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강천사의 이모저모를 보고와서

정순이 2006. 9. 11. 12:53

 

9월1일날 산악회 회원들과 등산을 다녀온 남편은 인물사진과 배경사진을 찍었던걸 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병풍폭포를 보니 몇 십미터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너무 멋있어보였다. “정말 멋져요. 저렇게 경치가 좋을 줄 알았으면 같이 가는건데 그랬어요.” 그런 이튿 날 그 카페에 무슨 내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와있는지 보다가 남편이 찍은 사진 아래 총무님의 댓글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언니는 질투나지않나 얼마나 좋아 한폭에 그림같습니다.” 를 보고 장난끼가 발동“누구 지금 약올리는거얌? 염장을 질러요,질러” 그런 며칠 후 산악회에서도 맹활약중인 회장님이 동창회에서도 회장을 맡고 있다며 이번에는 이주 전에 갔다왔던 <강천산>에 다시 한번 더 가기로 했다는 총무님의 쪽지가 왔다. 그러나 막상 관관버스 앞 유리치에 적혀있는 걸보니 동창회가 아니고 종친회 모임 이었던모양이다. 갈까말까를 망썰이는데, 자꾸 갔다오라는 남편의 재촉에 마음을 정했다. 해서 이미 남편은 갔다 온 <강천산>이니 혼자 가도 되겠다는 생각에 “그럼 하루 가게 보면 되겠어요.”


나의 반응에 황당한 듯 미간을 찌푸린다. “내가 일전에도 언급했듯이 나혼자서는 가게 열지 않을끼다.” ‘일요일마다 산에 간다는 걸로 생각을 해두라’는 몇 번에 걸쳐 하긴했지만, 이미 갔다온 산이라 혼자가면 되겠다는 나름데로의 계산이 오류를 일으켰다. “그럼 어디 갈건데요?”라는 나의 반문에 “다른 산악회 따라 갈끼다. 마침 00 산악회에서 땅끝 마을에 간다네. 거기 갔다올려구” 속으로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러세요” 로 마무리를 지었다. 가게를 하다보니 외출이 잦지 않은 나는 혼자 어딜 갈려면 신경이 곤두선다. 항상 남편만 따라다녀 기억해두지 않았든게 상당한 불안감으로 엄습하는 했고, 혼자가야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한 작용을 했다. 산악회 버스가 파킹 되어있는 곳을 총무로부터 듣긴했지만, 혹시나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는 마음이들기도 했다. 남편도 걱정이 되었는지 갱지를 꺼내 지도까지 그려준다. 내려야 할 위치나 차가 파킹되어있는 곳까지 갈려면 어디로 가야한다는 것....것도 미심쩍어 남편의 휴대폰까지 내 손에 들려준다. 그런 토요일 밤 시간을 맞춘 자명종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유난히 잠이 많은 내가  새벽부터 눈이 뜨여 몸을 뒤척이곤했다. 신경이 쓰였는지 좀체로 잠이 오지 않았다. 3시40분 다시 자명종소리에 의존하고 더 잘까 하다가 이불을 걷었다. 잠을 더 자봐야 한 시간 정도라 차리리 느긋하게 일을 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 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요해 맨밥을 살까 했드니, 김밥을 고집하는 남편 때문에 미리 김밥재료를 다 준비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3시 40분, 먼 거리라 일찍 출발을 하는 남편은 6시에 집에서 출발을 해야했고, 행선지가 다른 나는 점심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고,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도 7시 였다. 해서 김밥을 사고 난 후 막간의 시간이 남았다. 밤새 설친 잠을 잠시동안이지만 잠을 자두는게 등산하는데 덜 피곤하지 않겠나는 생각에 다시 시간을 맞춘 자명종을 옆에다 두고 달콤한 토막잠에 들었다가 자명송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도 눈을 뜨였다. 조금 있으려니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남편이 전화를 했던 것이다. (이런 섬세한 면이 있었나 싶은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난 밤, 등산에 필요한 사탕이며 햇볕에 거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팔에 끼는 토시며, 장갑, 스포츠모자, 물을 많이 먹진 않아 물병은 작은걸로 하나 챙겼다, ... 빠짐없이 배낭에 다 챙겼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다시 점검을 한 뒤 집을 나섰다. 일찍 집을 나섰던탓에 일찌김치 모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을 차량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영광도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차량은 보이지 않아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온다.그렇게 20여 분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매번 등산을 갈때마다 은성관관을 이용을 해서 차량외피에 파란색을 덧칠한 은성이라는 글자만 찾았다.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았고, 나의 초조함은 비등점의 극치에 닿는듯했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총무한테 전화를 걸었고, 이미 회장님은 나가있다는 전갈을 받았다는것과 롯데백화점 앞 큰 도로에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결론은 총무의 정보전달 오류로 나만 마음고생 한 셈이다.


그렇다면 카페 공지사항에 롯데백화점 앞에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고 해야지, 왜 사람이 헷갈리게 영광도서라고 했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몇 분이나 초조하게 기다렸을까? 휴대전화의 벨이 울려 받아보니 반가운총무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광도서 있는 쪽으로 오라는 것이었고, 몇 발자국 걸어가니 빨간 티셔츠를 입은 총무님이 전화기를 들고 있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초조했던 마음과 서운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반갑기만했다. 차량 가까이 가보니 은성관광차량도 아니였고, 도착지명도 차량문에 부착하지 않았고 대신 <선김 종친회>라는 글귀가 작은 글씨로 차량앞문에 붙어있었고, 회장님이 차량앞에서 엷은 미소를 띄우며 반색을 한다. ‘그러니 찾을 수 있었겠나?’ 는 생각을하며 차량에 오르니 우리 산악회 회원은 몇 명 눈에 뜨이지 않았고, 낯선 사람들 뿐이였지만, 그분들의 따뜻한 환대에 집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고마운 마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종친회모임에 우리 산악회 일행이 얹혀간셈이니, 점심 준비를 하지않아도 그분들이 비용을 전액 부담해 극진한 대접을 한 것이다. <강천사>라는 포지석이 보이는 걸 보니 다 온 셈이다. 포만하게 배를 채우고 등산을 시작했다. 


강천산 입구에 들어서지말자 시원한 물줄기가 우리 일행을 반긴다. 50m의 높은 곳에서 물과 물이 부딪혀 하얀부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떨어지는모습이 장관을 이뤘다. 남편의 말로는 용소(龍沼)가 없는걸로 봐서는 인공폭포라고 했다. 병풍폭포를 뒤로하고 아찔한 구름다리인 현수교의 계곡미를 즐기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수많은 등산객들의 인파가 작은 점으로보인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니 이번에는 인위적으로 깎아도 그렇게는 만들 수 없을거 같은 날카로운 돌들이 가파르게 이어져있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곳이 깃대봉 벙상, 다시 장군봉 정상에서는 단체사진을 몇장 찍고 신성봉 전망대인 팔각정을 향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며 도착한 곳이 구장산폭포다. 두 줄기의 물이 작은 협곡을 이루며 위용을 과시하듯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구장군 폭포를 뒤로하고 돌아서 나오니  빼어난 명찰(名刹) 강천사, 자연스스로 만들어진 수목원같은 숲길이 데이트코스로는 최상인듯했다. 짧은 시간을 아주 알차게 보낸 일요일 하루의 모습이였다.


병풍폭포
구장군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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