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이단자의 말로

정순이 2003. 10. 8. 11:23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말이고,과부3년이면 구슬이 서말‘이라는 옛말이
있다.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혼후유증으로 시달림을 받고 있는
남편의 행색이 남루해 자신의 몸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퇴근길 종종걸음을 지치고 내 앞으로 앞서가던 남자분이 팔을 치켜들고 아는 체
하는걸 보았다. 아마 평소 알고 지내던분이 가게앞에 서있자 그 사람에게 수인사로
대신 하는 듯 했다.
나역시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말하기 싫을 때는 가볍게 목례만 하는경우도
있고, 아는사람 과의 거리가 멀 경우에는 눈인사만 하고 지나갈때가 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내게 시선을 끌진 못했다. 외면하고 가던길을 가려는데 무심코
바라 보니 일전에 우리가게 거래처 고객이었다. 멀게는 거래처고객이였지만 가깝게는
나이가 비슷하다는 동질감과, 같은 동네에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는 친밀감에 그분의
아내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지금이야 급격한 변화로 빈 공간없이 건물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지만 70년대 때만해도
이 지역은 온통 미나리뻘밭이였다는 말을 들었다.
철거민들이 이 동네로 처음 이주해왔을때는 이웃들과의 잦은 교류로 한동네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상대 집안의 삶의 내역까지 다 보일정도로 왕래가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분의 집안은 ‘사법시험’에 도전장을 낼만큼 명석한 두되를 가진 형제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세월의 변천으로 다 묻혀져버렸지만, 반듯한 집안이라는데 동의를 하고 싶을만큼
깨끗이 그녀에 몸에 베여있었다. 그분의 아내...결고운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긴다음 머리삔 하나로 고정시킨 그녀의 외향은 누가 봐도 깨끗함 그 자체였고, 매사 일하는 것 역시 외모와 밸런스를 맞추고 있어 그녀를 보는 많은 이들은 그녀에게 후한점수를 주곤 했다. 가끔 부부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커플 역시 천칭저울로 무게를 달아보면 남자쪽이 기운다는 말로 입방아를 찧곤 했었다.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하고 정상궤도에 올랐지 싶었는데도 그들은 말못할 슬럼프가 있었는지 어느날 가게를 그만두고 다른업종으로 전환을 한다는 말이 들렸다. 그때 그녀는 가게하면서도 꾸준하게 취득한 자격증으로 한식업을 할까도 고민하다가 끝에는 그 당시에 한창 뜨는 업종이 '청춘아 돌려다오' 라는 주류업으로 꽤 잘된다는 솔깃한 소문에 그동안 자신들의 가계를 일으켜세우는데 일등공신을 한 사업을 그만두었는지 모른다.

업종을 바꾼지 며칠지나지 않아 사업이 잘되는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은 듯 보였는데....그런 어느날 남편이 아내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외도를 한다는 소문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아르바이트생과의 염문으로 아내의 마음을 다치게했지만 자식이 있으니 어쩔수 있겠나 싶은 안이함이 더 아내의 마음에 돌이킬수 없는 큰상처를 남겼는지 그들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었고, 가게는 문을 닫았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그런 소문들이 중첩되어와 아는체 하고 싶지 않아 느린걸음으로 그분과의 거리격차를 벌리고 싶어 보폭을 낮추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려던 그는 좌우로 차가 지나가려는걸 확인하려고 눈을 돌렸을 때 나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집에 퇴근하나봅니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려고 귀를 바짝 갖다댔지만 빈번하게 지나가는 차량들때문에 알아듣지 못할정도였고, 그분의 목소리는 차량들의 소음속으로 묻히고 있었다.
"네. 지금 퇴근합니다."
그분도 더 말을 잇지 않은건 방해하는 차량들 때문이라고 느꼈음인지 말없이 손을 번쩍 들어 헤어지는 인사를 대신하려는 듯 하고는 어느 가게 문을 밀치고 들어가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가게로 들어가려는지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개업을 하는데 도와주는 곳이였다.
또 다른 업종으로 전환을 할 모양이다. 그녀의 소식은 알길없는체 그분과의 거리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면서 끊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안부가 몹시 궁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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