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 날 그러니까 을유년 새해 새아침.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일찍 서둘렀다. 차를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밀려들었고, 신년을 맞아 강원도를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떡국을 끓여 대접하는 곳에는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해뜰 시각을 기다리자면 한참이나 남았고, 추운 몸을 녹이기에는 뜨거운 국물이 최고라는 생각에 나도 그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뜨거운 국물과 가래떡의 쫄깃함이 아주 맛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방파제 끝을 향해 가보기도 했고, 시린발을 달래기 위해 북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보기도 했다.
돗자리를 깔아놓고 대학생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의 손은 북채를 잡고 있어서인지 얼은 듯 발개져 보였고, 조금 전 시린발을 달래기 위해서 눈을 쓸어내고 제자리 뛰기를 했던 나 자신이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먼 수평선 너머 산위에 가느다랗게 붉은 불이 띠를 형성하드니 띠층이 두꺼워져갔다. 그렇게 얼마나의 시간이 흘렀을까 붉은 띠는 불이 난 듯 주변을 물들이드니 탐스런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산모가 아이를 순산하기 전의 느낌같았다.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그렇게 2005년도의 태양은 떠올랐다.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등 뒤에서도 함성소리와 동시에 양쪽에 문설주의 기둥을 만들고 그 위로 아치형으로 풍선을 망안에 넣어둔게 보였다. 빨간색, 오렌지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의 오색풍선들이 망속에 들어있었고, 양쪽을 묶은 망 끈을 놓자 망속을 벗어난 풍선이 하늘로 올라갔고, 또다시 함성소리는 절정을 이루었다.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해를 향해 기도를 드렸다.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버스는 우리일행을 태우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다.
도착한 곳은 강원도 '설악산국립공원'. 높은 고도의 날씨를 생각해 귀까지 덮을 수 있는 두툼한 모자를 구입해 단단한 차비를 하고 케이블카를 탔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를 엉금엉금 기어서 정상까지 오르자 온몸이 마비가 올것같이 굳어있었다. 그렇지만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울산바위며 흔들바위가 발치아래서 한폭의 정물화처럼 캔버스에 그려져 있는 듯했다.
다시 우리일행을 태우고 도착한 곳은 이기붕 전부통령의 별장 이었다. 그곳은 이기붕 氏의 아내인 박마리아 여사가 더 많이 사용하던 곳이었고, 대자보에는 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슬하에 자식이 없는 이승만 전대통령께 큰 아들을 양자로 주었던 이강석과 가족사진옆으로 그들의 운구행렬에 마음이 알싸해 왔다. 정치가 대저 그렇듯이 정권을 잡았을때는 화려했던 생활들이 국민들이 등을 돌리면 그 공황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권총으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새삼 권력의 속성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옆으로 발길을 돌려 도착한 곳은 김일성별장이었다.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 개방을 시켜놓지 않았지만, 이기붕씨의 별장과는 달리 외벽이 깔끔했고, 더 화려해 보였다. 다음 행선지는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별장을 둘러보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제일 검약한 생활을 한 듯 보였다. 물론 시대상황을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승만 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오르기 전의 모습은 아주 현대적이였기 때문이다.늦은 나이(69세)에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 슬하에 자녀가 없어 이기붕씨의 장남을 양자로 들이게 되었지만, 이기붕씨 가족의 자살로 흐지부지 되고말았다. 해가 떨어지자 숙소로 돌아와 일찌감치 저녁을 먹었다. 시골생활이 대저 그렇겠지만, 일찍 저녁을 먹은 우리부부는 소화시킬 공간이 없다는 걸 아쉬워하며 TV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따르릉~’ 무료한 시간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폴드안을 들여다보니 반가운 이름이었다. 것만해도 작년이다. 아들 면회로 서울에 들렀을 때 우리부부에게 아주 극진히 대해줬던 분이시다. 강원도로 오면서 버스속에서 두 번이나 전화를 걸때 받지 않드니 남겨진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00님,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모르죠~?” “여기가 강원도예요.” “그래요? 강원도에는 어쩐일이세요~?” “남편하고 휴가를 온거죠~” “그래요? 언제 도착한거에요?” “어제요” “그럼 00님은 만나본거예요?” “아뇨. 공연히 피해갈 것 같아서 연락하지 않았는걸요.” “그래도 그렇지 강원도까지 갔는데 연락이나 한번하지 그랬어요? 나도 다다음주에는 아마 부산에 내려갈 것 같은데...”
“그래요? 무슨일루요? 부산오면 연락해요. 밥이나 한끼 하게요.” “그럴께요, 일본에 여행가게 되었는데 부산친구들이 표를 예매해두었나봐요. 그래서 부산에 갔다가 일본으로 갈 계획이예요.” “좋으시겠어요. 그럼 그때 만나기로 하고 전화끊을께요.” 휴대폰 폴드를 닫았다. 설악산에 내려올 때만 해도 강원도에 살고 있는 통신친구에게 연락하지 않을꺼라고 먹었던 마음이 방금 그분과 통화를 하고나니 마음이 심란스러웠다. 강원도에 살고 있는 분과는 일전에 부산에서도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조금 전 통화한 분께 다시 전화를 걸었고, 그분 전화번호를 물었다. 만나든 만나지 않든 통화나 한번 해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내생각과는 달리 그분은 우리부부가 묵고 있는 숙소로 데리러온다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강원도까지 왔다면서 만나지 않고 돌아가는게 어딨나” 옆에서 남편은 손사래를 쳤다. 가지말자는 시그널이었다. “남편이 옆에서 손사래 치는걸요. 그러니 남편의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하겠다니 남편을 바꿔달란다. 남편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거절을 했다.(면도를 하지 않았다는 둥) 다시 내가 휴대폰을 넘겨받았고, 숙소가 있는 동네지명을 말하자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숙소가 있네요. 남편더러 데리러 가라고 할께요.“ 금새라도 데리러 올 듯 옆에 계시는 남편에게 물어보는 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어디인지 정확하게 몰라 망설이고 있자,택시를 타고 ‘올림픽 상징탑’ 이 있는 곳에 내리면 된다며 우리가 내려야 할 위치를 말해준다. 옆에 있는 남편도 안되겠든지
”그럼 잠시 갔다올까? 공연히 남의 집에 가서 피해만 주는 거 아닌지 몰라“ 그제서야 바빠졌다. 남편도 아는 분이라 부담이 적었고, 카운트로 내려간 우리부부는 낯선곳에서의 외출에 대비하기 위해 돌아올 때 택시기사에게 위치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꼼꼼히 메모를 한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분이 있다는 곳으로 가기위해.... 그분은 인터넷통신을 통해서 알게 된 분이지만, 평소 아주 검약한 생활덕택으로 성공한 듯 느껴졌다. ‘올림픽상징탑’ 옆 자리좋은 몫에 1층,2층에는 세입자를 들여놓고, 자신은 3층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게 임대소득만 해도 꽤 짭짤할 듯 보였다. 사업성공과 더불어 자신의 생각을 모아 책을 내기도 했으니 그만하면 부러울게 없으리라. 가게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그분의 남편인 듯한 분은 우리부부를 반겼고, 그분의 아내는 “잘 왔다” 며 손을 마주잡는다. 3~4 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뒤로하고 헤어져야 할 시간 이었고, 그냥 보내기 아쉽다는 말과함께 그분의 시가 실린 책을 내손에 건넨다. 그분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문을 나섰다. 우리부부를 따라 나온 그분의 남편은 기어이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까지 바래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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