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를 두고 흔히 ‘낀 세대’니 ‘샌드위치 세대’ 니 한다. 그래도 친정부모의 가정교육 영향도 있고해서 시부모를 깍듯이 모시려는 마음가짐도 있었고, 자신을 가꾸는데는 그다지 욕심부리지 않고, 자식을 위한 뒷바라지에는 소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요즘 세대들은 어디 그런가? 맞벌이 하는 신세대가 늘어나면서 여성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있다. 예컨대 봉급을 받아서 시부모님 용돈을 드리면 같은 액수의 용돈을 친정부모에게도 드린다. 어디 우리들 세대들은 그랬는가? 액수가 많든 적든 시부모님께는 드렸지만, 친정에는 드릴 생각을 않았다. 물론 개중에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친정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테다. 그렇지만 그런경우는 아주 희박하다. 그런 어제 <대한민국 50대,불안과 희망, 기로에 선 그들> 이라는 제하의 글을 읽고 우리 세대들의 현실을 반영한 조사를 보고 공감이 되었다.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과 공동으로 ‘한국의 50대 정체성’ 설문조사를 벌였다.14개 문항을 주고 인터넷으로 실시했다. 조사 문항에는 자신이 평가하는 가정 및 직장에서의 위치, 시대적 위상, 노후 준비, 삶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 문화 소비 등의 항목이 포함됐다. 설문 결과를 주요 대학병원의 정신과 전문의, 사회학자, 심리학자 등 18명에게 분석하게 한 결과 한국의 50대는 △퇴출 불안 속에 놓인 일중독자 △부양받지도 못하면서 자식에게 퍼주는 마지막 ‘바보’ 세대 △‘뽕짝’이 놀이의 주류인 문화 소외세대 등의 키워드로 압축됐다. “현재의 50대는 신세대의 시작이며 구세대의 끝에 있는 어정쩡한 YO(Young-Old)세대”라며 “이들이 오늘날 한국의 밑바탕을 만들었지만 고생한 만큼 존경받지도 못하고 되레 자기 세대가 부정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층민들의 삶까지 조사하지 않아서이지 더 많은 사람들이 젊은 세대들의 파워에 밀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나는 가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다. 엊그제 고단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 가게에 들리신 할머니는 가게에 들어서자 말자 자리를 찾는다. “얼른 앉으세요.“ 부축을 하며 자리에 앉혀드렸다.
이슬람교도 여성들이 쓴 차도르처럼 눈만 빼꼼히 남겨두고 온통 하얀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지만, 움푹 들어간 눈을 보기만해도 환자같이 보였다. 몇 번의 수술로 기운을 다 소진해버린 그 할머니는 힘없는 걸음걸이로 시장을 보러오셨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많은 양의 고추를 빻아 여러명의 아들집으로 보낼꺼라고 하셨다. 어디 고추뿐이겠는가. 어릴 때 엄마의 맛에 길들여져 있는 아들을 위해 당신이 직접 만든 반찬을 만들어 아들집으로 보내는 재미에 즐거워하시곤했다. 참으로 눈자위가 스멀거리는 모정이 아닌가.
정작 부모들의 마음은 그럴진대 자식들은 어디 그런가. ”할머니, 이렇게 기운이 없어서 어떻게 시장을 보러 다니세요? 그러지 말고 큰 아들집으로 들어가시지않구요.“ 대답대신 헛웃음부터 흘리시드니.... ”난 뒷감당 할 자신이 없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대충 짐작은 갔지만, 할머니의 다음말을 기다리며 눈길을 쫓으니 ”그렇지 않아요. 내가 큰 아들한테 내사정이야기를 해봐요. 큰아들은 와이프인 며느리한테 이야기할테고 그 이야기를 들음 며느리가 가만 있겠어요? 그러다 부부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난 뒷 수습 할 자신이 없거든....“
” 며느리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나도 못이기는척 하고 들어갈려고 하는 데...도무지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할머니의 그 말씀에 목울대가 시큰거렸다. 자식을 위해 한 평생을 헌신했건만 돌아오는 건 냉대뿐이다. ”밥은 어떻게 해드세요?“ ” 하루 먹을 양 정도를 전기 밥솥에 앉히면 해결되는걸 뭐... “ ”그럼 반찬은요?“ ”반찬은 며느리들이 번갈아가면서 해와...“ ”할머니 큰 며느리 나이가 어떻게 되요?“ 할머니 연치를 생각하면 큰며느리 나이도 제법 들었을거 같아서이다. ”50살이 넘었어...“ ”50살이 넘었어도 그런단 말이에요?“ 우리들 세대는 그나마 부모를 공경할 줄도 아는 나이인데.....”큰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나요?“ ”집에 놀고 있음 머하겠어.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어...“ 사리판단이나 분별 정도는 할만한 사람인데, 병든 노모를 방치하다싶이 하는 큰며느리의 행동이 참으로 야속하다.
할머니는 며칠 후 시골에 친적집에 방문하실꺼라며 소고기를 주문하셨고, 자르고 있는 고기를 보드니 먹음직 스러웠는지 몇 번의 망설임 밖으로 나가셨다. 주문한 물건을 가게에 둔체...”할머니 이건 가져가셔야죠.“ 했드니 ”나 어디 잠시 갔다와서 가져갈게...“그러시드니 이내 등을 돌리고 다시 가게로 들어오시는게 아닌가. ”입맛이 없어서 쇠고기국을 끓여 먹으면 한 술 먹어질거 같은데....“ ”다음에 돈 주고 소고기 좀 주면 안 될까?“ ”그럼요, 드리고 말구요...“ ”고맙기도 해라...복받을껴...실은 내가 요기 아래 가서 돈을 좀 빌려와서 고기를 사갈까 했거든. 아는 집에 가면 다들 빌려주고 그래...“ ”할머니 뭐하러 그러실려구 하셨어요? 제가 드릴텐데...“ ”고맙기도 해라..내가 돈이라도 안주면 어떡할려구?“ ”설마요....“ 연신 고맙다며 머리를 조아리시는 할머니는 정말 착한 분이시다.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장차 며느리를 봤을 때의 내 노후가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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