 35번 국도가 나온다. 유턴을 하고 이제 다왔나 싶었는데, 국도로 내려서도 한참을 더 달리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화창한 날씨에 비옷을 챙길까 말까를 고민하다 많은 무게를 차지않는다는 생각에 신들메를 고쳐신고 소백산을 향했다. 처음에는 선두팀에 합류했다. 출발은 좋았다. 같은 일행 중 한 분은 “오늘 부부가 선두 하실라봐요..? 가벼운 조크에 ”일등하면 선물도 주나요?“ ”그럼요.“ 농담을 하며 걷기를 몇 십분...중요한 순간은 놓치지않으려고 셔터를 눌러대는 남편이 시야에서 보이지않았다. 남편을 기다리며 뒤로 선두팀을 먼저 보내고 몇 십분을 걸었을까? 다리에 근력이 풀어지나 싶드니,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지난 밤 잠을 설친탓도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길을 재촉했지만, 나빠진 컨디션은 돌아오지 않았고, 앞으로 몇 시간을 컨디션 제로 상태에서 어떻게 걷겠나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다른 사람도 걷는데 나라고 왜 못 걸어’ 하는 오기도 생겼지만, 그 오기를 내려놓고 싶을만큼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었다. 쉬었다 천천히 가자는 남편의 위로에 작은 바위에 앉아 쉬기를 몇 번 그래도 나빠진 컨디션은 돌아오지않았다.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과 아침부터 뭘 먹지않아 배가 고파서 그러나는 그러나 싶은 생각에 디저트로 먹을 참외 몇 조각을 먹었다. 그러니 조금 나은 듯했다. 다시 길을 재촉했는데, 몇 발자국 떼지않아 다시 다리에 근력이 힘이 없어진다. 땀을 많이 흘릴때는 등산복을 입고 있음 땀 배출이 안 되어 그럴 수도 있으니 등산복 자켓을 벗어보라는 남편의 어드바이스에 그렇게해보니 한결 나았다. 앞서간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했다.
앞서간 일행들은 등로를 비켜 점심을 먹고 있다 남편을 불렀다. 일행과 합류하며 점심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나니 그제서야 살 것 같았다. 아직 하늘은 맑다. 아무래도 일기예보가 계산값을 잘 못한 오류인 듯했다. 시야가 확 트인 비로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연상시켰다. 벨트를 씨줄 날줄로 엮어진 계단을 오를 때 불어오는 계절풍은 가슴까지 시원하게 했다. 비로봉에서 몇 컷의 사진을 찍고 국망봉을 향했다. 국망봉은 저만치 두고 길을 재촉하는데 천둥치는 소리가 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서커먼 먹구름이 정수리 위 하늘을 덮고 있다. 뒤이어 작은 빗줄기가 투투툭 떨어진다. 빗줄기가 가늘어 이러다 말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빗줄기가 굵어졌다. 배낭에 넣어둔 레인코트를 꺼내 입었다. 다시 천둥치는 소리가 온 산을 뒤흔드는가 싶드니 소나기가 쏟아졌다. 국망봉이 바로 앞에서 손짓을 하는듯했다. 힘들게 올라올 때는 국망봉에 들러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국망봉을 보지않고 그냥 내려갈 수 없다는 남편을 뒤따랐다.
계속 온산을 울려대는 천둥소리에 금속제가 들어있는 스틱이 부담스러웠다. 배낭에 넣으라는 나의 제안에 뽀족한 스틱 끝이 피뢰침 역할을 해 배낭에 넣으면 번개의 음파로 감전이 더 잘된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산길은 경사가 아주 심했다. 비가 쏟아지니 등로는 반들반들해져있어, 아킬레스건에 힘을 많이 줘야한다. 반들해진 등로보다 풀이 있는 곳으로 걸으면 되겠지만, 그것도 여의치않다. 소나기가 내리는 와중에 하산하는 길은 더 멀게만 느껴진다. 남아있는 거리가 3.4km라는 거리 표지판이 보인다. 더 이상 천둥소리가 들리지않는것 같드니 비가 그친 듯하다. 잠시동안 내린 비의 양이지만, 비가 오고 난 후 물이 불어나서인지,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린다.
아스콘 포장길을 따라 한 시간 여를 걸어오자 저만치서 파란색을 도색한 차량 외피가 시야에 들어왔고, 천막천으로 자리를 만들어 그 위에서 많은 일행들이 간단한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와서 술한잔 하라는 일행옆으로 다가가니 앞서 온 후미대장님이 “아세요? 비로봉 옆에서 낙뢰를 맞았다는 사실을요..?” 정말 같이 산행을 한 곳에서 그런 끔직한 일이 있었나는 생각에 소름이 오싹했다. 작년 북한산에서도 낙뢰로 몇 사람이 사망했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기억을 헤집는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켜니 지인이 안부를 궁금해한다. 부산 사람이 낙뢰를 맞았다는 사실과 비슷한 연배에 걱정을 했다는 말에 코끝이 시큰거린다. 온라인을 통해서도 이런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다니...악천후 속에서도 무사히 소백산을 다녀왔음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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