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결혼하기 전 큰 키와 잘 생기진 않았지만 남에게 빠지지 않을 만큼의 용모도 갖추고 있어 제법 많은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었다. Y가 다니는 직장은 우리나라에서 몇 개안에 드는 굴지의 대기업이다. 전자제품 업체라선지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남자들은 엔지니어들이라 가뭄에 콩나듯 몇 명 뿐이없었다고, 그 몇사람 중에 Y도 한사람이었다.
Y의 동생인 I는 방학을 맞아 부산나들이를 가보기로 했다. 언제인가 Y가 본가에 내려올때마다 "부산에 한번 놀러와라..."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부산나들이를 결행했다. 시골에 묻혀 지내는 I가 부산에 간다는건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가끔 도회지에서 내려오는 친구들을 만나면 미지에 대한 아련함에 젖어들며 부산에 간다는 생각을 하면 이내 마음이 설레어지곤 했다. 늦은 여름의 끝자락인 10월달에 I는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나 생물들이 I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엔돌핀원 이었다. 부산역에 내린 I는 공중전화부스부타 찾았다. 눈앞에 펼쳐진 빌딩들의 위엄에 주눅이 들은 I는 Y의 직장으로 전화를 걸었고, Y가 가르켜주는 버스 번호를 타고 Y가 기거하고 있는 겨우 집을 찾아냈다. <부곡동> 동백나무들 틈사이로 작은 길을 헤집고 좁은골목길을 따라가니 Y가 가르켜 주었던 문패가 보였다. 벨을 누르니 낯선 여자가 I를 맞이했다. 대문을 열어준 아줌마는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I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누구 찾아왔어요?"
" 혹시 여기 00분 세들어 살고있지 않아요?." "네, 있어요. 그분 찾아오신거로군요." 그제서야 낯선 이방인의 방문을 환영하며 열쇠하나를 건네준다. "이 열쇠로 열고 들어가보세요." 아직 Y는 퇴근 전이었고,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Y의 성격을 알겠는듯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넓은 집에서 익숙해진 삶을 살고있는 동생은 시골 집보다 더 적은 평수인 좁은 공간에서 몇세대가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는걸 보니 Y의 생활이(아니 도회적인 삶) 답답해보이기까지 했다. Y가 퇴근 하기 전 밥을 해둘 요량으로 밥을 앉혀두고 식료품집에 들렀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다못해 콩나물하나 사는것도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걸 돈으로 해결해야한다는 사실에 삭막하기 까지했고, 그런 생활에 익숙해있는 도시 사람들을 생각하면 답답해서 어떻게 사는지 신기하기까지해 보였다. 시골에서 오랜생활의 관성에 젖어있던 I의 행동은 모든게 서툴렀고, 그때마다 Y의 잔소리는 시작되곤했다. “방은 항상 청결하게 해야 해.” 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빗자루와 물걸레를 건네주며 조금 전 닦은 방이 마음에 차지않아했다.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I는 자신이 살고 있는 넓은 평원이 있는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잠시라도 꿈꾸었던 미지를 동경했던 마음은 그때부터 접었다.
그런 Y가 어느날 결혼을 할꺼라며 어여쁜 아가씨를 대동하고 부모님께 보일려고 시골에 내려왔다. 자그마한 시골동네는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 시대상황때만 해도 맞선을 보고난 후 결혼하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연애결혼을 한다는 사실은 시골사람들에겐 아주 낯설었고, 시골에서는 큰 뉴스거리원에 틀림 없었다. 삼삼오오 만나기만 하면 동네사람들은 Y의 결혼을 화제로 올리곤 했다. 중매결혼보다 세련되어보이는 Y의 연애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결혼식날짜가 앞으로 다가오자 은근히 I는 걱정이 되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예비 Y의 아내될 사람은 세련되어 있을텐데 시골에서의 오랜생활로 촌스러움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자신들의 가족을 생각하면 결혼식에 입고갈 한복마저 마땅치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며칠의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Y의 형에게 부탁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Y의 형은 사업도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있어 부모가 자식 결혼식에 입고갈 옷한벌 사달라고 부탁하는 것 쯤이야 어렵지 않게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생각을 한 I 는 Y의 형에게 편지를 쓰기로했다. 간단하게나마 안부인사를 하고 " 이번 결혼식에 입고갈 옷이 마뜩치않으니 부모님 옷한벌 사주면 안되겠나" 는 간절한 부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순진한 발상에 헛헛한 웃음마저 비집고 나온다. 결혼식날 Y의 가족들은 부산나들이에 한껏 긴장되어있어서인지, 부산으로 가는 시간동안 버스안에서는 적요한 정적에 곳곳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리곤 했다. 장장 6시간동안 내달린 버스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어느 건물앞에서 차를 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범일동에 있는 어느 예식장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결혼행직곡이 울리고 빨간 융단을 밟으며 앞으로 걸어나오고 있는 신부를 보며 목울대 안으로 가벼운 탄성이 파동을 일으켰다.
아, 천사!...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뿐사뿐 걸어나오는 Y의 아내를 보는 순간 그에게 적합한 단어가 '천사' 라고 생각했다. 천사가 하늘에서 날개를 달고 하얀 선녀복을 입고 내려온 착각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가족사진을 찍기위해 나오라는 사진사의 말을 듣고 서야 정신을 가다듬고 천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나갔다. 사돈네와 같이 사진을 찍어야 할 때는 자꾸만 사돈네로 눈길을 흘금거려졌고, 부산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그들은 아주 세련되어 보였다. 차별되는 초라함에 자꾸만 고개가 떨구어졌다. 1시간 여의 예식은 끝이나고 폐백드리는 자리에서도 여전히 숙여진 고개는 들줄을 몰랐다. 그렇게 해서 Y와 G는 부부로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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