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아버지...

정순이 2004. 6. 11. 12:21

아버지가 돌아가신지도  10년하고도 5년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남들은 친정아버지가 살아계신다거나 친정엄마가 살아계신다며 투정을 부리듯 말을 할 때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만 보는 위치에만 머물곤 했었습니다. 그런 나는 늘 배가 고픈 아이처럼, 갈증나는 아이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고 목말라했습니다.


아버지,  결혼하고 처음 우리집에 오셨을 때 제가 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웠었던

기억 나시나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후 그 쓸쓸함을 혼자 견뎌내야 할 힘든 여정이었는데도 결혼하고 일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우리집에 나들이하셨어요. 행여 남편으로부터 친정아버지의 방문으로 인해 애맨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싶어 딸네집에도 발걸음 하지 않으셨던 그 크고 넓으신 사랑이 실타레같이 마냥 딸려나옵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결코 힘없는 분이 아니시라는 생각을 드시게 하고싶기도 했고,또 잠시 어리광을 부려보고싶은 마음에 아버지 무릎을 빌려달랬더랬습니다. 그 이면에는 '나도 아버지가 계시다' 며 앞으로 잘하라는 무언의 압력같은 마음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는걸 남편은 눈치 채지 못했는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남편은 내게 "애기같이 그게 머꼬?" 라며 핀잔을 주더군요. 그러나 저는 개의치 않고 기분이 그렇게 흐뭇할수 없었습니다, 다리가 아프시다는 말씀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아버지, 유년시절 5일마다 열리는 장에 다녀오실 때 아버지 손에는 항상 사탕 한봉지 씩은 꼭 사갖고 오셨던 그 시절이 눈이 시로도록 그립습니다. 든든한 네분의 오빠 아래로 언니와 나는 많은 귀여움을 받았더랬죠. 사탕을 사오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어도 장에 가시면  어김없이 사탕을 사오실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던 아버지는, 그렇게 말없는 가운데 실천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아버지, 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하루 전 날이라는거 알고 계시죠? 친정쪽 제사라고 해서, 올케들이 있다고해서, 조카며느리가 있다고해서 여러이유를 갖다 대면서 밤 10시가 가까워서야 컴에서 일어나 느릿한 발걸음으로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으러 친정에 갔었습니다. 나보다 더 먼거리에서 사촌오빠내외가 이미 와 계셨고, 제사를 지내고 나면 1시가 지나서야 온길만큼의 거리를 다시 돌아가 출근해야하는 데도 불구하고 울산에서도 먼길을 마다하지않고 달려온 두 살 위인 사촌오빠, 대구에 내려온  사촌올케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사촌 올케는  "오빠는 바쁜일이 있어 같이 못 왔다"는 말로 미안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촌올케를 보면서 그 부끄럽고 죄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더군요. 사촌들의 많은 참석으로 기분이 고조된 큰 올케는 평소때의 알뜰함은 잠시 내일로 미룬 듯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자리한 사촌들을 위해 슈퍼로 달려가기 바쁜 듯 해보였습니다.

 

아버지, 병풍 앞으로 상위에 차려진 풍성한 음식위로 수저가 유영을 할 때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져 왔든 건 유난히 치아가 건강했음에도 드시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시 목이 메였드랬습니다. 딱딱한 음식을 먹지못하는 자식들의 부실한 치아를 늘 애석하게 생각하시며 우리들이 먹지않는 딱딱한 음식을 아까워하시며 드셨던 그런 정많은 아버지셨어요. 돌아가시기 불과 몇 달 전 까지만해도 건강한 치아를 자랑하셨던 분이셨는데 제수상에 차려진 음식을 드시기나 하는지 를 생각하니 갑자기 목이 메여옴을 느꼈습니다.  생존해 계실 때 아버지를 앞세워 돌아가신 큰오빠의 주검앞에서 아버지가 짊어지셔야했던 삶의 무게들이 어땠을지 새삼스럽게 가슴을 후벼팝니다.

 

큰 오빠도 계시지 않는데도 부지런한 올케는 집에서 직접 담아놓은 대추주 를 내옵니다. 몇순배 돌아가도 취하는게 보이지 않는 나를 보고있던 큰올케는 사촌오빠를 향해 "언제 술 대작을 한번 해봐요. 누가 이기는지..."  "@@@"
"정말 한번 해봐요?언제 날 잡을까요? "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것도 알고있고, 서로 바쁜 생활을 뒤로하고 만나서 술내기를 한다는게 쉽지 않다는걸 아니까 큰소리부터 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걱정부터 앞섭니다.


 '정말 내기하자면 어떡하지?'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수가 없었습니다.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조카들을 뒤로하고 불러진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뜀박질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15분동안  내내 웃음짓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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