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 신문에서 화두로 떠오르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글이 연일 영상매체를 달구는 모양이다.
일전에 남편도 그걸 보고 많은 공감을 하더니 어제는 더 가슴에
와 닿는 일이 있었단다.
어제 아침 남편과 아들은 시아버님과 시동생의 묘소에 벌초하러
간다고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나 역시 몇몇 가지 반찬 준비에 덩달아 분주했었다.
해마다 둘째 시숙님이 빠뜨리지 않고 벌초를 하시곤 하는데
올해도 예년과 다름없이 하셨다는걸 알지만 몇해동안 벌초에 무관
심 하던 남편이 좀은 아버님과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며칠전부터 다가오는(어제)일요일에는 아들을 데리고 한번 다녀와야
겠다는 언급을 해두었었다.
이런걸 보면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뼈빠지게 공부 시켜봐야 아들 5형제인데도 벌초하는 사람은 항상
정해진듯하다. 큰 시숙님과 둘째 시숙님 뿐이니 말이다.
나는 딱 두 번 벌초하러 갔었다.
결혼하고 인사차 한번 들러서 형식적으로 벌초를 한번 했었구
그 두 번째는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하고 한번 들러었다.
남편의 동생(시동생)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병원의 오진으로 인해
이세상을 하직 한 도련님이다.
동생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했던 남편은 많은 날들로 통한의
나날을 보내며 그 좋아하는 술을 한달동안 끊었던 적이 그당시 처음
이라고 한다. 한약을 지어줘도 그 기간을 못채웠던 사람인걸 보면
많은 아픔이 있었지 않나 싶다.
내가 자주 그런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끊는것도 본인의 의지력이
많이 좌우한다구 그랬더니 그런 일화를 이야기 한다.
형제간중에 유일하게 피부가 뽀야니 이뻤다는 말로 시동생의 얼굴을
가늠하게 하지만 가족이란게 이런 끈끈한정으로 인연을 맺어주나 보다.
얼굴 한번 본적 없지만 남달리 느낌으로 전달이 되니 말이다.
모처럼 부자간의 소원했던 정도 이일로 인해서 더 도타워졌다는 남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남편은 아들에게는 많은 무리수를 두곤 했었다.
한집안에 가장은 두려운줄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들을 대했으니...
아들이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려면 나이가 20살은 지나야 한다는
말에 어제는 실감을 하였는지 아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전에
보다 많이 달라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아들과의 반나절 같이 지내고 오더니 많은 변화가 있었나보다.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미리 그 느낌을 공감하고 있던 남편은 비로소
아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커뮤니케이션이 오간 모양이다.
얼마나 뿌듯한지 남편은 갔다오고나서 연신 내 시선을 끌고 이야기
할려고 내팔을 잡아 다닌다....후후~~
아들도 큰집에 풀베는 낫을 갖다드리려 갔더니 할머니 께서 하시는 말씀이
"지하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손주의 서비스를 받았으니 많이 허뭇해 하셨
을꺼야" 라는 할머니 말씀에 허뭇한지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200년 9월 15일
' human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북한 실정이 (0) | 2003.08.06 |
---|---|
같은 여자로써 공감하며... (0) | 2003.08.06 |
사람사는 맛이라는 게 (0) | 2003.08.06 |
손익 분기점 (0) | 2003.08.06 |
속닥 속닥~^^ (0) | 2003.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