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잃어버린 20년

정순이 2008. 5. 11. 11:26

 

낯익은 사람이 배낭을 매고 헉헉거리며 마주오고 있는게 시야로 들어왔다. 반색을  했다. “이제 산에도 다니시네요.너무 보기 좋아요.” “산에 다닌지 꽤 된걸요.” “그랬었군요. 산에 다니시면 얼마나 좋아요. ” 서로 등을 보이며 각자의 갈길로 갔었지만, 무엇보다 Y의 산행이 반가웠던건 20년 이라는 긴 세월동안 술에 절여 살아오다 다른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Y..... 

 마스트플랜도 없이 살아가던 Y는 아무리 자로 재고 무게를 달아봐도 딱히 할 게 없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공부해라!는 부모님의 말씀들이 마음에 와 닿지않을만큼 젊음의 치기가 노도했다. 마음맞는 친구들과 돌아다니면서 고스톱으로, 도박으로 세월을 낭비하다가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야 벼리진 칼이 마음을 도려내는듯 아려왔다. 그렇지만 이미 활시위를 떠나버린 화살이였고, 루비콘강을 건너버린뒤였다.

 

 결혼적령기가 되었으니 뭐라도 하긴 해야겠는데, 딱히 할 게 없다.  생각해둔 계획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익혀둔 기술도 없다. 큰 형님과 같은 업종을 한다면 땅 짚고 헤엄치기, 따놓은 당상이라고할만큼 성공은 보장되어있을꺼라는게 매력적이긴 하지만, 손에 피를 묻혀야한다는 더어티함이 뒷덜미를 잡고 놔주지않았다. 형님이 불모지를 개척해 성공한 터이고, 자신은 형님의 멘토라도 받으면 실패의 두려움은 없다.

 

 또다른 이유로는 큰형님은 입지전적 성공을 했던터라 성공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작용했다. 자천타천으로 형님가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게 셔터를 여는 것에서부터 난이도 높은 발골 기술까지 숙련도를 높여나갔다. 지금이야 넘쳐나는 정보로 편법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 때만해도 수입쇠고기에 대해선 정보는 사각지대라할 정도로 소비자들은 정보에 어두웠다. 고객에게 한우고기를 주면 질기다고 가게 이미지가 흐려질정도였고, 수입쇠고기를 주면 연하다며 더 좋아 할 정도로 소비자들은 고기 육질이나 퀼리티에서는 청맹과니였다. 

 

 형님가게에서 기술과 상술을 배운 Y는 가게를 얻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주변에서 소개한 참한 색시도 얻었다. 결혼과함께 시작한 가게는 욱일승천했다. Y의 아내는 태생적 친화력과 타고난 상술로 많은고객을 확보했다. 그런 몇 년 후 바로 마주보는 대척점에 같은 업종의 가게가  들어섰다. Y의 가게보다 훨씬 큰 규모와 실내가 아주 깨끗했다.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자신이 두텁게 닦아놓은 인맥을 의심하진 않았다. Y의 생각대로 연고가 없던 그 가게는 날마다 파리가 날리다시피 손님이 없었지만,  Y의 가게에는 고객들로 잦은 발걸음으로 언제나 웃음소리가 밖으로 번져나오곤했다.

 

 유동인구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가게를 개설했지만, 뜻데로 되지않아 고심하던 맞은편 가게 쥔장은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른 책략을 세웠다. 그 첫 번째가 이웃과 친하게 지내 내 사람으로 만들기.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철저히 인사하기 작은 양의 고객이라도 많은 양을 구입할 때가 있다는 생각에 친절하게 대하기. 한 사람이라도 소홀하지않기 그 사람이 소개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정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전략을 세웠으니 이젠 실천에 옮겨야 할 차례다. 

 

 가게 문을 열기 바쁘게 묵직하고 굵은 테너 목소리로 이웃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하며 친근함을 표시했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90도 각도로 고개숙이고 인사를 하곤했다. 마주보는 가게에서 쥔장이 고객에게 그렇게 신경을 쓰니 Y의 가게도 여간 신경이 쓰이지않았다. 고객들의 마음이 변하지않게 하기 위해서는 더 피나는 노력과 서비스를 해야만했다. 신경전이 연일 지속되었다. 맞은편 가게는 그런 수고로움과 능청스러움에도 고객은 늘지않아보였다.  타동네에서 이사온지 얼마되지않아 인맥이 얕은 탓임을 절감하며 폐업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했다.

