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자연으로부터 온 초대장

정순이 2003. 10. 6. 21:22
향토색 짙은 서정의 남루한 입성을 걸치고 남새밭에서 부지런히 팔매질하고 있는
할머니가 지나가는 나의 인기척을 느꼈음인지 눈길을 돌리신다.
할머니의 머리는 참빗으로 간지런히 빗어올린 뒤 비녀가 빗금을 치고 마름질 하신
듯 해 보였다.
순간 스냅사진처럼...구근줄기마냥 기억의 파편들이 딸려져 올라온다.

여름방학이면 모자라는 일손을 충당하기 위해 팔걷고 나서야 했던 밭매기...
집에서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밭에까지 갈려면 꽤 먼거리를 걸어서 가야한다.
부지런한 어머니는 일찌감치 밭에서 김을 매고계실테고, 언니도 엄마따라 부지런한
손놀림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었다.
지금처럼 교통사정이 원활하다면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이용했을 먼거리이다.
30여분의 신작로를 걷고, 과수원을 지나 꽤 긴 도랑을 건너고 나면, 겨우한사람이
다닐수 있는 협소한 길과 맞딱뜨린다. 길섶에 무지렁이 자라나있는 풀들이 잎을뻗어 길을 덮고 있다. 풀잎들이 길을 가리고 있는 곳을 헤치고 지나갈때는 간이 콩알만해진다.

언제였던가 비온뒤 풀들의 깨끗함에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내 앞으로 머리를 치켜든 뱀 한 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지나가는게 아닌가. 혼비백산 하고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풀숲에 똬리를 틀고 숨어있던 뱀이 이방인의 방문에 놀라 살길을 찾아 도망가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뱀도 놀라고 나 역시 너무 놀랐으니...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그 앞을 지나갈때는 일부러 헛기침을 하고 지나간다. 뱀이 알아듣던 못알아듣던 나의 인기척을 듣고 뱀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지나갈려면 빨리 지나가라는 나의 배려로 헛기침을 한뒤, 조금 뜸을 들이고 난 다음에 그 앞을 지나가는 습관을 들이기도 했다.
기도도 빼놓을수 없는 나의 습관이되어버린게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주술을 외우듯 마음을 가다듬고 두손을 오므리기도 했었으니까. 그런 위험을 무릎쓰고야 밭에 다다를수 있다.

밭아래 계단식 논이 펼쳐져 있는 천수답들...비가 와야지만 모심기를 할수 있고 그나마 푸성귀씨도 파종할수가 없다. 물이 고여있는 질퍽한 논이 될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때는
말라진 논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하고 있다. 비가 오지 않은 여름갈수기때는 밭에서 제법 떨어진 웅덩이에다 양수기를 들이대고 기다란 호수를 이어 밭에다 물을 준 추억들이 마르지 않은 기억들의 사금파리들이다. 일상에 순치된 인간들의 힘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범접할수 없는 자연의 위력앞에서는 한갖 미물일 수밖에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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