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갔다오는거에요?” 진열장안에 넣을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는 지인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른 팔 안쪽에 몇 권의 책이 들려 있는 걸 보니 공부를 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학생같이 보였다. 그녀는 항상 다소곳한 모습이다. 가끔 시어머니를 모시고 가게에 들리지만, 항상 시어머니를 깍듯이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그녀의 소양이 엿보이곤 했다. 목소리 또한 나긋나긋해 귀를 기울여 듣지 않으면 언어의 문맥을 놓치기 일쑤일만큼 정리 정돈이 잘 된 책상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금정도서관에요.” 잠시 가게에 들려 쉬었다 가라는 시늉으로 다섯 손을 뻗쳐 오라고 손짓했다. 머리를 뒤로 틀어올리고 기다란 귀거리 아래로 크다란 숄을 걸친 그녀의 모습은 부자집 마나님 같은 모습이다. 크다란 장신구를 달고 있는 그녀를 본 나는 그녀의 성격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 장신구에 오랫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몇 년을 봐오던 그녀의 이지적인 성격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 크다란 장신구들이 언밸런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는 무슨일루요?”
“멀 배우러 다녀요?” “그래요? 도서관에서도 멀 가르키기도 하나보죠?”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음말을 기다리며 그녀의 입을 주시했다. “이렇게 다닌 지 꽤 오래 되었어요. 작년부터 배우러 다녔죠. 얼마나 잘 가르켜 주는 지 몰라요. 무료로 강의를 듣는 데 교재비가 5천원 정도에요. 물론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겠지만, 배우는 입장이니 고마운 마음이 드는거 있죠?” “그렇군요.” 전 금시초문이에요.“ “일주일에 세 번씩 가르켜주는 데 한번 가르켜 줄때마다 두 시간씩 배워요 ” “그래요? 뭘 가르키는데요?”
“월요일은 한자를 배우구요. 하루 건너 뛰어 수요일에는 붓글씨, 금요일에는 그림 그리기에 한 장르인 사군자 그리기를 배우고 있어요." "그래요? 복지회관에서나 동회에서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명심보감, 한자공부를 가르킨다든가 스포츠댄스를 가르켜 준다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도서관에서도 그런 유익한 프로그램으로 주부들을 공략하고 있다는건 몰랐네요.” “배우고 싶으세요?” 관심이 있는 듯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는 나를 그렇게 본 모양이다. “시작하는 시간이 몇 시부터에요?” “10시부터 시작하니까 주부들이 집안 청소 대충 끝내고 난 시간이라 많이들 참석해요.”
“그렇겠어요” “배우고 싶은 학구열이 있다면 나하고 같이 다녀보지 않을래요? 원한다면 내가 접수를 해놓을께요.” “접수까지 해야하나보죠?” “그럼요. 신청자가 얼마나 많은지 선착순에서 밀리면 배우고 싶은 기회를 놓치고 마는걸요.어차피 올해는 마감이 끝이 났구요. 내년 3월달이 되면 다시 접수를 받아요. 한 여름에는 수강자들을 위해 너무 더운 여름 3개월은 쉬게 하구요. 한겨울에는 너무 추울 것 같아 12월부터 3개월동안 쉬는걸요. 그러니 내년 3월달이 되어야지만, 접수를 할수 있죠. 것도 3월달 첫 월요일이 되기가 바쁘게 도서관에 가서 접수를 시켜야지만, 겨우 등록이 될만큼 주부들의 호응도가 높아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대답하긴 뭐하고, 내년 3월달이 되기 전에 제가 대답을 해주면 되는거죠?.” “그럼요.” 10시까지 출석하려면 9시 30분에 집을 나서야 하고, 여태까지 습관처럼 타성되어버린 관습들을 서예를 배우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를 해야한다면 그동안 해왔던 모든일들이 다시 수정을 해야하고, 손해를 감수해야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무조건 같이 한자공부나 사군자 그리기를 배우보겠다고 덥썩 대답부터 해놓고 난 후 다시 교정하기도 쉽진 않을것 같았다.
그녀, 비슷한 연배(정확한 나이는 서로 밝히지 않아 어림짐작으로 비슷한 연배라고 판단함)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말을 놓지 않는 그녀에게 나역시 말을 놓을 수 없을만큼 그녀를 대하는 태도에 조심성이 내재 되어 있다. 가게에 오는 사람들 중에서 나이가 비슷한 연배나 나보다 5~7살 많은 사람들과도 친목을 가장(?)한 말놓음이 다반사다. 때로는 말을 높일 때도 있고, 또 때로는 말을 놓는경우가 있다. 상대가 말을 놓을 때는 상대방에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같이 말을 놓게 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내 이름을 불러주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친구에게는 나 역시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며 친근함으로 다가가게 된다. 기실 그럼으로써 마음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 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녀와 그런 말들을 주고 받은지도 벌써 달포가 지났다. 얼마 있지 않으면 그녀에게 대답을 해야할 텐데 아직 모범답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 human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서? (0) | 2006.01.13 |
---|---|
진정 보호받지 못할 죄를 지었단 말인가? (0) | 2005.12.31 |
행복을 만나고 왔습니다.^^ (0) | 2005.12.25 |
절기음식 (0) | 2005.12.22 |
밤비노의 저주(Bambino's curse) (0) | 200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