 

  Y의 가게는  매출실적이 날마다 고공행진의 연속이였다.  주머니에 많은 돈이 들어왔다. 돈을 셀 시간이 없을정도였다. 가게도 안정권에 들었고, 일하는 종업원까지 뒀으니 자신이 없어도 가게 운영에는 어려움이 없을 듯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Y는 예전에 잠시 발을 들여놓았던 도박의 그림자가 눈에 아른거려왔고, 예전의 손실도 만회도 하고 싶었다. 자꾸만 그날의 짙은 음영이 Y를 유혹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발을 들여놓은 Y는 세월과 돈을 탕진하는데 몇 년의 세월을 허비했다. 어떤 아내라해도 남편의 계속되는 도박을 받아들이긴 힘들 것이다. 날마다 많은 매출로 통장잔고가 늘어났지만, 남편이 도박으로 탕진하기위해서 가져가는 돈은 며칠 매출보다 더 많을때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의 행동이 맘에 들지않았던 아내는 심통이 났다. 어떻게하면 남편이 예전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고육지책도 써보았지만, 한 번 도박에 발을 들여놓은 남편은 헤어나지 못했다. 처음에는 원망스러운 마음이드니 未久에는 남편에게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Y의 아내...

 

 도박에 빠져있던 어느날 아내가 외도를 한다는말이 Y의 귀에 들려왔다. 도박으로 세월을 탕진하던 Y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내의 성격을 미루어보건데 외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도리질을 해도 자꾸만 소문의 진실을 밝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Y....미행을 해보기로 했다. 친구 몇을 불렀다. 자신의 사정이야기를 하고 아내의 뒤를 밟았다. 모임에 간다고 가게를 나선 아내뒤를 Y의 친구들이 따랐다. 택시를 잡아탄 Y의 아내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골목길로 접어든 앞차를 바짝 뒤쫓던 Y 친구들의 동공이 커졌다. 최소한 모임장소는 아니다라는 공감현상이 생겼다. 멀찌기서 택시에서 내린 Y의 친구들은 Y 아내의 동태를 유심히 살폈다.

 

 Y의 아내는 허름한 대문앞에서 인기척을 하자 격자무늬 창을 한 방문을 열리드니 트레이닝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Y의 아내를 반갑게 맞이하는게 앵글에 잡힌다. 거기서  발길을 돌렸다. 더 이상 보지않아도 밑그림은 그려진 셈이다.

 

 Y 친구들은 번민했다. 친구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지않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마냥 숨길 수만도 없었다. 사실데로 이야기를 한다면 분명 가정이 파투(破鬪)가 날 것이 자명하고, 또 이야기하지않고 숨긴다고해도 멀지않아 들통이 날 것임을 모르지않기 때문이다. 초조하게 친구들을 기다리던 Y는 돌아올 시간이 됐음에도 나타나지 않아 소문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Y의 목을 조르는 듯했다. 불온 문서를 뒤적이는 스파이처럼 마음이 안정되지않았던 Y는 가게안을 왔다갔다했다. 신혼시절의 행복했던 편린들이 자꾸만 Y의 뇌리를 어지렵혔다. 그 모든게 깨어질 수 도 있다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했다.

 

 안정되지않은 마음을 가다듬고 수화기를 들었다놨다를 반복했다. 차라리 모르는체 그냥 넘어갈까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친구의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전류처럼 임파선을 타고 전달되어왔다. 머뭇거리는 것 같던 친구는 사실데로 이야기 한다. 고압선에 감전된 듯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평정심을 잃었다. 와장창......아들은 아내가 양육하기로하고, 딸은 자신이 키운다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헤어진 후 Y는 세월이 흐르면서 인생 낙오자로 변했다. 매일 술을 마시지않으면 안 될정도였다. 아내는 결혼해 가정을 이뤘지만, 나이많고 가진 재산 없는 Y에게 아무도 시집 올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20여년....알콜 중독자로 변신한 Y는 틱장애가 생겼다. 혀를 길게 빼물고 커다랗게 입을 벌리는 모습을 보는 많은 사람들은 Y의 행동에 안쓰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러니 있을 때 잘하지' 하며 고소해하는 마음도 내재해 Y를 피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태생적 깔끔함이 있어, 포마드 바른 머리처럼 빗어넘긴 머리하며 주차된 차량 도어 미러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대고 머리를 손보는 적이 곧잘 눈에 뜨이곤했다. 엄마 없는 결손가정이 됐지만, 마음의 동요없이 Y의 딸은 아주 착하게 잘 자랐다는 소문도 풍문으로 들려왔다.

 

 어느날 뒷산에 갔다 내려오는길에 미끄러지는 일이 생겼다. 한 쪽 바지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달리 닦을 생각도 없이 내려오는 데 방금 비켜가던 Y가 "아주머니, 바지에 흙 묻었어요."Y의  선한 관심을 외면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 보름여전 늘 술에 절여있던 Y는 말짱한 정신으로 가게에 들어섰고, 손에는 올망졸방 비닐이 들려있고, 고기를 주문했다. 달라진 Y의 모습에 반색을 했다. "아저씨, 반찬 만드시게요?" "네.." "아저씨 술 안드시는 모습 보니 너무 좋아요." "술을 마실때는 마셔도 마시지 않을려고하면 몇 달도 마시지 않는걸요." "그래요? 그렇다면 의지력은 있으신거네요. 아저씨 건강을 생각해서 이제 술 드시지마세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뒤를 보이는 Y...이제 산에도 다니는 걸 보면,  기실 Y도 마음을 달리 먹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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