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삶의 거울에 비친 내 속엔 내가 없다

정순이 2005. 1. 7. 00:54
 

오늘따라 이상했다. 가끔 안부를 물어오는 지인들과 공연히 전화통화를 하고 싶어졌다. 몇시간 전부터 무료한것도 한 이유지만, 잉여시간일때는 발걸음하던곳도 대대적인 개편으로 인해 시들해진것도 두 번 째 이유인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재밖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꺼진 듯 보이는 재속에 항상 대립의 불씨가 잉걸불처럼 채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체.... 

 

“여보세요.” 전화를 걸고보니 Y의 남편이 받았다. 같은 대화석상에서는 곧잘 Y의 남편과 농담도 주고받곤 하지만, 어쩐지 Y와 통화를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는 Y의 남편이 받으면 목소리가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친구 있어요?” “혹시 거기 가 있는거 아니에요?” 다급한 듯 숨가쁘게 물어오는 Y의 남편말에 Y의 집에 무슨일이 있음을 짐작했다. 숫자 낮은 두뇌는 급격하게 회전하며 될 수 있으면 Y의 입장을 고려해서 말을 해야겠는데 자꾸만 말문이 막혀왔다. ‘이럴 때 무슨말을 해야 Y가 곤경에 덜 처할까?’ 라는 생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고, 이른 시각에 어디를 갔을까 라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시침이 10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Y의 남편의 말에는 지금 Y의 남편옆에는 Y가 없다는 말이었음을 방증한다. 그 시간에 Y가 나갈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기보다는 행방이 묘연함에 공연히 Y를 원망했다. ‘이시간에 도대체 어디간거야?’ Y의 남편은 재차 물었다.


“어제는 거기 가지 않았어요?” Y의 집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긴 오지 않았어요. 어제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하루종일 무거운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늦은 오후 조용하던 실내공기를 가르고 전화벨이 울렸다. 이시간에 전화올데가 없음을 상기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수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여보세요.” “나야...” 아슴프레하게 들려왔지만 작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히 Y의 목소리였다. “누구?” ‘나야’ 상대목소리의 주인공을 정확하게 꿰뚫지 못했던 내가 재차 물었다. “며칠 통화하지 않았다고, 인제 내목소리도 잊어버린거야?” “잊어버린게 아니라,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알아듣지 못했어. 미안해...지금 어디서 전화하는데? 혹, 집에 무슨일이 있는거야?” 말이 없다. 아주 오랫동안 뜸을 들이드니 Y는 말문을 연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이 일어나게 되었고, 남편에게 구타당한 Y는 집을 나온지 5일째 된다고 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집에 와라. 집에와서 나하고 이야기나 하자”


“아냐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아. 혼자 있는게 마음이 더 편하거든. 너희집에 간다면 네 남편 눈치도 봐야할테구. 뭐하러 부담주는 일을 해?” 거듭되는 나의 요구에 Y는 전화를 끊고 만다. 잠시 비어있는 큰동서집에 있다는 전갈이었다.

이전에도 몇 번 Y의 남편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않으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마다 Y는 울부짖곤했다. “내가 결혼해 여태 살아나오면서 흔히 남들이 하는 것 처럼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나,그렇다고 허투루 돈을 쓰기를 하나, 정말 내 나름데로는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그렇게 보이지 않나봐. 정말 집에 들어가기 싫어. 심한 싸움을 했을 때 더 큰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잠시 피하기 위해 집을 나오곤 했지만 집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그런생각이 드는거 있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을때가 있어. 왜 이렇게 살아가야하는지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여 미칠 것만 같았어. 다시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꺼라고 누차 나 자신에게 다짐을 했었지만, 번번히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그러나 이번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꺼야. ” “어떻게 할려구? ”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헤어지라고 하고싶었다. 그러나 Y가 지금보다도 더 후회스런 삶을 살까봐 헤어지는 것만은 다시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Y 를 다독였다. “우리가 자식을 낳은 이상 자식을 책임져야하지 않겠어?” “인제 다 컷는걸...” “다 컷다고 생각해? 아직 결혼도 해야하는데. 그럼 결혼예식장에 아이들만 들여보낼꺼야?”

