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만해도 영화를 보러 자주 다녔다. 지금은 이런 저런 이유로 영화를 보러가는 기회는 아예 없다. 물론 체감경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순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는다면 쉬이 갈 수 있는 지리적여건이 충족되어있고, 영화비용에 신경 쓸만큼 여유롭지 않은 건 아니다. 하루종일 가게를 보면서 시달린 몸으로 심야 상영을 본다는 건 작지 않은 용기가 필요한다. 그런 생각이 바탕되어서인지, 아예 영화보러 가자는 말도 꺼내지 않고, 나 역시 영화관의 좁은 의자에 운신의 폭이 좁아 형벌을 받는거와 같았다. 그런 생각에 개봉된 영화를 바로 보는거 보다는 시일이 좀 지나 흥미로움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차라리 집에서 상영하는게 훨씬 편하다는 생각에 영화에 대한 관심은 뜸해졌다. 한때는 인터넷을 통해 어떤 영화가 개봉되는지 검색하기도 하고, 신문에 광고하는 영화홍보물들을 가위로 오려 관람하러 가기도 했는데 말이다. 이 책(일리아드)는 연전에 ‘트로이’ 라는 영화를 통해서 한번 본 내용들이다. 그 내용들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어 책으로 그 느끼고자 구입하게 되었다.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혼인 잔치마당에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새겨진 황금 사과 한 알을 헤라와 아테나와 으프로디테의 발밑으로 굴렸다. 제우스가 파리스에게 심판을 내리도록했고, 그는 아프로디테가 그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주겠노라 약속하므로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골랐다. 프리아모스 왕이 파리스 왕자를 스파르타로 보냈을 때, 아프로디테는 그에게 보상을 주었으니, 파리스는 헬레네를 보고 한눈에 반했고, 헬레네도 그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아로 돌아간다. 파리스에게 아내를 뺏긴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는 그리스의 사령관인 아가멤논에게 이야기하게되고 주변의 연합국들과 의논하여 트로이아를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그리스와 트로이아의 전쟁은 헥토르로 이해 그리스인들이 많은 목숨을 잃게되고 아가멤논은 사자들을 보내 아킬레우스를 데려오려고 하지만, 아킬레우스의 마음은 좀체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킬레우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포로 브리세이스를 놓고 벌인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다툼은 명예를 놓고 벌이는 충동적인 한 예이다. 아킬레우스는 그리스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전사이며, 또 아가멤논은 가장 큰 정치적 군사적 힘을 쥐고 있다. 아가멤논이 명예와 놏은 지위를 구체적으로 상징하는 전리품 브리세이스를 잃는다는 것은 그의 정치적 권의를 위협하며, 한편 아킬레우스가 브리세이스를 잃는다는것은 최고 전사로서의 명예가 실추 된다고 생각하기에 각자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소유권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두 영웅은 더 큰 전사 공동체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하게 된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이 그를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려고 황천(黃泉)의 스틱스 강물에 몸을 담갔는데, 이때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아킬레스힘줄[腱]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집에서 자랐으며, 아킬레우스의 막역한 친구이자 아킬레우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그리스 전사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를 갖추고 출진하였는데, 적장 헥토르의 손에 죽자 이에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다시 출격하였다. 이때 그가 몸에 걸친 무구는 어머니가 공신(工神)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특별히 만든 것으로 유명한 ‘아이기스’이다. 그는 적장 헥토르를 죽여 원수를 갚고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어 끌고 돌아왔는데, 헥토르의 부왕(父王) 프리아모스가 몸소 진중으로 찾아와 몸을 굽히면서 자식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자 배상금을 받고 인도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도 마침내는 파리스의 화살에 급소를 맞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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