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요일날 어디 갈 계획 있어요?”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지인과는 몇 번 등산을 같이 갔다온 적이 있다. 자주 등산을 못하는탓에 그들 부부내외와 같이 등산을 가는 기회가 많이 없었긴했지만, 속 깊은 그들 부부와 같이 다니다보면 상대를 참 편안하게 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왜요? 어디 좋은 곳이 추천되어있던가요?” “00산악회에서 <속리산>으로 간다네요. 간다면 우리 와이프도 같이 갈려구요.” “난 다음주 일요일에 밀양 배냇골에 갈려고 생각했었는데...”
한달에 한 번꼴로 가게문을 열지 않는다는 걸로 인식이 되어진 지인이라서인지 계획을 수정했음 하는 눈치다. 이튿날 퇴근해 집에 있는데 가게있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속리산에 가자고 한 지인이 재차 가지 않을꺼냐고 물었다는 사실과, 신청한 사람이 많으니 빠른 시간안에 결정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엄포성 뉘앙스도 깔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느긋했다. 못가면 배냇골에 가면 될터이기 때문이다. 어짜피 한 달에 한 번 정도 등산을 갈 양이면 내가 가보고 싶은 산으로 가는게 낫지 않겠는가.
배냇골, 몇 년 전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몇 장의 낡은 사진의 기억이 오랫동안 잊지않고 남아있다. 몇 미터나 되는지 모를 쭉쭉 뻗은 교목들하며, 그 아래로 갈색 낙엽들이 벨벳처럼 푹신하고 수북하게 쌓여져 있었다. 낡은 사진속 그 기억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인생관. 가치관이 다르듯이 난 힘들게 산을 오르기보다 빠르게 전개되는 차창밖의 풍경들을 즐기는 드라이브가 낫다. 계절의 변화를 제일 빠르게 받아들이고 노출시키며 광합성을 하는 자연의 순수함에 합류하고 싶다. 그러니 지인이 시간이 촉박하다며 빨리 결정내리길 요구했었지만, 차라리 인원수가 다 차서 가지 못하길 은근히 바래기까지했다.
남편도 속리산의 좋은점을 말하며 은근한 압력성 말을 해왔다. 갈등이 생겼다.다음주 일요일날 다른 산악회에서 배냇골이 추천되어있기에 친구와 같이 가자는 말도 했었는데...어떡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각도로 물었다. “이번주 일요일날 속리산에 가자고 하는데 어떡할지 고민이다. 갔다올까?” 한달에 한 번밖에 쉬지 않는 나로써는 그 말속에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킬수 없음의 미안함을 친구에게 대답을 요구함으로써 조금은 상쇄되지 않을까는 생각에서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친구는 시원하게 대답했다.
“갔다온나” 라구....이제 속리산에 간다는 신청만하면 될터이다. 금요일 늦게서야 신청을 했다. 많은 사람들의 신청으로 두 대에의 출발차량에도 빈자리가 없이 만원이었다. 출발지에 도착하니 낯 익은 사람들이 꽤 보였다. 같이 눈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TV 수상기에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교육에 관해 토론을 벌리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지방방송에서 두명씩 나와 벌이는 토론은 그 재미없음이 채널을 돌리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기사님 역시 같은 생각이였는지 채널을 돌리는듯 여러화면이 바뀌었다. 몇 개의 채널을 돌리다 멈추는듯했다고, 화면속에서는 어느 가수 부녀가 출연한 <체험, 삶의 현장>이 방송 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TV를 보지않아 가끔TV를 켜면 낯설기까지 하드니 그 프로그램을 방송하는걸 보니 반가운 마음이기까지했다. 직업의 귀하고 천함이 없이 삶의 현장에서 일을 하고난 후 받은 대가로 유니콘같이 생긴 흰말등에 올라타고 위로 올라가자 하트문양을 한 함으로 집어 넣었다. 꽤 많은 돈이 저축되어있었다.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다. 터널에 들어설 때마다 전파방해를 받아 흐름이 끊기곤해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갈색빛 화면에 '신호가 미약해, 수신 할 수 없음'이라는 글이 뜨곤했다. <체험, 삶의 현장> 프로그램이 끝나자 <21세기 젊은이의 프로젝트 퀴즈 대한민국> 이라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사람을 보니 낯이 익다. 몇 년 전에는 얼굴이 갸름했었는데, 얼굴에 제법 살이 붙어있다. 몇년전에 봤을 때는 다른 방송 지행자였고, 방영시간도 오후로 기억하고 있는데, 오전으로 시간대가 바뀐것이다. 운행방식도 조금 달랐다.
몇 몇 사람이 나와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이였는데, 그때만해도 퀴즈에 관심이 많아 빠뜨리지 않고 시청을 했었다. 첫번째로 나온 출연자는 홈쇼핑 전문 게스트로 여성이다. 첫 문제로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 춘향이의 어머니를 맞추는 문제는 아주 쉽게 월매라는 답이 나왔다. 다시 두 번째 문제 황조는 꾀꼬리 백조는? 에서 답을 맞추지 못했고, 답은 <고니> 이재수의 난 조선 만적의 난은 고려.....세번째 문제는 맞춰서 40점을 획득했다.
