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한 장 남은 달력이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시보처럼 느껴진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세월의 덧없음에 무상함이 허망하게 다가온다.
지난 밤 남편의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자책이 남편 등산에 준비해야는 음식들을 차리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앉히고 산등성이에서 먹는 식사는 따뜻해야 할 것 같아 시래기국도 보온통에 넣었다. 간단한 차림이긴하지만, 내 마음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나는 위무를 스스로 하면서.... 지난 밤 뒤숭숭했던 꿈자리의 여파도 크게 깊게 마음에 파장을 일으켜 문자메시지도 날렸다. “지금 비가 많이 오고 있으니 등산 조심 하세요.”라고....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을수도 있다는걸 모르지도 않는데 알량한 자존심으로 무장하고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나고나면 후회를 할때가 많이 있으면서도 당시는 모든걸 이해할 수 없다는듯 말문을 열지 않는다. 내 아집에서 조금의 틈새라도 보이면 무슨 큰 손해라도 볼것마냥 오기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얼마나 설익은 행동이고 어리석은 태도인가. 아내인 내 행동이 막내기질이 다분해보여 못마땅할때는 극적인 승부수도 띄워보는 남편이다. 자신의 전략을 그렇게라도 관철시키려는 계산의 발로이리라.
남편과 나는 태생적인 뚝뚝함으로 화해하는데는 서툴다. 이러한 내 성격으로 인해 남편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걸 살아온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알고 있으면서도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좀체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내자신이 그렇게 속좁아보일 수가 없다. 늘 하는 말이지만 막내로 자라온 관습탓인지 사소한 말에도 잘 삐지고, 사소한 말에도 쉽게 눈물을 보이기도한다. 40대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 불혹의 나이라고 했다든가?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여리니, 해서 남편은 나를 감정에 잘 휩쓸려 ‘우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아이 같다’ 고 놀리기도 하고, 계란위에 계란을 올려놓은 모습인 누란(累卵)을 대하듯 마음을 못 놓는지 모른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큰걸 바라지 않는다. 화려한 생일선물보다, 색다른 이벤트로 환심을 사려하기보다 따뜻한 한 마디의 말이 더 닫혔던 마음을 열게 한다는걸 남편들은 간과하고 있을까? 전래동화에 나오는 텍스트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건 세찬 바람을 불게 해서 옷을 벗기기보다는 따스한 햇살을 비춰 더워서 옷을 벗게하는 편이 훨씬 더 마음에 와 닿지 않을까. 강함보다 유함...
그런 남편이 어저께,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시골에 계시는 친정오빠에게 작은 마음을 보탠 것이다. 퇴근길 거래처에 들렀다 오미자술을 권커니 잣커니 마시다 벽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보니 남편퇴근시간이 임박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내게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여기 있음을 알리고 같이 퇴근하는게 낫지 않겠나는 조언이었고, 그의 생각을 받아들여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분 후 거래처 가게문이 열리면서 남편이 들어선 남편은 “머하고 있노? 얼른 집에 가지않구..” 내심 좋으면서 짐짓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남편의 팔에 내 팔을 두르며 “이제 그만마시고 남편하고 집에 갈꺼야.” 라는말로 애교를 떨었다.
남편이 내게 다가오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내가 먼저 다가가보라는 어느 지인의 조언에 고개가 주억거려졌고, 그 말을 수긍하는 날들로 채색해 갈 것이리라..... -단기 4339년 겨울 초입 어느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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