 

외피로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Y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폭력에는 어떤 변명도 용서되지 않는 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이기도 하기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TV에서 현대그룹 정모 씨가 투신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전혀 부러울 것 없이 살은 사람이 어떻게 자살 할 생각을 다 했을까? 그런사람도 자살하는데 내 삶은 그사람에 비하면 더 삭막하게 살았는데 못 죽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라는 생각으로 옥상에 올라갔지 뭐야. 그런데 조용히 눈을 감고 다시 생각을 해보니 그것도 쉽지 않더라. 남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생각에 미치는거 있지? 부모중 한사람이 자살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그렇잖아. 기업오너가 자살한거하고는 뉘앙스가 다르지 않겠어. 그런저런 생각이 들자 그것마저 쉽진 않더군. 그래도 자살했다는 말을 듣기보다는 집을 나갔다는 소문이 더 자식들한테 유리하다는 생각이 드는거 있지. 참 우습지않어?”

 

“니가 집을 떠나 다른데 간다고 니마음이 편하진 않을꺼야. 오히려 지금보다 더 힘들지 몰라. 자식이 다 컷다고 걱정안될 것 같으니? 니만큼 자식욕심이 강했던 사람이 쉽게 잊고 살 것 같아? 그래도 남편하고 다툴때도 있긴 하지만, 남편하고 잘지내는 시간이 더 많지 않어? 만약에 니가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사회생활을 해봐. 사람들이 이혼한 여자라는 시선으로 보게 되지. 그 시선이 얼마나 따가운지 넌 모를꺼야. 언젠가 기억나지 않는데 우리가게에 오시는 손님 중 한분이 그러시더라. 남편이 너무 속을 썩여 빨리 안죽나 빨리 안죽나 했드니 정말 덜컥 죽어버렸지 뭐야. 막상 남편이 죽고 나니 혼자있다는 외로움이 어떤지 실감이 가더라’ 하더라구. 지금은 못 느끼겠지만 배우자의 위치가 어떤지 다시 한번 더 생각해바... ” 나 역시 Y를 그렇게 설득했지만, 나 역시 아니 모든 아내들이 그런위치에 서게 된다면 Y처럼 행동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심각함을 느껴야하지 않을까. 결혼의 굴레로,자식을 낳았다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자신의 핍박의 삶이 큰 형벌임에 다름아니라는 Y의 항변이 아직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헤어졌다. Y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Y에게 전화를 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혼자서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꺼라는 생각이 더 큰무게를 차지했다.그런 오늘 늦은 오후 Y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은 여유있는 목소리였고, 간간히 가벼운 웃음섞인 말도 해, 잘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느닷없이 Y친구의 딸이 가게에 들린 시간은 밤이 이슥할 무렵이다. “엄마가 어디 멀리 떠난다며 전화가 왔어요” 잘 해결될 것 같았고, 남들이 보는 낮 시간을  피해 어스름 해거름이 지는 밤에는 집에 들어갈 것 같았던 나의 생각은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고,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이 머리가 멍해져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난 뒤에야 다급 해진 듯 한 Y의 남편는 딸아이를 보내 SOS를 타전한 모양이었다. Y의 딸아이는 좀 도와달라는 듯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각한 오류에 빨간불이 켜졌어도 오류라고 지적하지 못하고 판단의 아노미를 일으키고 만다.  남편은 아내의 가출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고, Y는 남편의 폭력을 이해하길 거부했다. 해서 Y는

가출할 수 밖에 없었음에 자기합리화를 당연시했다.

 

내 삶의 주체가 나 라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나 아닌사람의 지시에 의해서 살아야하고,나를 통제하고 억압하고 내 삶의 주인처럼 되어지고 말때 심각한 오류가 뜨게된다. 돌아가는 벨트에서 자신의 일을 놓치면 기계가 멈춰 서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 치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남편들의 닫힌 의식속에서 Y는 날마다 신음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나는 Y와 통화하기 위해 수없이 폴드를 열고 번호를 타이핑했지만 몇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Y의 휴대폰은 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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