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의 줄거리를 일간지 섹션을 통해 읽어보았을 때 꽤 재미있겠구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맛배기로 보여주는 아티클이야 당연히 알차고 재미있는 내용들만 간추려서 실었겠지만, 흥미로움을 유발시키는 뭔가가 있었다. 해서 퇴근길에 서점으로 달려가게 되었고, 평소(평소에는 항상 주문을 하게 되었다. 신문 섹션에 소개되는 책들은 출판된지 얼마되지 않은 책들이라 진열대에서 바로 찾기란 어려웠다.)와는 달리 진열대에 디스플레이 되어있었다.
창구에 서있는 쥔장에게 책제목을 이야기하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서점내에 있는 책인지 알아보기 위한 행동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진열대에 진열되어 있지 않은 책이면 보통 2일 내지 3일은 기다려야 내가 원하는 책을 손에 쥘수 있다. 검색을 하던 여쥔장은 엷은 미소를 띄우며 "서점에 있는 책이네요." 라는 말과 함께 진열장 앞으로 가드니 금세 그 많은 책 속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꺼집어 낸다. 책 제목만 검색하면 몇 번 책꽂이에 꽂혀있는거 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설정을 해둔 모양이다.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고있는동안 쥔장은 벌써 바코드판독기를 드니 강렬한 빛이 인쇄된 바코드를 쪼이는거 같드니 책을 이내 판독을 끝낸 책을 내앞으로 건낸다.
책의 내용과는 달리 책크기가 문고판처럼 작아 약간의 실망스런 마음으로 퇴근길을 서둘렀고, 씻기 바쁘게 책을 펼쳤다.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처음 책을 받아들면서 느꼈던 그 실망감은 찾기 어려울 만큼 내용이 좋았다. 한 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개미>를 읽으면서 감동 받았던 그런 기분이랄까....여하간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나무좀을 종교재판으로 이끌어내면서 그 흥미진진함은 <개미>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였다. 그러나 콜라주 양식이라 그 부분을 넘기면서는 흥미로움이 차차 감소 됨을 느꼈다. 아래글 내용은 네이버에서 삽질 해 온 것이다.^^
‘노아의 방주’는 세상이 심판받고 거듭나게 된 이야기로 성경에 기록됐다. 성경 넉 장에 걸쳐서 의롭고 현명하고 신을 두려워한 사람으로 묘사된 노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가 다른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음주벽이 있는 신경질적인 악당’이었다는 것. 증인은 방주에 몰래 탄 나무좀이었다.
줄리언 반스는 현대 영국문학을 이끌어 온 소설가다. ‘10과 2분의 1장으로 쓴 세계 역사’는 27개국에 번역됐으며 반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책의 제목은 ‘역사’이고 형식은 ‘소설’이지만 역사와 소설 양쪽 모두에 대한 독자의 선입관을 멋지게 배반한다. 노아의 방주, 큰 물고기에게 삼켜진 요나 등 서양 정신사의 근원이 되는 성경 속 사건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등 실제 사건들, 과거의 한 시기를 배경으로 기이한 상상력이 입혀진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렇지만 어느 사건 하나 이제껏 우리가 알았던 역사가 아니다.
‘노아의 방주’만 해도 나무좀이 보기에는 방주가 성스러운 공간이 아니었다. “당신이라면 한 번 뛰면 닿을 거리에 치타와 영양을 함께 실었겠습니까? 어느 정도의 보안 조치는 불가피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의 누군가는 정보 수집에 혈안이었고, 스파이가 되는 데 동의한 자도 있었습니다. 때때로 당국자에게 고자질하는 일이 성행했습니다.” 교배종이라는 이유로 죽임당한 동물도 있었다. 유니콘, 히포그리프 같은 것들이다(그래서 그들은 전설 속 동물이 돼버렸다).
역사를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꼬집는 작가의 능력은 곳곳에서 빛난다. 여자와 아이들만 살아남았다는 타이타닉호 사고에서 실은 한 남자가 여장(女裝)을 하고 구명보트에 타서 생존했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비겁함을 허탈하게 드러낸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좀 벌레가 교회의 제단을 좀먹었다는 것 때문에 신성모독죄로 기소됐다는 이야기는 종교에 어이없이 경도된 중세시대, 그리고 종교를 대신하는 현대의 수많은 우상에 경도된 요즘 사람들을 빗대어 비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