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차 한잔 하러 올래요?”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그녀가 바쁜 듯 그말을 하고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진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 무슨일이지?’ 가게에 필요한 물건을 갖다쓰는 사람이라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는 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를 마치고 그녀의 식당으로 향했다. “무슨일이야~?” “응, 그냥 차나 한잔 하자고...바쁜건 아니지?냉수라도 한잔 줄까?” 나를 오라고 할 때와는 달리 <냉수>라는 말에 은근히 기분이 상한다. “이렇게 손님을 초대해놓고 냉수가 머야? 냉커피 한잔 줘” “ 냉커피는 말고 꿀물을 타줄게..” 라면서 시원한 꿀물을 타갖고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녀와 나는 비슷한 연배라 말을 놓았다 높였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 일요일날 어디 갈 계획이라도 있어요.?” “왜~?” “어딜 갈 계획을 세워놓지 않았다면 나와같이 등산이나 가자구...” 이 무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등산을 간다는 것도 아찔한 생각이 들었지만, 작년 이 맘때 쯤 그녀의 부부와 등산을 갔다오고 난 후 걱정을 들었든 남편의 모습이 중첩되어와 어물거렸다. “더운데 무슨 등산이구?” “남편에게 같이 등산이나 하자고 했드니 가지 않을려는 거 있지? 그래서 자꾸 가자고 조르기도 그렇구...해서 자기하고 같이 갔으면 해서 말하는거야....” “ 나도 더워서 엄두가 안 나는데......”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시무룩해지는 그녀...가게로 돌아온 뒤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송이 엄마가 이번 주 일요일날 등산을 가자는데요?.” “그럼 그집하고 같이 산에 갔다오자” 언제라도 등산을 같이 가자고 하면 좋아하는 남편을 자극하게 된 셈이다. ‘그럴까?’ “혼자가면 다른 산악회 갈려고 했든데 송이네가 같이 가자고 하니 ‘지리산 칠선계곡‘이 좋겠어.” 아무래도 산에 가는 거 보다는 계곡에 가는 게 낫지않겠나 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다시 송이네로 갔다. “송이엄마, 이번 일요일날 ’지리산 철선계곡‘에 가는 게 어때?” “그렇담 남편도 같이 가자고 해볼까?” 늦은 오후, 송이엄마는 남편도 같이가기로 했다며 만면에 엷은 미소를 띈다. 두 커플이 의기투합 해 결정하게된 ’칠선계곡‘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그녀 부부를 기다렸고, 그들 부부와 함께 버스를 타고 행선지까지 가는동안 걸리는 시간은 25분... 더위를 피해 피서를 떠나고 난 도심은 텅 비어있었다. 서너 번 같이 등산을 간 덕택에 우리일행을 보드니 반색을 한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이 도심을 벗어나 서서히 외곽으로 진입을 하자 바깥의 푸르른 녹음이 시야를 싱그럽게 하고 멀리서 가까이서 풀벌레 소리들이 화음을 이루며 우리를 맞이한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서너 시간의 지루함은 계곡의 물놀이를 상상하며 견딜 수 있었다. 국도에 내려서니 피서를 나온 차량들로 인해 길거리가 병목현상을 빚으며 체증되어있다.
목적지까지 도착할려면 30분은 족히 걸려야 하는 데...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다급해진 집행부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무래도 매표소까지 차량진입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그러니 여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그대로 따를랍니다. 여기서 칠선계곡 매표소까지 걸어서 갈려면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돌려 다른 행선지를 선택해야합니다. 아스팔트라 그 열기가 대단할텐데 걸어서 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을 들어보세요.” 손드는 사람은 불과 서너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바깥에 나갔다 온 어떤 분은 “장난이 아닙니다. 나는 도저히 걸어가지는 못하겠어요.” 그러나 그렇게 말한 사람도 걸어서 매표소까지 갔다. 그러자 뒤에 탄 일행 중 한명이 "차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밀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않아요?" 나 역시 그분의 생각과 같았다. "차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간다면 칠선계곡으로 가는 건 아니죠?" "그럼요." "그렇다면 내려서 걸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짜피 칠선계곡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좀더 걷는다 생각하고 걸어가는게 나을거 같아요. 그리고 산 보다는 계곡이 더 나을 것이구요." 한낮의 땡볕속으로 걸어간다는 것이 끔찍하긴 했지만, 차를 돌려 등산길을 택하기보다는 계곡이 낫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도저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13명의 낙오자(?)를 차량에 남겨두고 우리 일행은 매표소까지 걸어갔다. 정수리 위에 내려쪼이는 한낮의 더운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나마 도로 옆, 절개지 위로 심어져있는 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는 아래로 걸을때는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잠시나마 씻어주곤 해 견딜수 있었다. 다들 배낭 하나씩을 짊어지고 긴 행렬을 이룬 모습들은 몇 시간의 더위를 식히기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하니 그 대가가 너무 크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드디어 매표소에 도착했고, 총무가 도착할때까지 기다렸다. 입산을 할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야했기 때문이다.
산에 오르는 건 나무그늘이 있어 쉽지 않겠나는 생각도 잠시...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란 경사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방형으로 사각형으로 보도블럭으로 깔아 놓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노면은 경사가 제법 가파른데도 전혀 미끄럽지가 않았다. 40여분의 아스팔트를 걷고 또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나니 능선이다. 시원한 나무바람과 풀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다시 오르막과 긴 터널을 지나고 작은 다리를 건너고 반복되는 오르막을 지나니 시원한 계곡 물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허공을 갈랐다. 우리가 갈려고 하는 ’옥녀봉‘ 은 아직 더 가야했지만 피서객들의 탄성에서 위무를 받았다. 드디어 ’옥녀봉‘에 도착을 했고, 우리 일행은 옥녀봉 옆으로 바위위에 자리를 만들고 사갖고 온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웠다. 몇 시간의 고생 끝에 먹는 점심은 꿀맛이다. 허기를 채운 일행들은 물속에 들어가 물장구를 치며 달콤한 피서를 만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량에 올랐다.
다들 포만감을 느끼며 내려오고 있는 데 앞 좌석에 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와, 무지개가 떴네." 다들 차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들과 산의 경계선을 시작으로 무지개가 선명하게 그려져있다. 마치 인위적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것 처럼..."아니 비가 오지도 않았는 데 무지개라니?" 신기한 듯 중얼거리니 남편이 옆에서 "땅이 젖어있는 걸 보니 여긴 비가 온모양이야." "그래요? 우리있는 곳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이 출발한 지 10여분정도 남짓한 데 그곳에서는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그때 차창에 빗금을 그으며 빗줄기가 떨어졌다. 1분 정도 빗줄기가 사선을 그으며 차창을 긋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멈추었다. 자연의 오묘함에 외경심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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