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와바라, 내가 니한테 할말이 많다." 술이 잔뜩 취한 상태로 컴앞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침대위로 불러앉히는 술상을 침대위로 올리란다. 행여나 침대에 흘려질까 싶어 신문지 한 장을 밑에 깔고 그위에 차려진 채반을 얻으며 눈과 귀를 남편의 입으로 향하며 무슨일이냐는 듯 궁금증을 잔뜩 머금은채로 남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니는 내가 아들한테 무조건 나쁜아버지로 비치더나?" "니가 내속을 몰라서 그렇지, 민규가 외출을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걸 보면 마음이 어떤지 모르제? 하긴 니가 알턱이 있나...." ".....니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건 항상 아들한테 냉정한 아버지역할에 충실하는 거밖에 달리 생각하지 않으니까..." "....." "나도 민규한테 용돈을 듬뿍 주고 인기를 얻고 싶을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게 아버지라는 역할이다. 자식한테 인기 얻는거 별다른게 있나? 적당히 용돈이나 쥐어주고 듣기 좋은말을 해주면 환심은 살수 있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휴가 나올때마다 민규에게 얼마씩 용돈을 주기로 책정 해놓은이상 그 규칙에 충실하고 싶어서 그런다." 남편은 자신의 말에 격정에 노출되었는지 티슈가 있는 스탠드로 향하드니 티슈 여러장을 뽑아 들고 눈물을 훔치 는 듯했다. 아직 결혼생활 2십여년 동안 남편의 눈물을 본적이 그렇게 기억에 남아있는건 몇번 없다. 그런 남편을 냉정한 사람 내지는 눈물이 없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데 서슴치않았다. 그런 남편이 휴가 나온 자식이 외출을 않고 컴앞에 있는게 못내 가슴이 아파 눈물을 떨군다는게 도대체가 믿기지않았다. 남성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성호르몬이 여성화 되어간다는 말에 힘을 보태듯이 남편은 코를 푸는척하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민규에게 용돈을 주고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게 귀띔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남편의 마음을 대신해 민규에게 전달할 수도 있었는데 그걸 생략해버리고, 단지 아들이 외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물을 떨구다니...'내게도 이런 애틋한 마음은 가지고 있는지 몰라' 라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엊그제 일찍 퇴근한 나는 민규와 거실에서 같이 밥을 먹기 위해 상을 펴고 '인덕션'에 불을 켰다. 가게에서 가져온 삼겹살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후라이팬 위에 올려진 돼지고기가 지글거리며 연한 갈색으로 탈바꿈한다.
젓가락으로 한점 집어 입에 가져가는 아들에게 넌즈시 아버지의 마음을 전달했다. "민규야, 아버지가 있지? " "네, 아버지가 왜요?" 상추쌈을 입으로 가져가던 민규가 고개를 들고 나를 내려다본다. "니가 외출하지않고 집에만 있는게 마음이 아픈가봐" "그래요?" "친구들이 다들 군대에 가있으니 만날 수 없죠."믿기지 않은 듯 어쩐일이냐는 듯이 나를 빤히 내려다 본다.^^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천착한 관념이 일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도 나이의 연륜이 그 더께를 더해가면서 많이 심약해진 듯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자식이라곤 하나뿐이면서도 사랑을 주기보다 강하게 키우려고 다섯 살때 물통을 메고 몇십리 길을 걸어왔던 지난 날....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바는 아니였지만, 매번 꾸중 들을때마다 아버지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던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으리라. 강인한 모습으로밖에 다가오지 않았던 아버지가 자식이 다 컸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유순해졌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게 내심 의구심도 들었으리라. 나역시 남편의 달라진 태도에 황당하기까지 했으니말이다. "어머니, 저는 그게 기억에 제일 남아요." "머가?" "제가 어릴 때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왔는데 아버지가 얼마나 혼을 내셨는지, 그 이후로 친구들을 집에 데려올때마다 신경이 쓰였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는거요..."
"그래? 누구한테건 자신이 살아가면서 아주마음상한 말을 들었다든가, 또는 인상깊었던 말을 들었을 때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지" 강하게 키울려는 아버지에게 무던히도 마음상했던 지난 날들이 오버랩되어왔을 것이다. 그런 민규가 11박 12일의 휴가기간을 채우고 군대에 복귀하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 전에는 복귀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민규를 보면서 마음이 아려 보내놓고 울기도 했는데, 인제 병장견장을 달고 복귀를 하는 탓에서인지 아리는 감정은 없었다. "민규야, 인제 니가 복귀한다고 해도 마음이 아프지 않다. " "어머니, 그건 당연하죠. 병장을 달고 복귀를 하니 제가 고생을 덜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겠죠? " 거수경례를 하고나니 승강기 문이 스르르 닫긴다. 아들과의 단절에 허전함이 또 묻어나오는 아침이다.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파노라마 (0) | 2004.10.25 |
---|---|
있을 때 잘해!! (0) | 2004.10.24 |
외로운 영혼들... (0) | 2004.10.22 |
성매매특별법 을 접하고... (0) | 2004.10.21 |
하루동안의 휴가... (0) | 2004.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