두 번째 출연자....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아주 쉬운 문제부터 출제되었고 한 사람씩 떨어지는 리그전이었다. 괭이 갈매기는 이 동물과 울음소리가 비슷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동물의 이름은? 에서 출연한 사람이 답을 못 맞추고 시간을 끌자, 옆에 앉았던 남편이 <고양이> 라며 답답한듯 대답했고, 다음사람이 답을 맞췄다. 전입신고는 1주일 출생신고는 한 달...문제지문이 베아트리체가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기억이 가물거려 머뭇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단테> 라고 한다. 모르는 문제가 출제되자 재미가 없다. TV를 외면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골의 정취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토지구획정리가 잘 된 논에는 벼들이 알차게 열매맺기에 풀무질을 멈추지 않은 듯했고, 그 논들 사이에 낮은 둔덕위로 자전거의 패달을 밟고 있는 젊은 청년이 보인다. 그 풍경을 액자속으로 넣는다면 영락없는 한폭의 멋진 수채화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돌리니 진행자의 낮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소득세를 낼까요? 내지 않을까요?"에선 다들 쉽다는 생각에 일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고 대답이 나왔다.
바자회에서 바자는 어떤 말에서 유래를 했을까? 1번 왕이름 2번 시장에서 시장이 답이었다. 온천에서 살 수 있는 물고기는 ‘닥터피쉬’ 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만으로 이루어진 잡지는 ‘만화행진’ 이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과일 이름은? 출연자들 모두가 맞추지 못했고, 용과 였다. 영어로는 피타야(Pitaya)라고 한다. 흔한 여름철새이고, <오빠생각> 이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이 새 이름은?에서 ‘뜸부기’ 라는 대답이 나왔다. 왕복 6차선 도로라 차량이 움직이는 소음으로 사회자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어 자막을 이용해 문제풀이에 동참했지만, 내가 답을 맞춘 건 몇 개 되지 않았지만, 남편은 곧잘 맞추곤했다.
“우리나라에서 정상회의를 모두 고르시오.“에서 APEC . ASEM 이라는 답을 맞춘 사람은 30대의 변호사였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변호사였고, 몇 천의 돈이 걸려있는 문제에서 장벽을 넘지못하고 탈락했다. 거의 3시간 30분동안 차량을 타고 나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승강구를 내려서면서 몇 시간동안 산을 타야한다는 생각을 하니 현기증이 난다.무더운 햇살을 손차양으로 가리며 차량에서 내렸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 사이를 들어서니 덥긴하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나무 바람에 땀을 식히며 오르기를 반복했다. S자 코스로 길게 이어지는 등산코스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했지만, 전망이 좋은 곳에 이르러서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1시간 40분 동안 오르자 멀지 않은 곳에 문장대가 보인다. '다왔구나' 는 안도감도 잠시 빗줄기가 후둑거렸고, 고개를 들어 앞산을 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산을 덮고 있다.
비가 올것이라는 예보에 우의와 우산을 챙겨오긴했지만, 두려움이 밀려왔다. 혹시 산속에 고립되는건 아닌가 싶어서....아니나 다를까 점심을 거의 다 먹어갈때 빗줄기가 굵어졌다. 펼쳐놓은 음식그릇들을 베낭에 거의 다 담았을때는 소나기로 변했다. 열대성 소나기다. 우의를 준비한 사람들은 우의를 꺼내입었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사람들은 가까운 휴게소에서 우의를 구입해 입었다. 그리고 대피를 했다. 처마끝으로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를 보며 앞을 보니 시계가 제로다.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있는데 전기마저 끊기는 것이 아닌가. 아찔하다. 그런 와중에 용감한 어떤 분이 앞에 나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면 안 될거 같아요. 천황봉에 오를 사람들은 오르고, 그러지 않을 사람들은 하산을 하든지 해야 할 거 같아요." 그러면서 회장님을 찾았다. 회장님이 앞에 나섰고, 두 조로 나누자고 했다. 지척을 분간하지 못할정도로 검은 구름에 가려져있는 등로를 조심스럽게 내딛는 사람들은 천황봉에 가려는 12~15명의 팀들이다. 후드를 머리끝까지 쓰고 하얀 우의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영락없는 우주인같다. 속리산에 올 기회는 다시 없을 거 같아 천황봉에 오르고 싶다는 말을하는데, 남편은 하산을 하자고했다. 자신(남편)은 갈 수 있지만, 나는 못 갈꺼라는 이유를 대며...(전혀 아닌데...)아쉬운 마음으로 하산을 하는데 비가 그친다.
아쉬운 마음은 더하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햇볕까지나는게 아닌가. 천왕봉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차량으로 햇�을 가리는 차양으로 삼고, 은박지 자리를 깔고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두어시간이 지나자, 천왕봉에 간 사람들이 속속 도착을 하였고, 경치가 좋드냐는 물음에 "경치가 너무 좋았어요, 천황봉에 오르니 비가 그치든걸요." '에이, 약올라~' 그러나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 있는 북한산과 수락산에 오른 등산객들이 낙뢰를 맞고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리자, 위무가 되긴 했고, 지난 밤 잠을 못잔 탓인지 피곤함의 무게가 눈꺼풀을 내리눌렀고, 의자에 몸을 묻고 혼곤한 잠으로 휴가의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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