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비오는 창가에서서...(1)

정순이 2004. 6. 24. 12:20

잊혀져 가는 이름들.....

 

며칠동안 쏟아지던 폭우는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더운 열기만 배설해놓고, 잠시 몸을 사리는 듯 시야에서 멀어져 있었다. 시골에서의 단비는 아무리 부지런한 농부라도 쉬는 걸로 생각할만큼 비오는 날은 가족들이 대청마루에 모여앉아 감자를 삶아 먹으면서 모처럼 찾아온 삶의 여유를 즐기곤 한다. 어제 오후부터 잠자리에 든 Y는 24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일어날 생각을 않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Y를 깨워 가족의 동아리에 합류하라고 깨우고 싶었지만 Y의 심기가 불편한거 같아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얼마동안 하고 있었을까,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싶었는데도 여전히 일어날 낌새를 보이지 않는 Y의 방문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본가에 내려온지가 벌써 일주일을 넘기고 있었지만 휴가를 받아 잠시 쉬로 내려왔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말마저도 의구심이 드는 것은 집과 직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라 달리 말을 하지 않던 Y를 잡고 “무슨일이 있는거지?“ 하면서 다그쳐 물었던게 이틀 전 이었다. 아내와의 불화로 잠시 머리나 식히고 싶다고 했다.

 

많은 의구심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Y의 성격으로 어떤 물음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을꺼라는 생각에 속만 끓이고 있었다. Y가 자고 있는 방문을 열었다. 커텐으로 가려진 밀폐된 방안의 공기틈새로 탄산가스가 훅하고 코를 자극해왔다. 벽 중간에 달려있는 백열등 줄을 잡아당겼다. 방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죽은 듯한 한사내가 보료위에 늘어져있었다.


“일어나세요, 인제 그만 일어나서 식사하세요.” 반응이 없다. “그만 일어나라구요?” Y의 몸을 가리고 있던 이불을 Y의 목덜미 아래 어깨까지 걷어내고 두손으로 Y의 어깨를 흔들었다. 한번, 두 번, 세 번...미동도 없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Y가 덮고 있던 이불을 세차게 걷어냈다. 걷혀지는 이불과 함께 빈병하나가 딸려나왔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반투명한 병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안이 희미하게 보이는 반투명의 병안에는 한알의 약도 남겨져 있지않았다. 이미 입에 다 쓸어 넣고 쓰러진 듯 뚜껑은 보이지 않았다. 안간힘을 쓴 듯 보료위에는 Y의 말똥같은 배설물이 엉덩이 틈사이로 삐져 나와 다리힘에 눌려 짖이겨져 있었다.

 

자식의 단발마에 방으로 들어온 그의 어머니는 그만 기운이 빠진 듯 옆으로 쓰러지고 만다. 부모를 앞세운 자식의 자살 앞에서 어느부모인들 혼절하지 않을까....다급해진 Y의 동생은 수화기를 들고 119로 sos를 타전했다. 119 엠블런스가 도착한건 정확히 20분 쯤 후였다. Y는 들것에 실렸고, 엠블런스는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병원으로 내달렸다. 가까운 병원에 도착한 Y는 서둘러 삼킨 약들을 약물세척기로 다 씻어냈다. 입원 3일만에 가까스로 퇴원한 Y는 헬쓱한 모습으로 부모앞에 섰다. 그때부터 본가에 알려지기 시작한 Y의 가정불화는 부모님 마음에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다.

 

셋째며느리....시부모의 눈으로 볼때면 흡족한 며느리임에 틀림이 없다. 서울에 살고 있는 그들이 시골에 계시는 시부모님을 찾아뵈는 횟수는 여느며느리보다 잦았고, 성격이 활달해보이기까지 한 셋째며느리는 부모님께 아주 잘했다. 시부모인 자신들에게 이렇게 애교스럽게 잘하는 걸로 봐서는 자식인 남편한테 잘할 것 같은데, 아내와 갈등을 겪는다는건 자식이지만 내 자식에게 문제가 있는거겠지. 라는 생각까지 하는 선량한 마음을 가진 부모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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