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여름의 길목에서...

정순이 2007. 5. 20. 12:06
 

며칠 전부터 삐그덕대던 러닝머신 벨트가 말썽을 부리며 멈춰서버렸다. 하긴 러닝머신을 구입한지가 벌써 5년을 넘기고 있으니 고장날만도 하다. 작년에 모터를 한 번 교체하고 난 후의 고장이니 잘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중고시장에 제일 많이 나와있는 물품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게 러닝머신이라는말을 들었다. 그런걸 생각하면 나는 가격대비 몇 배의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구입하고난 처음 몇 달 동안은 하루에 45분씩 뛰다 감량효과는 45분 이후부터 나타난다는 지인의 말에 시간을 늘려 한 시간을 뛰고 있고, 될 수 있으면 빠뜨리는 날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러닝머신에 오르기 전에는 고민하지 않는날이 없을정도로 뛰고 싶은 날은 없다.


‘오늘은 쉬면 안 될까?’ 내지는 ‘꼭 이렇게 뛰어야하나?’ .....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기분이 되곤한다. 그러나 막상 10~20분동안 뛰면서 정수리에서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때면 오늘도 게으름피우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그런 어제 출근하자말자 러닝구입처에 전화를 걸었다. 주 5일 휴무제라 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다. 자동응답기를 통해 들려오는 기계음의 목소리는 ‘쉬는날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과 친절하게 월요일 9시 이후에 다시 전화를 하라는 말만 반복되었다.


홈쇼핑을 통해 구입한 물품이라 수리접수가 됐다고 해도 며칠은 기다려야하는데 공휴일까지 겹쳤으니 일주일은 넉히 걸리지 않을까는 생각에 뒷산에라도 갔다와야지되지않겠나는 생각이 일었다. 산악회를 따라 멀리 등산을 가는 남편을 시간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민규를 시간맞춰 깨울려면 뒷산 가는 시간을 조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찌감치 일어나 밥을 앉히고 반찬을 서두르며 창문을 열어보니 건물들마다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을 뚫고 산에를 가야한다는 생각에 자꾸만 핑계거리를 만든다. ‘ 몸도 찌부둥한데 하루 쉴까?’ ‘오늘만 쉬고 내일 갈까?’ 가지 말자는 생각과 갔다오자는 생각이 알력을 행사했지만, 후자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바지런을 떨었다.


가볍게 화장을 하고 차양이 있는 모자를 눌러섰다. 경사가 진 아파트를 내려와 사거리를 지나니 곳곳에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배낭을 짊어진 모습이 눈에 뜨인다. 휴일이면 건강을 다지려는 사람들이 많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등산객들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하니 낮은 담장너머로 드리워져있는 석류나무며 단풍나무들이 시선을 끈다. 구월산 들머리에 드니 땅딸기라고도 하고 뱀딸기라고도 하는 딸기나무가 지천에 늘려있었지만, 식용할 수 없어서인지 빨간 열매가 잎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군락을 이루고있는 옆으로  밤새 내린 이슬이 크고 작은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아침햇살을 받으며 영롱한 빛을 발하고있다.


상수리나무,자귀나무, 찔레나무....녹음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들어온 햇살로 드리워진 긴 음영에 도취되있는 앞으로 청설모 한 마리가 등로를 가로질러 손살같이 내달리다 뒤를 힐끔거린다. “청설모야, 안녕~” 손을 들어 반가움을 표시하자 자신을 해칠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는 두려움이 사라져서인지 가던길을 잠시 멈추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서야 황급히 나무풀 사이로 긴 꼬리를 감추며 몸을 숨긴다. 벌써 산정상에 오른 듯 ‘야호’를 회치는 부지런한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들렸고, 종교단체인듯한 많은 사람들의 구호도 우렁차게 들려온다.


그들의 소리가 점점 멀어질 즈음에는 등산로 길섶에 심어져있는 자작나무가 긴 터널을 이루고있었고, 그 사이로 등산객들이 대열을 이루며 종종걸음을 지치며 걷고 있다. 자작나무에서 떨어진 열매가 등산객들의 발의 피로를 덜기 위해 깔아놓은 자갈과 알맞은 비율로 조화를 이루고있다. 한 시간쯤 걸으니 송전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 겨울 나목들을 보다가 녹음이 우거진 늦은 봄에 다시 구월산을 오르니 낯이 설다. 혼자서는 산에 가는걸 두려워했던 나는 지인들의 핀잔에 도전 의식을 가지며 혼자 등산을 다니게 된지가 두 해는 됐지싶다.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뜨음한곳에 이르면 신경이 곤두선다.


송전탑을 뒤로하고 발길을 재촉하자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정도의 협소한 길이 이어지고 다시 경사진 길을 오르자 개울도 보인다. 개울 옆으로는 비름나물, 바이올렛의 옷을 입은 이름모를 꽃, 말채나무에 하얀 꽃이 만발해있다. 검은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팔락이며 나의 출연을 반긴다. 멀지않은 곳에서 까치들이 선창을 하자 이에 화음을 맞추기라도 하듯 지빠귀의 울음소리도 협주를 하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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