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friend....

정순이 2005. 6. 20. 12:58


파란불로 바뀌면 얼른 건널목을 건너야겠다는 생각에 신호등만 주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횡당보도위로 신호등이 사정거리안으로 들어오면  습관처럼 불을 의식한다. 빨간불과 파란불이 같이 켜져있는 게 보이면 빠른 걸음을 재촉하면 무난히 건널목을 건널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생각없이 느린 보폭으로 걸으면 몇분 동안은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어야한다. 그 몇 분이라도 기다리는 게 싫어 신호등불이 사정거리안에 들어오면 걸음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도 여느 때 와같이 조금만 걸음을 재촉하기만 하면 기다리지 않고, 건널수 있겠다는 계산을 하며 신호등을 주시했다. "퇴근하시나봐요?" "아,네...이시간에 어디가세요?" "송열이가 입원해 있거든요...." "네? 친구가요? 어디가 아픈거에요?" "우울증이래요."

 

"그래요? 며칠 전 퇴근길에 잠시 만나 이야기 했었는 데, 그때 아무말도 않드니...." "입원한지 일주일이 된걸요." "그래요? '그럼 내가 친구를 만난 지 일주일이 더 되었다는 말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느 병원요?" 병문안은 가진 못하지만, 습관처럼 그런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부곡동 한방병원요." 처음들어보는 병원이름이였지만, 잘못 던진 질문이라는 생각에 머슥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경이 많이 쓰이겠어요. 잘 해주셔야겠어요." 달리 할말이 없다. 입원한지가 일주일 째라면 일주일 전 쯤인가 보다. 출근길에 친구를 만났다. 그날은 힘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 요즘 나 병원에 다녀. 친구도 항상 건강에 신경써..." 항상 생기발랄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의기소침해 있는 친구의 모습이 안쓰러워 "어디가 아픈거야?" "글세, 어디가 뚜렷하게 아픈 건 아니구....여기 저기 아프긴 한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다들 바빠 각기 제갈길로 길을 재촉했다.

 

나이가 같다는 동질감으로,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따뜻한 말한마디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는 고마움이 모티브되어  십 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지않고 친구의 이름으로 등재되어있는지 모른다. 그런 인프라로 외국에 여행을 갔다올때도 잊지않고 작은 선물이나마 성의를 보였고, 시장에 볼일이 있을때면 으레 가게에 들러 잠시라도 놀다가곤 했다. 그런 그녀가 나와 소원하게 지낸건 남편의 독트린 때문이다. 부흥회에 한번만이라도 참석해달라는 친구의 청을 남편이 매몰차게 거절을 하면서부터 그 친구는 가게에 발걸음하지 않았다. 비록 아내 친구에게는 매몰차게 하더라도 아내를 지킬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서 가정을 지키고 싶었을까? 부흥회 한번 참석해달라며 초대장을 받아 남편에게 보여주었을때도 말이 없었는 데도 불구하고, 아내를 부흥회에 보내기 싫었다면 아내를 닥달하지 않고 아내 친구에게 매정하게 굴었을까?  가게에 들리면, 앵무새처럼 재잘대며 기분을 맞춰주곤 하던 그 친구가, 그런일이 있고난 후부터 길거리에서 만나도 시큰둥하기 이를데 없었다. 물론 나같은 성격이야 그럴수 있다지만, 워낙 타고난 사회성과 친밀감으로 많은 친구를 확보하고 있던 그녀였었는 데, 그렇게 말문을 닫아버릴꺼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다.

 

47살의 김송열, 그녀와 그녀 남편을 저울질하자면 그녀쪽에 무게중심이 많이 기울어 질것 같은 데도 그녀는 무던히도 잘 참아내고 있어보였다. 가계에 보탬이 되기위해 잠시라도 집에서 놀지 않을려고 노력했고, 90세의 시어머니를 모시면서도 불평을 잘 하지 않았다. 가끔 아주 가끔 치매끼가 있는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침실문을 벌컥 열어버릴 때도 있다는 말을 할 때도 시어머니가 미워서 짓는 표정이라기보다는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다 그럴꺼라며 웃어넘기곤 했다.

비좁은 아파트에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십수년을 그렇게 살면서도 아직까지 시어머니에 대해서 불평한마디 하지 않는 다는 건 그녀의 성격이 어떠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어느날 그녀가 푸념처럼 "내가 교회라도 다니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꺼야..." 남편이 그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중 하나, 몇 달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그친구가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사실이다. 가끔 그녀가 가게에 찾아와 남편에게 인사를 해도 대꾸도 잘 해주지 않는다며 그녀는 서운해 하곤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 우울증으로 입원을했다. 지금 그녀가 '우울증'으로 입원해 있다면 만분의 일이라도 우리부부의 말한마디가 일조하지 않았는지 라는 생각에 미치자 마음이 묵직해진다. 빠른쾌유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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